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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야

수도 서울의 남행천도(南行遷都)는 한국국가안보를 위협 한다.
Written by. 문영일   입력 : 2009-11-13 오후 12: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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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경제대란과 유행중인 신종플루로 국가비상사태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북으로부터는 북핵과 더불어 서해 재도발 등 가장 험악한 전쟁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거기에 더하여 좌경 노무현정권이 박아 놓은 잘 못된 대못의 하나로 '서울의 분할과 남쪽으로의 천도'에 대한 후속조치로 국론이 분열됨으로서 국력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면으로 소모되어가고 있다.

 한 나라의 서울(수도)이란 통상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함과 동시 현존하는 국권의 중심에 있음으로 함부로 천도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특히 우리 서울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함과 동시에 한반도의 주인인 대한민국의  행정.사법.입법의 국가기관이 총집되어 있으며,  경제, 문화 그리고 교통의 중심인 것은 물론, 전쟁위협을 일삼고 있는 북한 장사포사거리 내 면전에 똑바로 서서 한국국가안보의 상징으로 그리고 방벽으로 엄존하고 있는 수도 서울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특히 국가비상사태수준의 안보전략환경에서 수도 서울의 분할이나 적전 후퇴(남으로의 천도)는 곧 우리한국의 국가안보전략을 혼란시키고 동시에 국력을 약화시킴으로서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의 만조시점이 조성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북한의 민주화와 그에 이은 민족의 통일의지 그리고 나아가서는 북방으로의 민족적 진출기상 마저 저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수도서울 천도에 관한 한국역사상의 전례와 교훈(戰例敎訓)

  한국의 전통적 국가안보전략(사상)사에서 수도 서울의 천도에 관하여 우리는 두 가지의  교훈을 터득해 있다. 그 하나는, 수도의 적전(침략태세의 적 앞에서)후퇴가 적에게 곧 전승의 자신감을 고취시켜 오히려 침략을 유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구려 수난시대의 한 전례로, 평소에 부왕인 미천왕의 확전전략(擴戰戰略)에 불만을 가졌던 고국원왕(故國原王 ; 16대, 331~371년)은 연(燕 ; 모용鮮卑계)의 침략을 바로 목전에 두고도 소위 '대화를 통한 평화외교 즉 유화전략'을 추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연의 침략이 확실해 지자 고국원왕은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환도성보다 서쪽 즉 적측에 근접해 있던 평양(고구려 서울의 개념)을 다른 하나의 평양, 즉 '환도성'으로  적전후퇴 천도하였다. 그러자 연의 모용황은 고구려지도부의 유약함과 자신의 승기를 재 확신하면서 즉시 고구려를 침략(342년)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전쟁을 겁내었던 지도부는 물론 왕실(태후, 왕후)과 심지어는 부왕이었던 미천왕의 시신까지 파헤쳐 가게 되는, 국가 최악의 수난과 수모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른 하나의 예로는, 바로 제3공화국의 70년대에, 미군이 월남전을 포기하고 다급하게 철수하게 되자, 김일성은 국제공산주의침략전쟁이 다시 유리해 진 것으로 착각하고, 중공 모택동을 찾아가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없어지는 것은 38선"이라고 공언하는 등 재남침적란(赤亂)을 획책하였다. 이에 박정희대통령은  제1,2차 석유파동을 극복하면서 이제 막 궤도에 오른 [한국근대화경제개발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안위와 제2의 6.25를 억지하는데 국가안보전략의 중점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외교적으로는 비동맹외교를 강화하면서 '7.2 남북동동선언'을 도출하고, 정치적으로는 유신정체를 출범시키고, 군사적으로는 한미연합사를 발족시켜 미국의 한국방위를 강화하는 한편 미제무기의 복제생산을 위시하여 핵무기의 개발착수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다하여 자주국방태세를 추진하였다. 

 그리고 유사시 서울의 직접적인 초기피해와 천문학적인 국력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안보전략방책으로 '행정수도'를 적의 초전기습전장범위 외곽으로 이전시킬 것을 연구검토한바 있었다. 물론 이는 노무현정권의 '계급혁명사상에서 나온 지배세력교체를 위한 서울천도'와는 엄연히 궤를 달리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수도서울의 후방천도'가 미치게 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여, 자주국방태세강화와 함께 '초전박살전략과 서울고수방어전략'으로 전환하면서 강북의 진지화(陣地化)와 동시 강남과 과천개발 등을 서둘렀던 것이다.

 고려와 이조선의 북벌/북방개척정신을 결코 망각할 수 없다

  고려태조 왕건은 신라를 흡수통일한 뒤 고구려의 옛 강토(곧 단군의 옛 강토) 수복을 국시로 하고 북방개척을 단행하였다. 그리하여 신라의 고도 경주는 동경으로 명명하여 후방에 두고, 북방(만주와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해 멀리 북진하여 수도를 한반도의 중앙이면서도 더 멀리 북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목의 개성으로 정도하였다. 그리고 그 북쪽 개척지 한가운데에 북방개척과 북진을 총괄하면서 30만 광군(光軍 ; 북부방면군)을 지휘하는 이른바 고려정권의 북방전진기지로서 서경(지금의 평양)을 개척하여 북진태세를 정비하였다. 그리하여 고려 500(-)년간 거란과 원의 침략 등 만란을 극복해가며 기회 있을 때마다 북진을 별렀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명이 원군(元軍말)을 몽골본토로 추격하는 틈새를 기회로, 1933년에 우왕과 최영장군이 고려군대를 총동원하여  북벌을 위해 출진하였다. 그러나 민족적 불행으로 이 또한 이성계도당(都堂/徒黨)과 친명사대주의자 정도전/정몽주의 신사대부일파에 의한 적전반란으로 무산됨으로서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이조선 또한 이 민족적 숙원과 전통을 저버릴 수 없어, 북방개척에서 간도와 연해주로 그리고 남으로는 대마도로 정벌하며 나아갔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조상들은 동아시아 역사가 시작된 일만 년 전부터 단군조선에 이르기까지 동북아시아문명권의 중심이었던 북방대륙지역(황하유역, 발해만지역, 만주와 내몽골지역)에 그 주류가 원주민으로 자리하였고,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그 중심이 만주일대에 있었다. 특히 만주는 고구려에 대를 이어 발해(후고구려라고도 함), 그리고 그 후손이 금/청을 세워 중국대륙을 지배하였고, 이어서 이조시대와 왜정시대에는 남-북-서간도와 연해주에 100만이 넘는 우리 주민이 자리 잡았고, 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민족의 중심적 원주소는 북방과 대륙에 있었기에 고려와 이조가 북벌을 이루려고 그토록 고심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북방을 향한 민족기상으로 서울에서 더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6.25남침적란(赤亂)중이었던 1951년,  대한민국 건국의 국부(國父) 이승만은 서울수복(1950.9.28) 그 다음날, 아직도 총성이 미아리고개를 다 넘지 못했던 그 시점에 중앙청에서 맥아더장군을 초청하여 역사적인 '서울환도식'을 거행하였다. 이어서 국군을 지도하여 10월 1일에는 정지함이 없이 38선을 돌파하게하고, 동시에 평양에 선입성(先入城)하게 하였으며, 평양을 탈환하자 10월 29일에는 지체 없이 평양에서 '평양 입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은 국군과 국민들의 북진 기상을 고양시킴으로서 민족의 북향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선조들과 같이 그 또한 민족역사에 그 북진의지를 남겼던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우리는, 정치나 지역이해관계에 앞서 국가천년지대계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이 그토록 이루려고 염원했던 민족적 대업을 위해서, 우선 북한을 민주화로 통일하고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고향인 북방으로 그리고 대륙으로 나아가려는 기상을 고양하면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야 만 할 것이다.(konas)

문영일(예.육중장, 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연구회/www.moon7677.com.ne.kr)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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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遷都移北當然之事也! 京城盡天命 至大天命天世平壤 遷都平壤樹立是也 何者之辭多 如豆子之半片也 不止終日遷都狂亂也乎? 京城盡命收復北方至天命大世耶, 民無心而左赤狂亂. 大陸之間合縱連橫不知聽之視之有也 韓國肇&amp;#37517;百人. 世上 &amp;#30562;目觀之 日本中國 何爲何如? 何以不顧之? 終止亂裏國難, 草綠而招招不至愛惜也! 於此亂世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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