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인 6월을 맞이하며
6월은 보훈(報勳)의 달이다. 말 그대로 조국을 위하여 고귀한 희생을 하신 분들의 공헌을 추모하고 보답하여 기억하는 달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하여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공훈을 추모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6월을 맞이하여 기억할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6월은 어떤 달인가? 6·25가 있는 달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38도 선을 넘어 전면기습으로 남침을 시작하였고 그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만 3년 이상 한반도는 피로 물들여졌다. 그 피해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그 피해를 말해 본다면 대한민국 국군은 전사 15만, 부상 71만, 실종 13만으로 대략 99만 명의 인적 손상이 있었다. 민간인 피해를 보면 피학살자 13만, 사망자 24만, 부상자 23만, 피랍자 8만, 행방불명 33만, 의용군 강제징집 40만, 경찰관 손실 2만 등 140여만으로 집계된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 약 240만 명이 사망이나 부상 등으로 손실을 입었다.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한 유엔군은 약 16만의 인적 손상을 입었다. 한편 북한측은 민군(民軍) 합하여 292만, 중공군은 약 90만의 인적 손상을 입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6·25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결탁하고 모택동의 지원을 얻어 대한민국을 공상체제로 지배하기 위하여 한반도 산하를 피로 물들인 것이다. 그것뿐인가? 휴전 직후 집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전재민은 대한민국에서만 200여만에 이르렀고 약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경제가 완전 초토화된 것은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이제 세월은 흘러 전쟁이 일어난지 반세기를 훌쩍 지나 버렸다. 그간에 세대는 바뀌었고 이제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대다수는 전쟁의 피해를 직접적으로는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되어버렸다. 또한 그동안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전 세계가 주시할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세계 최빈국의 처지에서 경제규모로 세계 10위 정도에 서게 되었고 2007년 기준 일인당 소득은 약 2만 달러 정도가 되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었고 이제 국민 다수가 다소간에 경제적으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하여 6·25를 잊을 수가 있는가?
그것이 바로 현충일의 이유이다. 현충일은 다름 아닌 기억의 날이다. 그렇기에 영어에서는 이를 Memorial Day로 표현한다. 기념을 뜻하는 Memorial의 첫 글자와 일(日)을 뜻하는 Day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것은 그것이 국가가 기념하는 날이기 대문이고 그것도 다름 아닌 조국을 위해 숨진 전몰장병을 추도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현충일로 부른다. 드러낸다는 현(顯)은 기억한다는 의미이고 충(忠)은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충을 말하는 것이다. 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충이라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기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덕(德)인 것이다. 국가는 충성스러운 군인들이 있어야 지켜질 수 있고 군인은 조국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은 군인이 되고 군인은 국민을 지킨다. 그러니 어떻게 군민이 충을 잊을 수가 있는가?
군인에게 충이 없다면 전쟁에서의 승리는 기약할 수 없다.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충이 없다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한번 현충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자.
1989년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공산체제가 도미노처럼 붕괴된 해이고 뒤를 이어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서도 1991년 공산체제가 붕괴되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우리 나라는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 소련, 중국과 외교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게 되어 대한민국도 북한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둘러싼 안보환경의 변화가 현저히 달라지게 된 상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도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변호가 있게 되었고 전반적으로 보아 대립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악용하여 안보의 식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북한의 통일전선(統一戰線) 전술(戰術)에 동조하는 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을 미국으로 간주한다. 북한은 같은 민족이기에 '민족공조'를 해나가야 한다고 선동한다. 수시 때때로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하고 간첩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북한의 행위는 아예 못 본체 한다. 잘못된 체제 때문에 국민들을 굶주림으로 죽여가면서도 핵무기 개발에만 열심인 북한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도 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혹독한 인권탄압국인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도 모른체 하기만 한다. 이들에게 6·25는 무엇인가?
범인은 용서하되 범죄는 용사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잘못으로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다시 한번 화합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개인들 사이에서나 국가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일이다. 영원히 원한을 가져가는 것보다 올바른 삶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6·25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북한은 대한민국이 북한을 침략했다고 그 동안 선전해 왔다. 그들에게 6·25는 공산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정당한'전쟁일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국의 '괴뢰'이고 '식민지'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이 무엇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인가? 용서할 일도 없는데 용서하면서 6·25를 망각의 강에 던져 버려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우리가 현충일을 기념하여 지키는 이유가 된다. 우리에게 6·25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가슴 아픈 기억이다. 우리가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수록 우리는 6·25를 더욱 더 기억해야 한다. 평화는 평화를 누리고 있을 때 지켜야 한다 평화를 누릴수록 우리는 그 평화의 뒤에 군인들의 땀과 희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군인들의 충성을 높이 평가하고 영원히 기억해준다는 것을 아는 한 국인들은 땀과 희생일 아끼지 않을 것이다.
보훈의 달인 6월에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그들의 부모와 할아버지 세대를 기억하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조국의 아들과 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조상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같이 피와 땀을 쏟은 유엔군 병사와 그 국민들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기억의 날인 6월 6일 현충일, 그리고 보훈의 달인 6월 내내 우리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할수록 군인들은 충성스러워지고 국방은 튼튼해지며 국가는 부강하게 될 것이다. 보훈의 달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konas)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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