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통성과 제주 4·3 기념관
제주 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 전야(前夜)의 통사(痛史) 그 한 단면이다. 당시 좌·우의 대결 와중에 희생된 고혼(孤魂)을 위령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4·3사건 60주년을 맞아 문화일보가 둘러본 평화기념관은 그 자체가 또 다른 갈등의 씨가 되고 있다.
2000년 1월 제정 공포돼 그해 4월 시행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에 따라 600억원 가까운 재원을 들여 건립해 지난달 28일 개관한 기념관은 ‘4·3의 원점’인 1948년 4월3일 미명 2시의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무장봉기를 미화하다시피 하고 있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해서”라는 남로당 ‘전단’을 전시하고 있는 것부터 그렇다. 한편, 당시 군·경의 진압은 ‘초토화작전’으로 소개하면서 “제주도는 마치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라고 적고 군·경과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학살자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특별법의 3대 취지가 인권신장,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임을 새삼 되돌아보며, 기념관이 당시 시대상에 대한 거시적 조명없이 ‘가해와 피해, 탄압과 희생’이라는 흑백 양분법으로 일관하는 것은 3대 취지 자체를 무색케하는 또 다른 왜곡에 해당한다고 믿는다. 건국 전야의 군·경을 학살자로, 남로당을 애국세력으로 분장(扮裝)시킨다면 그것은 그 4개월 후의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에까지 흑칠하는 죄책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4·3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2003년 10월15일 결론, 곧 “4·3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킨 무장봉기가 발단이 됐다. 단, 강경진압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냈고 다수의 양민이 희생됐다”는 것과도 앞뒤가 어긋난다.
김태환 지사는 개관식에서 “4·3 평화기념관은 제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르게 정립하고 도민의 안타까운 희생을 기리는 산 증인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우리 역시 과거의 희생에 대한 진솔한 위령과 함께 시대의 비극에 대한 정확한 사실(史實)로써 기념관 이름 그대로 당대와 미래를 위한 평화, 그 상생 화합의 교육장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4.3일자 문화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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