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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은 참 군인의 표상

이충무공 탄신 463주년, 애국애족 정신을 다시금 가슴에 새긴다

Written by. 정호섭   입력 : 2008-04-28 오전 8: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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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28일)은 이충무공께서 탄생한 지 463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다. 400여 년 전,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누란의 위기에서 홀로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국가와 민족을 끝까지 지켜낸 우리의 진정한 영웅. 그분이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날 이 나라와 민족이 있을까?

  충무공은 애국애족 정신과 참군인의 표상이었다. 충무공은 평소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잘못한 자에게는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처벌함으로써 추상 같은 군기를 세웠다. 특히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거나 병영 내에서 전우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관리 잘못으로 전투력을 손상시키는 행위는 조금도 용서치 않았다.

  또 충무공은 전투에 임해서는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라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정신으로 장병을 무장시켰고, 적 앞에서 군령을 어기거나 꽁무니 빼는 행위를 결코 용납지 않고 일벌백계했다. 부하들은 그 어떤 왜적보다 충무공을 가장 무서워하며 목숨 바쳐 전투에 임했고 그 결과 27번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했다.

  아무리 훈련이 고되고 군기가 엄해도 부하들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그를 믿고 따르면 왜적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충무공의 이러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부하들은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순절한 지 5년 후인 1603년 여수에 타루비(墮淚碑·떨어질 타, 눈물 루)를 세웠는데 ‘우리 부하들을 살려 주시고 저렇게 전몰해 가셨다.

  이를 생각하며 그 비만 쳐다보면 눈물이 흐른다’라는 요지의 글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철거해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속에 몰래 묻어놓은 것을 광복후 여수 유지들이 찾아서 원래 자리에 세웠고 현충사 정문 옆에 복제 비석을 세웠다.

  충무공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 일제강점기 때 진해에 있던 일본 해군 요새사령부에서 중요한 연중행사 중 하나가 통영에서 올린 이순신 제독에 대한 진혼제(鎭魂祭)다. 일본 해군이 충무공을 이렇게 숭배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한해협(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함대에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이 취한 T자형 기동이나 적진 앞에서의 선회기동도 충무공의 전법을 모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고 제독은 충무공의 전법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정신에 이르기까지 그를 이상적인 모델로서 스승처럼 생각했다. 어떤 이가 대한해협 해전에서 개선한 도고에게 “이번 승리는 역사에 남을 위대한 승리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넬슨 제독에 필적할 만한 당신은 군신(軍神)”이라고 말하자 도고는 “본인이 넬슨에 비교되곤 하지만, 이순신에는 미치지 못한다.진실로 군신의 이름에 걸맞은 인물이 있다면 이순신 그분이다”라고 말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오늘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우리 모두는 경건한 마음으로 충무공의 거룩한 뜻과 업적, 그리고 그분의 군인정신을 되새기며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는 뜻 깊은 시간을 가져야 할 듯하다.(Konas)

  정호섭(해군준장, 한미연합사 인사참모부장)

출처 : http://kookbang.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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