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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⑭ <입선> 어제도 오늘도 참 감사한 하루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법을, 앞장서는 법을, 남을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Written by. 김태헌   입력 : 2018-10-11 오후 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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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밑거름이 된 사회복무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 8월 16일부터 한국 철도 공사 신창역에 배치받은 김태헌입니다. 군 훈련소에서 다한증으로 퇴소 후 신창역으로 다시 배치받은 저는 솔직히 말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현역을 가지 못하고 대체 복무를 한다는 것, 단지 대체'라는 한 단어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창역의 사계절을 보내고 푸른 여름을 기다리는 지금, 그때의 저를 떠올려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도움을 받기만 했을 뿐, 도움을 주는 것도,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별다른 관심도 없던 제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경험도 하게 되었고,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1년 10개월, 길고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제가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책임감 하나로

 2016년 10월,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던 역이 조용해지고 선로 뒤 푸른 나무들에게 시선이 가는, 여느 때와 다른 없는 신창역의 낮이었습니다. 저는 그 날의 풍경,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가로운 승강장 사이로 놀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한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20대 외국인이 심정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이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머리와 입에서 피가 흐르는 상태였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역무원에게 응급차를 불러달라 하며 그분에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군사교육소집에서 배웠지만 처음 실시해보는 심폐소생술에 이 분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 그래도 꼭 살았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이 통한 것인지 3분간의 심폐소생술 끝에 그 분이 깨어났고 이후 응급차를 타고 이송되었습니다. 그 분이 떠난 후 정신을 차려보니 긴장이 풀리며 제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인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사회복무요원들이 많겠지만,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유실물

 1호선 종착역에 근무하는 저는 역 특성상 가방부터 침대, 텐트까지 정말 다양한 유실물들을 접하게 됩니다. 지난겨울, 출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복무요원 때였습니다. 외국인에게 전화가 왔고, 서툰 한국어로 가방을 잃어버렸는데 여권, 돈이 들어 있는 지갑이 있다며 간절함이 너무나 느껴지는 목소리였습니다. 외국인은 그 가방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어, 꼭 가방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이 타고 있었던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승객들에게도 물어보며 한참을 찾아다녔고, 허나 가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가져갔구나, 그 외국인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낙심하며 다시 돌아가려는 찰나 열차 구석에 가방 하나가 보였습니다. 새내기 사회복무요원이라 더 그랬던 것일지 모르겠지만, 수학여행에서 마지막 남은 보물을 찾은 것 보다 더 기뻤던 것 같습니다. 얼른 그 외국인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고, 그 분을 만났습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옷차림을 보니, 우리나라에 일을 하러 온 외국인 같았습니다. 너무 기뻐하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만원을 주시려 했습니다. 타지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도 보지 못하고 힘들게 번 돈일 텐데, 그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또한 유실물 하나하나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하루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복무 한지 어느덧 1년 11개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신창역은 공기 좋은 시골에 위치한 만큼 노인 분들, 몸이 불편하신 분들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도움을 청하는 전화가 왔고, 그 전화는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할머니께서 곧 역에 도착하니 전철 타는 곳까지 안내를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할머니께서 오실 시간에 맞춰 입구로 나가있었고 안내를 해 드렸습니다. 제 팔을 잡고 함께 걸어가며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더운데 고생이 많죠? 그래도 당신들이 있어서 우리들이 절망하지 않고 살 수 있어요. 고마워요. 서울까지 전철로 다닐 수 있는 게 모두 당신들 덕분이에요.ˮ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했습니다. 사무실과 승강장을 오고 가는 일들이 많은 저는 사실 그런 도움의 요청 또한 더운 날 승강장을 다시 가야 하는 귀찮은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소하게만 생각했던 저의 행동이 그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서울로 전철을 타고 가는 그러한 평범한 일조차 불의의 사고로 또는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정말 큰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히려 그분들이 저에게 밝은 미소와 함께 격려와 감사를 전해주시니, 지금껏 저는 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도움의 요청이 오면 누구보다 밝게 그 분들을 맞이합니다. 조금의 도움이라도 베풀 수 있는 신창역의 오늘도 참 감사한 하루입니다.

뜻 깊은 야간 근무

 전철역 근무는 다른 사회복무요원과 다른 또 하나의 특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야간 근무입니다. 벌써 1년 10개월째 하고 있는 야간근무에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느라, 만취한 사람, 노숙인 등 여러 사람들을 응대하느라 진땀을 빼곤 했습니다. 야간 근무에서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중 제일 마음이 쓰였던 이야기 하나를 하려고 합니다.

 작년, 무더운 여름밤이었습니다. 막차를 보러 나가던 와중, 역에서 방황하는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누구를 마중나오신 걸까 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자세히 보니 남루한 행색에 혼잣말을 하며 돌아다니셨습니다. 다가가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어디 편찮으세요ˮ하고 조심스레 말을 걸어도 저를 피해 혼잣말을 하기만 하셨습니다. 빨리 마감을 해야 하는 터라 다른 업무를 마무리 할까 고민도 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란 저는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치매가 있으신 것 같았고,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마감을 하고 누워서도 그 할아버지를 찾아다닐 가족들 생각에, 우리 할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설쳤던 것같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경찰은 할아버지 가족과 연락이 닿아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 드렸다는 연락을 해왔고 가족들이 정말 감사해한다는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이때까지의 야간근무 중 가장 늦게 잠들었던 밤이었지만, 피곤함이 다 날아간 듯 어느 근무보다 뿌듯했던 날이었습니다.

지난 사회복무를 되돌아보며…….

 제 첫 사회생활이라 볼 수 있는 2년 가까이의 사회복무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려 하니 지금껏 살아온 제 인생을 먼저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제 인생에 있어 항상 나에게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이 올까' 하며 탓할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찾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며 제 주변에는 항상 저를 생각해주고 함께 해주는 분들이 있었다는 점, 도움을 받기만 하고 주는 건 몰랐던 제가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신창역에서의 첫 몇 달간 또한 야간 근무에,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도우며 힘들다는 불평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께서 건넨 감사인사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작게는 유실물을 찾아주는 것부터 크게는 사람을 살리는, 가슴 따뜻한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법을, 앞장서는 법을, 남을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끝마무리가 좋아야 그 전체가 좋다고 하듯 얼마 남지 않은 복무 기간 하루하루 더 나서서 일하고 돕겠습니다. 그리고 처음의 저도 그랬듯 대체' 복무라는 타이틀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저와 같은 사회복무요원들이 언제나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그리고 사회복무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합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konas)

한국철도공사 신창역 김태헌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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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6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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