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대 국회에 바란다
정책기능을 강화하고, 미래과제 선정에 전념해야
제18대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로 총선이 막을 내렸다.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4개월도 되지 않아 숨 가쁘게 맞이한 국회의원 선거였지만 국민의 심판은 역시 위대했고 표심은 절묘했다.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창조한국당 모두에게 완벽한 성공도 완벽한 실패도 안기지 않은 채 정치권 전부를 국민은 준엄히 심판했다.
과거 의제와 이념에 파묻혀 무능했던 17대 스타급 국회의원들을 심판했으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각료 인선과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실책과 오만을 꾸짖었다. 국민들이 직접 3김 시대의 종언을 고해주었으며, 이제는 독선도 발목잡기도 통하지 않음을 알려 주었다. 한반도 대운하든, 정부 여당 견제든 관심 없고, 경제 즉 당장 밥 먹고 사는 일에 신경 쓰는 민생 국회를 만들라는 커다란 경고 메시지를 보낸 선거 결과였다. 본 글은 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의 의미를 한국 의회민주주의라는 큰 틀에서 살펴보고, 18대 국회에 거는 국민의 기대를 적어보고자 한다.
투표 기피는 정치에 대한 불만 때문
대한민국은 초고속 경제성장과 성공적인 민주화로 세계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OECD 회원국에 걸 맞는 선진 경제와 선진 정치는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애타게 갈망하고 있다. 때문인지 작년 말의 17대 대통령 선거는 과거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을 종식시키고 선진국 진입에 필요한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행정적으로” 실현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투표로 나타난 선거였다. 그리고 이어진 이번 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그러한 새로운 시대적 가치 실현을 “의회 차원에서” 논의하고, 이념정치에서 탈피하라는 요구였다.
사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의 의미에서 국민이 정부권력, 의회권력, 지방자치 권력을 모두 한나라당에 몰아준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은 과거 10년의 이념정치에 만족하지 않으니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실현하라는 명확한 의사 표시이다.
더 나아가 50%도 넘지 않는 투표율 저하가 보여주는 한국식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 메시지 역시 주목한다. 어제 투표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 이유는 국민들의 기존 방식의 정치에 대한 혐오 표출이다. 이대로의 한국식 의회정치에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국민적 경고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투표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어서라든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투표에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커다란 정치적 쟁점도 없었고, 각 당의 공천이 늦어져 정책은커녕 후보자 이름조차 외우지 못했던 국민들의 불만이 투표 기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앞으로 국회가 정치력을 회복하여 새로운 의회민주정치의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투표장으로 돌아올 것을 확신하며, 막 탄생한 18대 국회에서 실천해야할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의회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의회의 정치력을 회복해야
첫 번째, 국회가 의회의 정치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의회정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에 의하여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래서 국회를 “통법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민주화의 투사들이 대통령이 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국회는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무조건 동의 아니면 무조건 반대였다. 여당은 무조건 동의였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배운 투쟁과 밀어붙이기를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서도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미워하며 배운다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권위주의 통치 덕분에 성장한 박정희 스쿨(school)의 정치꾼에 불과하였지 의회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치지도자가 아니었다. 386의 대변자 노무현 대통령 역시 토론을 좋아했지만, 여야 국회의원들과 만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했지 토론으로 자신의 정책을 바꾼 적은 없다.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는 나아지지 않았다.
의회는 자고로 민주정치의 중심이다. 행정은 대통령이 중심이고, 민주정치는 의회가 중심이다. 따라서 의회 민주정치 실현을 위하여 입법부 의회는 정치력을 회복해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를 예로 들어보자. 진정한 객관적인 한반도 대운하 논의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행정부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실행방안을 만드는 것이 임무이고, 의회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각계의 전문가들을 데려다 놓고 청문회를 열고, 실천방안을 검토하고, 토론하는 것이 임무이다. 대운하 관련 예산을 써도 국민 세금이고, 대운하 실천을 위한 법안도 국회가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여야로 갈려 정부안을 놓고 무조건 되니 안되니를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고, 전문가들과 검토하고 토론한 뒤, 국민의 이름으로 최종 결정해야 한다.
우리 정치는 강한 대통령제를 가지지만 입법?행정?사법은 나뉘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삼권분립의 제도도 함께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 견제의 제1차적 책임은 의회에게 있다. 과반을 넘는 집권다수당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은 정부와 함께 국회를 장악하여 통법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야당은 발목 잡는 것이 정치력이 아니다. 사안에 따라 행정부를 견제하고 여당과 협조하는 것이 의회 정치력의 회복이다. 그리고 새롭게 추구해야할 선진 의회민주주의 정치의 진정한 모습이다.
정책 기능을 강화해야
두 번째, 정책 기능의 강화이다. 국회의 기능이란 본래 입법을 통하여 국가의 정책을 추인하고 감독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와 국회의원은 모두들 인정하듯이 싸움만 잘하지 정책은 없었다. 정책 대신 국회의원들은 농성을 했고, 필요하면 난투극을 벌였다. 그 동안 국민들도 권위주의 시절의 대결정치에 익숙해져 있어 고성에 몸싸움 잘 하는 것을 의정활동 잘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18대 국회가 선진 의회정치를 실현하려면 정책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행정부는 막강한 정부출연 연구소들의 도움으로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국회는 국회예산정책처와 최근에 만들어진 빈약한 국회입법조사처 뿐이다. 이들 기관조차도 객관적인 조사나 보고가 아니라 여당 눈치를 보며 입맛에 맞는 결과물 내기에 바빴다. 그러면 정당에 소속된 정당연구소라도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선거 때마다 정당의 이합집산이 변화무쌍하여 정당연구소가 정책입안이나 입법 보좌기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이다.
따라서 18대 국회는 과감하게 국회, 정당, 국회의원 개인의 정책기능을 향상시키는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국회의 독자적 정책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부정책에 대하여 이제까지의 명복상의 기능에서 미국 의회와 같은 능동적 기능을 갖추어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할 수 있는 정책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과거의 거수기 국회, 사학법과 BBK와 특검법안 통과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K-1 격투기의 달인이라는 오명을 벗어 날 수 있다. 졸속 입법 처리가 일어나는 이유도 국회의원들이 정책에 문외한이고 법안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8대 국회는 정책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미래 과제 설정에 전념해야
세 번째, 제18대 국회는 한국사회의 미래 과제 설정에 전념해야 한다. 지난 17대 국회는 과거사법, 사학법 등 한국사회 과거의 잘못을 교정하겠다는 임무를 주로 실천하느라 바쁜 국회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미래 과제들이 존재한다. 2020년이면 닥칠 고령화 사회, 전 세계적인 에너지자원 문제, 국민연금의 개혁, 한미 FTA에 이은 한-EU FTA, 한-加 FTA, 한-중/일 FTA 협상 등 세계화 물결에 대한 대처 등 셀 수 없이 많은 장기적 과제들을 가지고 있다.
국회는 그 동안 사실상 정부가 해결해야할 과거사 정리와 같은 갈등해결에 매몰되어 이익집단들 간의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고, 미래과제 선정이라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국회의 사회갈등 해결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미래 과제에 대한 이슈제기와 국민 의견수렴은 올곧이 국회의 몫이다. 18대 국회가 훗날 OECD 회원국 국가다운 선진국회로 평가 받기 위하여, 그리고 한국정치가 민주주의 공고화에서 선진 의회민주주의로 자리매김 하기 위하여 18대 국회는 미래 과제에 전념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고 하루가 급한 민생 경제 현안을 소홀히 하라는 것은 아니다. 민생의 현재와 미래를 법과 경제원칙에 따라 성실히 챙기라는 주문이다.
17대 국회가 마무리해야 할 일
마지막으로 17대 국회가 막 태어난 18대 국회를 위하여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한나라당의 과반 확보, 통합민주당의 부진,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참패라는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들이 한미 FTA 협상을 비준동의 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사 입법, 사학법, 삼성 특검, BBK 특검 등 과거 헛발질에 몰두한 17대 국회가 그래도 한국의 미래를 좀 더 생각한다면, 벌써 협상타결 1년이 되는 이 시점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여 18대 국회의 부담을 덜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잊었겠지만 17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2004년 5월 30일에서 2008년 5월 29일까지이다. 17대 국회의원들은 앞으로도 2개월이나 더 세비를 받는다. 국회의원 특권도 모두 누린다. 하지만 지역구에 대한 책임은 벗었다. 그렇다면 17대 국회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며, 도리이다. 그것이 제17대 국회의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는 것이고,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모습이다.(konas)
김인영 (한림대학교 교수,http://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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