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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공포의 균형

우리도 核문제를 남의 정신이 아닌 나의 정신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볼 때가 왔다

Written by. 김철   입력 : 2008-05-19 오후 5: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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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核문제는 군사력의 문제이지만 실제로는 政治力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보유하되 사용하기는 용이치 않은 것이 核이기 때문이다.
  냉전기간을 통해 核은 ‘공포의 均衡子’로써 본격적인 大戰의 발발을 방지하였다. 바로 이런 설명이 전통적으로 국제정치학자들이 냉전의 상대적 평화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같은 ‘공포의 均衡’이면서도 다른 처방이 있었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核무장의 이론가 피에르 갈로와(Pierre Gallois) 장군의 견해(저서: 『공포의 균형(The Balance of Terror)』)는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갈로와는 核을 제한하는 것이 확산되도록 놔두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이론을 펼쳤다. 그저 核을 제한만 하게 되면, 한국전쟁과 같은 制限戰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세계가 核전쟁의 자살적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러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세상을 보다 안전하게 만든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모두들 권총을 차고 있으면 아무도 함부로 빼들지 못한다는 얘기이다. 불행하게도 갈로와의 견해는 오늘날 核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 점점 근사치에 다가가고 있는 느낌이다.
 
  갈로와의 이론에 따른 드골 대통령의 주장을 소박한 말로 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美國이 유럽을 위해서 核전쟁을 불사한다고 믿기는 어렵다. 소련이 프랑스를 全破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모스크바 하나만이라도 박살낼 능력을 갖춘다면 소련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 核무장을 단행했다. 프랑스의 정치적 발언권에는 核무장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1950년대 초, 毛澤東은 “지금의 세계에서 우리는 타국의 업신여김을 받지 않기 위해 核무기를 반드시 갖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1964년 중국은 錢學森의 주도로 원폭실험에 성공한다. 중국은 또한 60-70년대에 兩彈一星(원자탄-원자탄 운반체, 인공위성)의 목표 하에 소위 전략적 위협역량의 기초를 닦았다.

  싱가포르 합의니 뭐니 하지만, 北核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넜다. 그들은 결코 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核은 북한이 가진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北核이라는 군사력과 정치력에 대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6자회담 참가국 중, 4자는 이미 核을 가지고 있고, 남은 쪽은 일본과 우리 대한민국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작심한다면 순식간에 核보유국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전쟁관리방법이 시스템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에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전략물자를 공동관리 해야 한다는 EU의 창시자 장 모네 같은 이니셔티브가 아예 없다. 동아시아의 현실에서는 좋든 싫든 군사력이 생존기반이다.
  1970년대 후반 朴正熙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설득하러 온 브라운 국방장관에게 “정 그렇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核문제를 남의 정신이 아닌 나의 정신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볼 때가 왔다.(http://www.chogabje.com/)

金哲(국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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