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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2015국토대장정 소감①] 나의 버킷리스트 1번 ‘국토대장정’

Written by. 김윤경   입력 : 2015-10-15 오전 11: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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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65주년을 맞이하여 재향군인회는 전국에서 선발된 11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동해 통일전망대까지 총 1,084km를 횡단하는 제8회 ‘대학생 전적지 국토대장정’을 지난 8월 4일부터 10박 11일간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끝마친 바 있다. 이에 코나스는 체험수기 공모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4편(최우수 1편 : 김윤경 한남대 2년, 우수 3편 : 이소정 건양대 2년. 우인식 영남대 3년. 최정윤 건국대 1년)을 엄선 시리즈로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 prologue 】

  “향 ~~~ 군!!!!!”
  8월 14일 금요일 해단식을 통해 마지막으로 외쳤던, 향군 국토대장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신 외치지 못할 이 가슴 울리는 힘차고도 당찬 외침...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이었던 국토대장정. 21년 인생의 첫 도전인 국토대장정에 가기 위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떠날 용기와 나 자신과 한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결단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 그 힘든 걸 왜 자초해서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심한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난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힘에 약간의 무모함과 모험심을 양념으로 곁들여 후에 박수 받는 그날을 생각하며 8월 4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장장 11일 동안 어떤 마음을 가지고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천 가지 만 가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행군하는 길을 걸으며 나에게, 국토대장정을 함께 하는 모두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이 될 것을 상상하며 8월 4일이 다가왔다.

  1일차(화)

  부푼 가슴을 안고 서울에 위치한 향군회관에 도착했다. 대전 OT때 만난 조원들, 나머지 보지 못한 조원들과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어색함의 공기가 차츰 수줍음과 설렘의 공기로 가득 찼다. 처음으로 함께 간 곳은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맨 뒷줄에 서서 잘 들리지가 않아 아쉬움만 남긴 채 노고산 부대, 즉 처음으로 자는 곳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가는 군부대였기에 더더욱 설레었다. 저녁도 생각 외로 너무 맛있었고 간식으로 나온 건빵을 부셔 우유에 타서 먹으니까 너무 맛있었다. 일명 ‘건 프레이크’라나...

  2일차(수)

  설레는 둘째 날이 밝았다. 우린 아침을 먹고 제2연평해전비와 천안함이 있는 해군 제2함대 사령부로 향했다. 뉴스로만 접했던 사건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손으로 만져보게 되니 2010년도의 느꼈던 슬픔이 다시금 내 마음을 울렸다. 설명을 듣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희생하신 분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인천함 군함을 탔다. 진짜사나이 해군 편 중 샘 해밍턴 경보기 오작동 장면이 생각이 나서 조원들과 깔깔깔 웃었다. 그렇게 또 TV에서만 보던 것들을 직접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고 나서 우린 해병 2사단에서 저녁을 먹고 며칠 후에 먹을 전투식량을 위해 김 2장을 챙겼다. 그 이유인즉슨 군인인 친구에게 전투식량에 대해 물어보니 맛없다는 말만 반복하길래 밥 먹을 때 김 나오면 무조건 챙기라는 거다. 그렇게 김 2장을 챙기고 숙소에 갔고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자게 돼서 너무 행복했다. 에어컨 하나로 우리가 묵었던 신교대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으로 내가 정하는 숙소 1위로 뽑았다.

  3일차(목)

  3일차는 해병대에서 병영체험을 하였다. 처음으로 군인들이 타는 차를 타보게 되었다. 이름은 자주포였고 시동을 걸었을 때 굉장한 소음이 있어 귀마개를 착용하도록 주의사항에 쓰여 있기도 하였다. 첫 번째로 자주포를 타게 되어 하늘로 날아갈 듯한 기쁨에 가득 차 있었던 터라 귀가 아픈 걸 잊을 만큼의 흥분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멋있는 해병대 군인들과 사진도 찍고 맛있는 순두부찌개 점심을 먹었다.

 다 먹고 조원들과 함께 PX에 갔다. 처음으로 군대 슈퍼를 가게 되어 너무 설렜다. 국토대장정 온 3일 동안 허니버터칩 과자를 먹고싶어 했었는데 딱 그 과자가 PX에 있어서 놀랐다. 과자, 젤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고 행복한 마음으로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1사단 신교대대로 향했다. 이곳은 우리가 묵었던 곳 중 가장 낡은 곳으로 뽑힌다. (당연히 나 혼자 정하는 순위) 저녁을 먹고 치킨을 기다리며 조원들과 처음으로 밤에 모여 장기자랑 얘기를 하였다. 무조건 백령도를 가자는 말이 대다수였고 이런저런 얘기를 오가며 더욱 친해진 시간이었다.

 드디어 불침번의 순서가 왔다. 말로만 듣던 불침번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만 했다. 시간은 새벽 12시에서 1시. 졸리지 않았다. 불침번 서는 것도 추억에 남는다 생각하니 그저 행복했다. 아마 나에게 3일차는 다 처음으로 한 것들이 많아 기억에 남는 날 중 하나로 뽑힌다.

  4일차(금)

  이 날부터 우린 관광버스를 타지 않고 군용버스를 타고 다녔다. 아빠 같은 포근함이 있어 늘 식사 때마다 “맛있게 드세요 기사님~!”으로 인사로 감사함을 보답하였다. 아침을 먹고 도라전망대에 가기 전 전차랑 장갑차를 또 탑승해 볼 기회가 생겼다. 타기에 앞서 설명해주시는 군인과도 사진을 찍고 직접 타보기도 했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시다가 예비역인사람 있느냐고 물어보셨을 때 나는 AB형이라고 들려 엄청 큰 목소리로 “저요!!!!” 손을 들었다. 주변에선 크게 웃었고 그 군인 아저씨는 날 외면하셨다. 처음엔 왜 그러시나 서운해 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가 예비역을 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말! 나 같아도 무시했을 것 같다! 아마 날 더위 먹은 한 대원으로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나의 레전드 에피소드가 탄생한 날이다. (나 때문에 웃다가 운 가연이가 생각이 난다.)

 가장 폭염인 날 우린 전 박정희 대통령 때 청와대까지 오기까지 북한이 침투했던 길을 걸어갔다. 6km밖에 걷지 않았지만 날씨가 무지막지 더워 다른 날보다 쉽게 지쳤던 것 같다. 그래도 3일 동안 캠프 온 느낌이었는데 오늘 만큼은 정말 국토대장정을 하러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한 교회에서 우린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생각 외로 너무 맛있었다. 난 전투식량이라 길래 군인용 도시락에 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난 군대 밥 체질인 것 같다! 다 즐겁고 행복하지만 밥 먹는 시간을 이길 순 없나 보다!

  5일차(토)

  이 날 아침 우리 대원들은 훈련병들과 아침체조를 같이 했다. 초등학교 때 6년 내내 했던 국민체조와는 사뭇 달라 한 템포 느리게 따라 했지만 나에겐 새로웠고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애국가를 부르는데 3절을 불러서 매우 당황했다. 1절밖에 모르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침은 고기 패티 한 장만 있는 군대리아를 먹었다.

 아픈 재현이 보낸 날이기도 한 이 날. 그동안 조원들과 헤어지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갑작스레 재현이가 빠진다고 하니 너무 아쉬웠고 이 날부터 난 조원들과 헤어질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같이 모여 있으면 무조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사진쟁이’, ‘셀카쟁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우리의 추억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태풍전망대 갔다가 ‘백마고지전적비’ 보러 갈 때 행군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드디어 꼭꼭 숨겨왔던 우비를 꺼내 입었다. 비가 왔지만 너무 신이 났다. 덥지 않아 좋았고 그 시원함 속에서 함께 걷는다는 게 마냥 행복했다. 비록 신발이 젖어 무거웠지만 즐거운 경험을 했다. 겨우 도착한 백마고지 전적비. 고지전의 배경인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설명을 들으며 대충 보고 지나쳤던 고지전의 영화를 다시 찾아봐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설명해주던 군인은 나와 동갑이었고 트렌치코트같이 생긴 군인용 우비가 참 잘 어울렸다. 같은 또래라 그런지 설명 후 내려가면서 짧게나마 이야기를 하였다. 그저 대단해 보이고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멋진 친구였다.

 이 날 묵었던 곳인 6사단, 저녁은 정말 hell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먹어본 가장 맛없는 닭볶음탕이었다! 안 그래도 맛없어서 기분 별론데 나 혼자 조원들과 따로 먹게 되어서 더 우울했다. (순서대로 앉혀서 나 다음으로 새로운 테이블에 앉았었다.) 밥 다 먹고 가는데 옆에 지나가는 훈련병들이 “힘차고~패기 있게~번호 붙여~갓! 하낫! 둘!” 크게 외치며 가는데 귀여웠다.

 그리고 우린 탈북민 강사 강연을 듣고서 수박과 함께 다과 파티를 하였다. (늘 이렇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셨던 재향군인회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밤에 자려고 정리하다가 발에 물집을 발견하였다. 처음으로 물집 잡힌 날이었다. 아프진 않았고 오히려 나 자신이 대견했다. 두 번째로 불침번 선 날이었고 몰래 조원들과 만나 2층에서 춤 연습을 하였다. 다른 조들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았지만 유독 우리 조 남자들이 잘 따라와 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새벽까지 몰래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조원들을 만나게 해주신 김혜영 부단장님께 너무나도 감사했다. 우리 7조 조원들이 백령도 가는 꿈을 꾸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6일차(일)

  그 전날 폭우가 와서 신발이 아직도 안 말랐다. 축축한 신발로 걸어야 한다 생각하니 우울했고 무거운 신발을 신고 걸어야 한다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가연이 실내화가 신발같이 생겨서 그것을 신고 행군하였다. 이 날이 가장 많이 14km나 걸은 날인데 하필 실내화를 신었으니 행군 후 그날 묵을 부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내 다리는 남아돌지 않았다. 그래도 의료 스태프 언니 덕분에 잘 치료할 수 있었고 금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점심은 자장밥이었고 이 날 세 번째로 총 만져본 날이었다. 아직 당기는 게 무리지만 군인분들 도움으로 총알 없는 총을 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를 위해 이 더운 날 하계 동계 군복을 입고 계속 서 계신 2분을 포함해 여러 군인분들께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그리고 선착순으로 산악용 오토바이를 탔다. 처음엔 줄이 길어서 탈 수 있으려나 했는데 무려 3번이나 타게 되었다. 오픈카를 처음 타봐서 그런지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와서 너무 신났다.

  7일차(월)

  행운의 숫자 7, 그래서 그런지 이 날 가장 많은 행운을 얻은 날이기도 하다. 7일차 아침을 맞이하고 진짜사나이에 나왔던 칠성부대를 갔다. 그 전날 훈련을 해서 이 날 쉬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군악대도 보여주시고 살면서 절대 보지 못할 투스타 사단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악수를 받았고 맨 앞줄에 앉아 머플러도 직접 매주시는 영광을 맛보았다. 같이 셀카도 찍었다! 13개의 표창이나 받은 부대인 이곳에서 가장 설레고 가장 신나고 가장 멋진 경험을 했다.

 그리고 물놀이, 사진 찍어주는 오빠와 9조 쌍둥이 개그맨을 닮은 오빠 그리고 두 명의 모르는 오빠들이 발만 담그고 있는 나를 팔 다리를 모두 잡아 물에 빠트렸다. 물에 젖는 게 싫어서 안 들어간 거였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너무 시원하고 신났다. 행군을 하니 속옷 빼고 옷은 다 말랐다. 이 날 또한 나에게 행복한 경험만 남긴 하루였다. 그렇게 오늘도 조원들과 춤 연습에 매진하였다. “소원을 말해봐~! (백령도! 백령도!)”

  8일차(화)

  이 날 오전 행군 얼마 걷지 않았지만 계속 오르막길이라서 너무 힘들었다. 점심에 비빔밥을 야무지게 먹고 1시간 정도 쉬는 시간에 영상관에서 조원들이랑 쪽잠을 잤는데 그 이후로 온몸에 힘이 없고 어지러웠다. 꼭 행군은 빠지지 않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앰블런스에 탔다. 행군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21사단 신교대대에 도착했다.

 저녁은 탕수육이었다. 같은 조 봉섭이 오빠 말로는 군대에서 제일 하기 힘든 반찬이 탕수육이라고 했다.(이 오빠 군인 시절 취사병이었다고 한다.) 그 어렵고 하기 힘들다는 탕수육을 군대에서 먹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비록 저녁 당번 6조가 탕수육을 세 개밖에 안 줘서 우울했지만 밥 다 먹고 다시 듬뿍 받아서 조원들이랑 나눠먹었다. 그런 사소한 나눔에 행복했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저녁을 먹고 다시 활력을 찾았다. 걱정해준 조원들, 스태프들한테 너무 고마웠다.

  9일차(수)

  제4땅굴을 들르고 점심을 먹었다. 이 날이 말복이라 삼계탕을 먹었다. 역시나 맛있었다. 물 나눠주시는 스태프 아저씨가 잘 먹는 모습 보기 좋다며 엄지를 치켜세우셨을 때 더 잘 먹는 모습을 보이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을지전망대를 들르고 우린 행군을 했다. 이 날은 12사 신교대대 을지부대에 묵었다.

 밥을 먹고 조금 있을 장기자랑을 위해 우리 7조는 짬을 내어 댄스 연습에 매진했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거여서 두렵고 긴장이 되었다. 우리끼리 연습할 땐 자신 있게 손과 다리 쭉쭉 뻗어가며 잘 췄는데 막상 강당 위에 올라서니 눈앞이 하얘졌다. 역시나 실수를 했다. 아쉬운 마음에 스태프들과 얘기하면서 너무 아쉽다고 내일은 무조건 안 틀리고 더 잘 출 거라고 주먹다짐을 하였을 때 웃으시면서 잘했다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셨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조원들과 맛있는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으며 “내일은 구호도 더 힘차게 외치면서 춤추자! 통일 7조 파이팅!”의 말을 조장 진욱 오빠가 건네며 설레는 마음이 가득 찬 콜라 잔을 건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0일차(목)

  10일차 목요일 아침이 밝았다. 처음으로 공군부대(공군 18전투 비행단)를 간 날이었고 이 날을 계기로 육해공 부대를 다 가본 경험을 쌓게 된 날이기도 하다. 설명을 들으며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셨던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빨간 스카프 마후라를 맨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며 괜스레 더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점심 비빔밥도 참 맛있었고 활주로가 나타나지 않는 선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전망대인 통일 전망대로 갔다. 그동안 전망대를 가면서 가는 전망대마다 북한이랑 가장 가깝다고 설명해서 늘 혼란스러웠었다. (도대체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딜까) 그런데 마지막으로 간 통일전망대가 가장 가깝다고 느꼈다.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북한을 보며 다시금 우리나라를 지키는 방법은 대한민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묵을 장소로 향하면서 그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길이 내 시야로 담아지기 시작했고 그저 앞만 보고 걸었던 그동안과는 달리 맑은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길을 걸으며 소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드디어 전야제 시간. 숙소에 도착하고 일부러 씻지도 않고 춤 연습에 매진했는데 갑자기 내리는 폭우 때문에 어제 제대로 추지 못해 한 맺힌 춤을 못 출 뿐 아니라 음식도 다 먹지도 못한 채 숙소로 부랴부랴 들어갔다. 너무 아쉬워 밖에 나가 불이 간간히 지펴지고 있는 나무 앞에서 나와 같은 대원들 몇 명과 스태프들, 부단장님과 함께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간간이 불을 지펴지고 있는 나무 장작들을 바라보며 내년에도 대원으로 말고 의료 스태프로 섬기고 싶다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재향군인회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잠을 청했다.

  11일차(금)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이하고 세수를 해서 개운한데 표정은 썩 그렇지 않았다. 벌써부터 헤어질 생각에 아쉬움이 어젯밤보다 배가 돼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이 말이 내겐 너무 슬프게 들린다. 그러한 슬픔을 간직한 채 함께 수료식·해단식을 준비하였고 3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후에 진지한 자세로 수료식·해단식에 임했다.

 모자를 강당 위로 던졌을 때 그동안의 힘들었던 것들이 싹 날아가고 10박 11일 동안 수고했다는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다시 나의 손으로, 나의 마음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기념 촬영을 찍었을 때 우린 어딜 가던지 ‘제8회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우리가 간다, 젊음을 휘날리며!!’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그때마다 난 맨 앞자리에 앉으려고 고군분투를 했다.

 다시 사진을 볼 때 나 자신을 잘 찾기 위함이었고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때의 열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플래카드 앞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단장님, 부단장님들, 스태프들, 조원들과 아쉬운 인사를 하고 서울행 차를 탔다. 그냥 헤어지긴 아쉬워서 조원들과 뒤풀이를 했다. 다 모이진 못했지만 이렇게나마 모여서 식사를 하게 돼서 행복했다. 집까지 잘 도착했고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어색한 공기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하고 즐겁고 신난 기억만 가득해서 8월 15일 토요일이 돼서도 그 후가 돼서도 난 일명 ‘국토 앓이’를 하였다.

  【 epilogue 】

  무더위로 인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계절인 뜨거운 여름에 10박 11일 동안 국토대장정을 한다고 나섰을 때 열에 하나만 나를 응원해주었고 그 아홉은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말만 건넬 뿐 이 멋진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대해주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시절에 많이 들어봤을 법한 이 말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뭐 적당히 진실이기도 하고 좀 허풍 섞인 말 같기도 하다. 누구나 편한 것이 좋고 익숙한 것을 선호하니까. 그러나 내가 찌는 더위 속에서 굳이 국토대장정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존재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함이라고 답해주고 싶다.

 날아보지 않는 새는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러한 새는 새장 안에 갇혀 그 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우리에게 한계란 없지만 그것은 도전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떠나지 않으면 위험과 마주칠 리 없지만 무서워서 새장 밖으로 날기를 포기한 새와 같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과 해보고 나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선택한 결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도전해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의 현실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알 수 없다. 또한 자신을 어떤 식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듯이 누구한테는 작을 수도 있는 국토대장정이라는 도전은 나의 가능성을 알게 해주었고 내 삶이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이었던 국토대장정. 인생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슬픈 게 아니라 달성할 목표가 없다는 것이 더 슬픈 것 같다. 난 목표를 이루었고 나머지 2번 3번 계속해서 늘어나는 나의 목표들을 달성해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이렇게 국토대장정의 소감문을 쓰면서 과거에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현재 백령도를 가고 더 나아가 상금까지 타기위해 ‘지금’도 집중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잘 하고 있다고, 더 잘 할 거라고 나 자신을 격려하게 된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향군 제8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신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박래혁 단장님, 임환호 부단장님, 김혜영 부단장님, 스태프 분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Konas)

김윤경 (한남대 2년)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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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6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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