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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2015국토대장정 소감④] 안보현장의 생생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Written by. 최정윤   입력 : 2015-10-29 오전 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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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65주년을 맞이하여 재향군인회는 전국에서 선발된 11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동해 통일전망대까지 총 1,084km를 횡단하는 제8회 ‘대학생 전적지 국토대장정’을 지난 8월 4일부터 10박 11일간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끝마친 바 있다. 이에 코나스는 체험수기 공모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4편(최우수 1편 : 김윤경 한남대 2년, 우수 3편 : 이소정 건양대 2년. 우인식 영남대 3년. 최정윤 건국대 1년)을 엄선 시리즈로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7월 17일 제헌절. 대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맞는 방학이 절반을 향해 갈 무렵 메르스의 여파로 계획 했던 일정들이 취소됨과 동시에 운명과도 같이 향군 국토대장정 참가의 기회를 갖게 되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써내려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극적인 곳인 비무장지대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 참가자 명단을 몇 번이고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과 같이 저의 꿈도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들과 다른 점은 사람을 지키는 것보다는 자연, 동물들을 지키는 것이고, 출발 직전까지 비무장지대의 초록빛을 상상하며 설레었고, 열흘간의 긴 답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첫 만남 -

  하나라도 더 챙겨보려 애썼던 배낭을 단단히 메고 인터넷 회사 ‘네이버’같은 색상의 옷을 입고 향군회관으로 출발하여 많은 대학생 대원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조는 다른 조에 비해 인원이 적었고, 낯가림이 심했지만 그 또한 매력이라고 생각하여 잘 지낼 것 같은 느낌이었고, 즐겁게 잘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현충원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한 여름에 현충원 국립묘지 잡초 뽑기를 하러 왔었던 기억이 났고, 현충원을 올 때마다 힘들지만 값진 경험을 한 번씩 하는구나, 다음번에는 어떤 계기로 오게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충원의 순국선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서대문 형무소로 향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당신의 희생이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라는 글귀였습니다. 옥중 속 힘든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당시 마음속을 들어가 보고자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읽었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나라를 위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감옥의 구조, 감시체계들을 살펴보니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이고 꼼꼼한 방법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고민해온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들의 좋은 뇌를 더 평화로운 일에 사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강화도 전쟁기념관, 그리고 연평해전 -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말이 있습니다. 연평해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으셨던 박경수 하사께서는 그 이후로 배를 타는 일을 갖지 않으셨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배에 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배는 천안함이었고, 결국 전사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연평해전 당시 전우들을 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좋지 않았을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전우들이 위에서 따뜻하게 맞아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연평해전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연평해전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연평해전 당시 제 나이는 7살이라는 핑계를 속으로 하곤 했지만 그 당시 가족들 앞에서 붉은 옷을 입고 텔레비전 앞을 뛰어다니던 제가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골대에 골이 들어갈 때마다 더 밝게 빛났던 붉은 옷이었지만, 붉은 옷을 입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피로 붉게 물들어가는 옷을 입었던 군인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알았던 제 자신이 창피하고 슬펐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민족의 한이 있고, 사람들의 정신과 의지가 강한 나라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평해전의 전사들과 월드컵선수들 모두 함께 싸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함정승선 체험 등을 하며 해군들의 자리를 느껴보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갖고, 바다에서 날아가는 하얀 갈매기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가 해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필리핀 軍 참전비 -

  우리는 많은 참전비 앞에 서서 묵념을 하고 우리를 위해 전사하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꼭 잊지 못할 것은 필리핀군 참전비였습니다. 유엔군에게도 똑같이 느꼈던 마음이었는데, 그들은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와서 잔인한 전쟁을 같이 겪고 결국에는 생전 처음 왔을 수도 있던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필리핀이라는 나라는 그 당시는 우리보다 더 안정적인 나라였겠지만,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무서운 전쟁에 지원을 해주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했던 나라였습니다. 참전비 앞에서 묵념을 하면서 그들이 우리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고통스러웠을까 헤아려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알지 못하고 잊고 살아가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도보 행군과 땅굴 -

  생각보다 도보 행군이 많지는 않았고, 많은 날에도 대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 도와가며 행군하느라 힘든 줄 모르고 일정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첫날에는 1시간 정도 배낭을 메고 걸었는데, 모두들 처음이라 그런지 다리가 아픈 것 보다는 무거운 배낭을 메는 것이 더 힘이 든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걸었습니다. 둘째 날 행군에서는 강화대교를 건너는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후진을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모두들 불평하기 보다는 더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쉬는 중에 식염소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먹어보았는데, 실수로 씹어 먹었더니 달고 짜고 쓴 모든 맛을 함축시켜놓은 알약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열흘 동안 매일 행군을 하면서 조별로 무전기에 대고 크게 노래를 하면서 가거나 쉬는 도중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으며 힘든 것 하나 없이 즐겁게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에서는 게임을 하면서 이긴 사람의 배낭을 대신 들어주는 등 벌칙을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행군 한 적도 많았습니다.

 다섯째 날에 행군을 시작할 무렵 많은 비가 쏟아져 내려 걱정을 했지만 판초우의를 쓰고 모두들 더 신나게 걸어갔습니다. 그날 밤 운동화를 말리느라 군부대 생활관 안에서는 모두들 힘들었지만, 그것 또한 소중한 추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친아버지께서는 어릴 적 국토대장정을 했을 때 주민들이나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힘내라며 초코파이를 주거나 음료수를 주곤 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본 사람들도 물질적인 것은 주지는 않으셨지만 창문을 내리고 응원을 해주시고, 박수쳐주셔서 아버지의 그때 마음을 나도 공감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걸었던 것은 도보도 있었지만 땅굴도 빼먹을 수 없습니다. 땅굴 속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춥게 느껴질 정도로 온도가 낮았습니다. 땅굴은 정말 깊숙이 파여 있었고, 걸어가는 동안 조원들과 함께 우스갯소리로 북한군이 힘들게 파놓았더니 남한에서 관광지로 돈을 벌고 산다고 하며 계속해서 내려갔습니다. 그래도 ‘땅굴’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두려움을 주는 존재이고, 어디선가 또 다른 땅굴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길고 길었던 땅굴이 언젠가는 남북을 잇는 지하철, 기찻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 군부대 생활 -

  향군 국토대장정의 가장 큰 장점은 軍 시설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저녁시간에는 세탁 및 청소, 씻는 전쟁을 치러야 했고, 아침마다 기상시간에 맞추어 체조도 했으며 식사 후에는 각자 식기세척을 하고 취침 전 점호, 새벽에는 불침번을 서는 등 훈련 빼고는 모두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군부대에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첫째 날 처음으로 먹었던 저녁식사가 가장 맛있었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메뉴는 어묵국, 김치, 치킨너겟을 잘게 자른 듯한 반찬, 달걀후라이에 고추장과 고기볶음을 섞어 먹고 후식으로는 건빵과 우유까지 주셨는데, 이정도면 군대에서 살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다음날부터 생각을 바꾸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해병대에서 먹었던 아침식사는 햄버거식빵에 직접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것이었는데, 시중에 팔면 절대로 팔리지 않을 듯한 식감의 햄버거였지만 잊지 못할 맛이었습니다. 힘들게 도보 행군을 하고 나서 바닥에 쪼그려 앉아 모여서 먹었던 전투식량도 잊을 수 없었고,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시던 취사병들, 우리의 자리를 내어준 군부대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10시가 되면 칼같이 잠에 빠졌던 나로서는 새벽에 일어나서 불침번을 섰던 것이 조금 힘들었지만 내가 불침번을 서는 동안 안전하게 잘 수 있을 동료들을 생각하며 버텼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냥 불침번자리에 앉아있었다면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처음 불침번을 서게 된 날 새벽 3시경 한 군인께서 군복을 갖춰 입고 불침번을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행하게 되었습니다. 최전방에 있는 많은 부대에서의 생활,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 군인 그리고 마지막 -

  군 시설을 체험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봉사, 나눔도 소중하고 힘들기도 했고 값졌지만 군인들은 나라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힘들게만 생각하고 억지로 가는 곳, 누군가는 피하기만 하는 곳이라서 한때는 ‘군대가 인생의 낭비가 되는 곳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지 않게 생각했었고, 군인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는데, 정 반대였습니다.

 군인들은 어떤 직업보다도 멋진 직업과 꿈을 갖고 계신 분들이었고, 사회복지사들 못지않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료 취사병들을 생각하며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취사병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식판은 각자 세척하며, 화장실의 글귀마저 물을 아껴 쓰기 위한 것이고, 때로는 샤워도 찬 물로 하며 빨래할 때에는 세제는 조금만 쓰고, 종이컵 따위는 쓰지 않고 물 컵을 사용하여 항상 닦고, 모두가 잠에든 새벽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서고, 지역의 잡일을 도우는 경우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목숨이라는 것을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가장 반성했던 순간은 화장실에 있던 글귀를 봤던 때였는데, 그 글귀는 ‘하루 물 10%절약으로 팔당댐 2개 만든다.’ 였습니다. 한 순간도 어떤것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군인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중하고 멋진 분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이렇게 살아가는데, 이렇게 불편한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던 것일까, 군인들에게 많이 배우고 반성도 하게 되어 의미 있던 날들이었습니다.

 또한 군인들이 부러웠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저는 여자라서 의무로 군 복무를 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일정시기가 되면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저는 그 기회가 정말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열흘 동안에 군부대에서 많은 추억을 나누었던 저는 생활관에서 편지 쓰는 시간을 갖던 중 한 책상을 꺼냈는데, 그 책상위에 쓰여 있던 군대선후배간의 낙서들, 조언들이 너무 멋졌고, 그런 추억을 가진 그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고, 앞으로의 30년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고들 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많은 시간동안 아팠고, 떨어져 있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도 잘 받아들이는 우리 한국, 이제는 언어도 같고 생김새도 같은 서로를 받아들일 시기가 와야 합니다. 저도 비무장지대의 생태환경을 지키겠다고 다짐한 지원서 내용을 잊지 않고, 이번 대장정을 참가했던 모든 대원들도 열흘 동안의 추억을 간직하여 우리가 새로운 우리나라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Konas)

최정윤 (건국대학교 1년)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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