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강좌>김정일 독재정권은 수령 절대주의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는 것은 사상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사상밖에 없습니다. 집단적인 사상(자본주의는)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이해를 못합니다.
김정일의 독재체제, 이것은 내가 한마디로서 늘 이야기 하는 것이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입니다. 이것은 스탈린 식 독재체제에다가 봉건 가부장적 전제주의를 접목한 것이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스탈린 식 독재라고 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독재에다가 수령절대주의를 첨부한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출발 한 것은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그것은 오직 이기주의가 전혀 없는 계급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기주의가 전혀 없는 계급이 무엇인가? 그것이 무산계급입니다. 무산계급은 아무 것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알몸만 가지고 있는 계급이기 때문에 더 무슨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밖에 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을 계급사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맨 처음에 이야기 한데서는 단결해서 투쟁하는 무산계급의 심장에다가 공산주의 철학을 결부시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이 무산계급의 사상으로서 공산주의 사상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공산주의 철학이라고 하는, 공산주의 사상은 그전부터 내려오는 그것을 이 무산계급이 단결해서 투쟁하자는 것, 투쟁만이 살길이다, 단결해서 투쟁만이 살길이다 하는 것을 심장과 결부시켜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사심 없는 계급이 마음대로 독재를 실시해야 모든 계급들이 다 해방이 돼서 완전히 평등한 특권이 없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 무산계급의 가운데서 제일 그 정수분자들의 후대가 뭐인가. 이것이 공산당입니다.
그러니까 무산계급이 독재할 권리를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대표하는 공산당이 독재를 해야 된다, 공산당은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기주의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공평무사하게 독재를 실시해야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그때 독재의 대상은 이 평등을 반대하는 전복 된 유산계급들이라고 이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레닌까지도 이걸 기본적으로 승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영도자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집단적으로만 이 무산계급이 추천하고 선발 된 이런 공산당과 공산당에서 또 추천한 지도 집단의 독재를 실시하는 것이지 공산당의 이름으로, 무산계급의 이름으로서 독재를 실시하는 것이지 수령이라고 하는 것은 인정할 수가 없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수령을 아주 반대했습니다.
개인적인 수령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스탈린이 실제로 자본주의적 포위 속에서 자기네 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다보니까 단결이 더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다음엔 무산계급을 위해서는 단결이 생명이다, 단결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원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공산주의자가 지도자로 해서 공산당을 대표해서 독재를 실시할 수 있다, 이런 데로 나갔습니다.
이것이 스탈린의 개인숭배 정책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개인독재가 실시됐습니다. 그러나 개인독재는 어디까지나 공산당의 의거한 공산당의 이름으로 하는 독재고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하는 독재였습니다.
후르쇼프란 사람이 그 22년이든지 20차당대회던가 20차당대회에서 그 스탈린을 비판하고 번번이 우리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그 사람이 했는데 가서 스탈린이 많은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 다 노동계급의 이름으로서 죽였다, 이것이 딱하다, 자기 개인적인 그런 이해관계로서 죽인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으로서 죽였다, 그게 아주 참 딱한 노릇이다, 잘못했는데 이것 딱 욕하기가 거북하다는 그 말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스탈린 독재를 그냥 가져가서 모방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정치를 해 본 사람이 아닙니다. 빨치산 투쟁을 했습니다. 물론 빨치산 투쟁은 어려운 투쟁이고 훌륭한 투쟁입니다.
그렇지만 무슨 사회주의를 해 본 일도 없고 그런 기구를 가지고서 움직여 본 일은 없습니다. 소련에 들어가서도 그저 이 특수여단에서 뭐 낙하산 가지고 내리는 연습도 하고 뭐 그런 연습을 했을 뿐이지 정치적인 공부는 뭐 별다르게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북한내부에서 자기 지반은 전혀 없고 뭐 어릴 때 떠나가지고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가 그래도 좀 연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박달이의 갑산 파 들이였습니다.
박달이가 직접 김일성을 만나고 좀 연계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 그러니까 국내파로서는 갑산 파 그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자기 정치적 역량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도자로서의 이제 붉은 군대가 내세웠는데 그 붉은 군대도 물론 마음대로 못했을 것이고 스탈린한테서 승인을 받아서 시켰을 것입니다. 여기 나올 때 똑똑한 건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 관계부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김일성이가 불리어 가서 모로또브를 만났다고 그럽니다.
모로또브 한테서 아마 위임을 받고 내려온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9월17일에 원산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때는 벌써 여기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전에는 스탈린의 지시에 의해서 모든 빨치산 부대들, 반제국주의 투쟁부대들은, 그러니까 소련에 들어와 있는 것들은 다 돌아가서 거기에 주둔군 사령관들을 도와주라, 거기 작전에 참가하지 말고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전에 온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있다면 여기 와서 그 소련사령부에 속해서 일들을 했는데 김일성 이는 늦게 왔습니다. 9월17일 오는데 여기 주둔군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런 것은 지도자로서 임명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서 어떤 제도를 만들고 어떻게 관리하고 여기엔 전혀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소련정부 측의 당이 세심하게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정부관계기관들 뿐만 아니라 대학, 공장에 이르기 까지 다 고문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는 조선 사람들의 2세들 가운데서 또 뽑았습니다. 그게 아마 400~500명은 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파견했습니다. 김일성 이는 그땐 완전 로버트였습니다. 할 일이 없었고 자기가 또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 기간에 좀 공부는 했습니다. 그 소련고문들이 아침마다 와서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도 강의를 해주고 정치, 경제학도 강의를 해주고 해서 그 기간에 로버트는 로버트지만 공부는 했습니다. 소련 그 고문학자들이 와서 특별히 김일성을 양성하기 위해서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상식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빨치산 투쟁을 할 때는 하나도 그런 상식도 없었습니다. 총이나 쏠 줄을 알았지 그런 상식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의 제도는 소련고문들과 그 2세들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 이제 조선 전쟁이 일어나면서 물론 조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중국에서 혁명전쟁에서 승리하니까 거기서 고무돼서 자기도 한 몫 해보야 되겠다고 하여 이래서 모택동 이한테 가서 조르고 스탈린한테 가서 조르고 자꾸 이렇게 해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받아가지고서는 조선전쟁에 나갔을 때는 벌써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총사령관이 되고 최용권 이를 이제 전선 사령관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최용권 이가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서울을 점령하고서 3일 동안이나 여기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잘못 됐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역사연구소에 남아있는 것은 최용권이는 반역자라고 이렇게 까지 비판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소환해가지고서는 그날로 딴 데로 나가라고 하고 김책을 내보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소련의 간섭이 자꾸 적어졌습니다. 소련군대는 안 나오고 중국 군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중국에서 모택동이는 스탈린의 그 통제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 한 사람 이였습니다.
레닌의 국제 당은 각 민족 당을 지부로 보는 그 조직체계입니다. 그러니까 조선 공산당도 25년인가 창건돼 가지고 28년인가 해산을 시켰습니다. 중국 공산당 대표도 거기에 가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실정을 모르면서 자꾸 지시를 했습니다. 어떻게 해라 어떻게 해라 자기네들이 전략적으로 더 이론적인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고서 자꾸 지시를 하니까 현실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일 피해가 많은 것이 중국 공산당하고 뽈스까, 폴란드 공산당이 제일 피해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히는 중국공산당은 그때 벌써 광범한 그런 투쟁을 할 시기인데 저기서 자꾸 그러니까 큰 손해를 봤습니다.
김일성에 대해서 지시를 한 것이 아니고 항일 연군에게 지시를 한 것이었는데 그것도 코무네 테리에서 지시를 했습니다. 그 항일연대가 장춘을 반월형으로 해서 포위하라는 그런 지시를 내렸습니다.
김일성의 부대는 거기에서 당의 지시이기 때문에 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가 이야기 했는데 자기네도 그 지시에 따르자고 했는데 늦어졌다는 것입니다. 늦어져서 벌써 공격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본 군대를 포위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숨어서 투쟁해야 되는데 그렇게 격파되니까 자기는 북만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네 부대는 보존됐다고 했습니다. 그 부대가 보존됐다고 하는 것은 근 100명이나 보존됐는지 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한두 개 사단이라고 하는 것은 100명 정도밖에 안 된단 말입니다. 최용권이가 그 7군 사령관 겸 당 비서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몇 명이나 됐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는 제일 많았을 때야 한 만 명이 됐다고 그러는데 딴 사람들은 그렇게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그때 빨치산들이 이야기를 하는 말은 100명만 있게 되면 여름에는 몇 만 명이 들어와도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숲속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할 재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찾지를 못한답니다. 제일 곤란한 것이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들이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이렇게 해지면 퇴치를 못한답니다. 숨을 데도 없는데다가 눈발자국을 따라 자꾸 따라오기 때문에 제일 곤란한 것이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겨울만 나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돼서도 벌써 38년 이후에는 자꾸 저조기로 들어가서 마지막에는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40년인가 41년에 다 넘어 갔습니다.
그렇게 됐기 때문에 제도를 만들었던 것은 소련을 그냥 모방해서 만들었고 전쟁 시기에 자기가 사령관이 되면서 자기 독재체제를 세우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게 말하자면 주체를 세운다는 말입니다. 주체를 세운다는 말이 나와 가지고서 그게 이제 55년인가 그 연설한 것이 있습니다. 이 우리가 주체를 세워야 된다, 우리에게 주체는 조선혁명이다, 이래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조선 현실에 적용해야 된다, 이것이 주체사상입니다.(konas)
황장엽(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前 북한노동당 비서) / http://www.free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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