2007년부터 시작되었던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3월 23~24일 8차 협상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물론 몇 가지 쟁점사항이 남아 있어 4월 2일 열리는 통상장관 회담에서 최종 마무리 될 예정이지만 8차 협상을 끝으로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한국과 EU간 FTA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5년 초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EU는 우리나라의 중장기 FTA 추진대상국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이렇게 빨리 EU와의 FTA가 진행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곧 한-EU FTA가 현실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당시 필자가 처음으로 한-EU FTA 연구를 시작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EU야 말로 우리나라가 FTA를 추진하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는 점이었다. 우리와 경제관계가 매우 긴밀한 나라는 교역액을 기준으로 볼 때 중국, 일본, 미국, EU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가운데 EU는 중국에 이은 우리나라의 제2위 수출시장이자 교역대상국이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이들 나라 중 EU가 우리와 최적인 FTA 대상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EU 관세율 높아 미국보다 수출증대효과 더 클 것

우선 EU는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시장이지만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관세율이 높아 관세철폐에 따른 우리나라의 수출증대효과가 미국보다 더 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즉 미국의 제조업 평균관세율은 3.7%이지만 EU의 평균 관세율은 4.2%며, 특히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의 경우 미국의 관세율은 2.5%인 반면, EU는 무려 10%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가 FTA 추진시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가 바로 농업부문의 개방인데, EU는 역시 이 부분에서도 다른 주요국들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는 점이다. EU의 주요 회원국들은 자국 농업부문의 보호를 위해 막대한 농업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EU는 역외국과의 FTA 체결시 상대국에 전면적인 농업부문 개방을 요구할 처지가 못 된다. 물론 우리가 EU와 FTA를 체결하게 되면 EU로부터 돼지고기, 낙농, 가공식품 부문의 수입이 확대되어 우리 농업부문에 일부 피해가 예상되지만 전반적으로 EU와의 FTA로 인한 농업부문의 피해규모는 미국, 중국과의 FTA보다는 상대적으로 작다고 할 수 있다.

상호보완적 산업구조로 교역확대 가능성 높아

세번째로 제조업 부문에서 한국과 EU와의 산업구조는 비교적 일본, 미국보다는 더 보완적이어서 FTA를 통한 교역확대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우리나라와 산업구조와 매우 유사하고 많은 부분에서 경쟁이 치열한 일본과는 달리 EU와는 상대적으로 보완성이 높다. 따라서 EU와의 FTA를 통해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IT 제품, 전기전자, 자동차, 섬유 부문의 대EU 수출이 증가하는 반면, EU로부터는 화학, 기계, 정밀기기 부분의 수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4년 이후 중동부 유럽국가들이 EU에 가입함으로써 우리기업들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규 회원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이 치열하고 정체되어 있는 서유럽의 기존 회원국 시장(선진국 시장)뿐만 아니라 성장잠재력이 큰 신규회원국에서까지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EU가 FTA를 체결한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유럽에 있는 EU 회원가입 대상국들이거나 아니면 과거 식민지국가들 및 저개발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목적의 특혜협정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EU 시장에서 수출확대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 지향적 국가와의 FTA는 EU의 입장에서는 처음이다. 따라서 EU와의 FTA는 분명 EU시장의 한국제품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북 군산항 자동차 전용부두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유럽 수출용 자동차들>

EU, ‘Global Europe' 표명…아시아에서 우리와 첫 FTA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에게 최적 FTA 파트너인 EU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우리와의 FTA에 적극적으로 임했을까? 지금까지 EU는 외적으로 국제무역기구를 통한 다자주의 확산을 지향하면서 내적으로는 중동부 유럽국가들의 신규가입 등을 통한 EU 확대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WTO를 통한 다자주의가 한계에 부딪히고 EU 확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EU도 이제는 선택적인 양자주의 즉 FTA와 같은 상호개방을 통한 실질적인 시장확대 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에 EU는 2006년 11월 신통상전략인 ‘Global Europe'을 표명하면서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흥시장의 무역장벽 해소와 개방을 위해 한국, ASEAN, 인도 등과 FTA를 추진하게 되었고, 이들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우리나라와의 FTA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EU의 주요 교역대상국 중 한국은 여덟 번째에 해당된다. 스위스, 노르웨이, 러시아, 터키 등 EU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유럽국가들을 제외하면 EU의 주요 교역 상대국은 미국, 중국, 일본, 한국 순이다. 그러나 EU 입장에서는 거대경제권인 미국, 중국, 일본과의 FTA는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EU의 주요 교역대상국이면서 거대경제권이 아니고 그렇지만 아시아에서 중요한 시장인 한국을 주요 타깃으로 선정한 것이다. 물론 우리가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면서 EU가 한국시장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 주도권을 뺏길 것을 우려한 점도 중요한 요인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EU FTA에 대한 국민공감대 형성 중요

따라서 EU는 우리나라와의 FTA 협상시 과거 저개발국가와의 협상에 임해왔던 태도와는 달리 훨씬 더 강도 높게 우리시장 개방을 요구해왔다. EU 입장에서 우리나라와의 FTA 추진은 그 동안 EU가 추진해왔던 저개발국가에 대한 정치적 목적의 특혜무역협정이 아닌 그야말로 진정한 경제적 목적의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미국과 같은 거대국과의 FTA 협상 경험이 있던 터라 EU와 비교적 균형있는 협상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협상이 끝나고 양국의 비준절차를 거치면 양국시장은 개방된다. EU 시장이 개방되면 그동안 경제위기로 주춤했던 한국의 대EU 수출은 다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시장도 개방되어 일부 제조업과 아직은 경쟁력이 약한 서비스 부문은 치열한 경쟁을 치를 것이고 일부 산업은 피해를 입을 것이다. 우리 수출기업들은 EU가 단일시장이지만 EU내에는 개별국들이 존재하며 회원국별로 경제규모와 산업구조, 그리고 각종 제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개방을 준비하는 정부와 기업도 개방에 취약한 업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 그리고 피해계층에 대한 면밀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야 할 것이다. 과거 국내 공감대 형성에 미흡했던 한-미 FTA의 귀중한 경험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Konas)

김균태(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