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5 선언」과「10. 4 선언」의 이해와 새 정부의 대북정책 권고
대선과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메시지와 명령 잊지 말아야
1. 문제의 제기
지난 해 12월 제 17대 대통령선거에서 531만 표 차이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 후 취임한 이 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총체적 경제실정으로 보고 ‘이념’을 초월한 ‘실용’에 국정 목표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현 시기 한국 역사 발전을 추동하는 정부와 국민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당면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과 관련된 국정 난맥이 수습되는 대로 대외적 경제 여건 악화에 대비하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물론 젊은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한국 근ㆍ현대 역사 교과서와 좌파정권이 북한과 합의하여 발표한 문서들의 함의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남북한 관계를 바로잡는 일이다.
「6. 15 남북공동선언」이 합의, 발표된 2000년 6월 15일 이후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선전ㆍ선동과 친북좌파정권의 비호 하에 대한민국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시대”로 오도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지난 8년 동안 초등학교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을 인솔하여 지리산 빨치산 축제에 참가하고 일제와의 투쟁 경력이 있는 남로당 간부들에게 ‘독립유공자’ 훈ㆍ포장을 주는 것은 물론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인 ‘4. 3 사건’ 을 ‘민중봉기’로 인정하고 대한민국 땅에서 개최되는 남북공동행사에 태극기가 거부되는 등 친북좌파 인사들이 활개를 쳤다.
이 선언으로 인한 남북한 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혼란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2년 한국갤럽조사에서 6. 25를 북한의 남침이라고 답한 사람이 31%에 불과했고, 2004년 조사에서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39%)이라고 답한 사람이 북한(33%)이란 답보다 많고, 2005년 16~25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2004년 1월 육군사관학교에 합격, 가입교한 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34%가 미국이라고 답하고 북한이라고 답한 생도는 33%였으며, 2006년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면접시험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6. 15 남북공동선언」의 폐단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새 정부 초기는 경제회복 구호로, 지금은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에 휩쓸려 오도된 역사와 남북한 관계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실종되고 있다.
정부ㆍ여당 내에서는 6. 15 선언과 10. 4 선언의 대남전략 함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이 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또 제17대 대통령선거 패배 충격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북한 식 6. 15 정신’ 동조세력들이 3월 말 북한의 대남 비난 개시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 촛불 시위를 계기로 반격을 시작하여 출범 100일을 조금 넘긴 새 정부 퇴진을 노리고 있다. 힘을 다하여 좌파정권을 종식시킨 우리로서는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 한반도에서 부활한 레닌
6월 4일 고르바초프(Mikhail S. Gorbachev)전 소련 대통령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있는 레닌(V. I. Lenin) 묘를 없애고 그의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로 “레닌 묘가 의미를 상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좌파정권이 북한과 합의하고 또 북한과 국내 친북세력들이 우리 정부에 이행 압력을 가하고 있는 「6. 15 남북공동선언」과「10. 4 선언」을 보면, 레닌의 정책들이 북한 노동당에 의하여 채택된 후 대한민국에 까지 확대됨으로써 한반도에서 레닌이 부활하였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1920년대 초 레닌은 전 세계 공산화와 소비에트 연방 구성을 위하여 반제국주의 통일전선과 연방제를 제의하였다.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전술을 먼저 살펴보면, 1917년 11월 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 정권은 1919년 3월부터 1921년 7월에 이르는 기간에 구라파 여러 나라에 그들이 후원하여 세운 공산주의 정부들이 단명으로 그치는 불리한 정세에 처하자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에서 후퇴하여 프롤레타리아 통일전선전술을 주장하였다.
구주 각국의 사회주의 제 정당들을 가리켜“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에 대한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배신자”라고 규탄해온 레닌은 1922년 11월 5일부터 12월 5일 개최된 코민테른 제4차 대회에서 “공산주의자는 배신적인 사회민주당이나 암스텔담파의 배반적 지도자와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레닌은 서구제국에서와는 달리 프롤레타리아가 없는 중국 등 동양 식민지에서는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서구 제국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결 구도로 공산 혁명을 추진할 수 있지만, 동양 식민지는 토착지배계급이 인민대중의 기본적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외국 자본과 타협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 대중을 제국주의와 모든 봉건 잔재와 싸우게 하는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구체적 방도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을 제시하였다.
또한 레닌은 1920년 6월 5일 소비에트연방 구성의 경험에 비추어 “연방제가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태라는 점을 인식하고, 군사, 경제적 동맹 등을 염두에 두면서 점점 긴밀한 연방적 결합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위에서 설명한 레닌의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구축을 위한 구체적 방도는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이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으며”라고 당 규약 전문에 명시되고,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태로서의 레닌의 연방제 주장은 1960년 과도적 남북연방제, 1980년 완성형 연방제인‘고려민주연방공화국’제의, 1991년 ‘낮은 단계 연방제’로 제의되어 오늘날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인 자주ㆍ민주ㆍ연방제 통일로 확정되었다.
1991년에 제의된 ’낮은 단계 연방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야 시절에 발표한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단계-연방단계-완전 통일단계) 중 군사권과 외교권을 남과 북의 두 정부가 각각 보유하는 남북연합단계와 형식상으로 공통성이 있으나, ‘공산주의체제 하의 높은 단계 연방제’로 나아가기 위하여 고안한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성공한 연방제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연방제를 구성하는 지방정부들은 모두 동일한 정치, 경제체제이므로 한반도에서는 어느 한 측이 자신의 정치, 경제 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실현될 수 없는 사안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3. 좌파정권의 호도와 포용정책으로 포장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인 자주(민족해방-주한미군철수), 민주(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공산당 활동 자유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낮은 단계 연방제’에서 점차적으로 ‘높은 단계 연방제’로 완성) 방안은「6. 15 선언」과 「10. 4 선언」에서 그대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간 집권한 좌파정부의 전반부는 국민을 속이고, 후반부 5년은 노골적으로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6. 15 남북공동선언」제 1항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와 관련하여 북측이 주한미군 철수와 남북이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하자는 뜻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김대중 정부는 북측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 것이라고 국민을 속였고, 노무현 정부는 종국에는 주한미군 철수가 예견되는 한미연합사 해체에 주력하였다.
제2항인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에 대하여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측이 연방제를 포기한 것으로, 북측은 남측이 김일성의 연방제 통일에 합의해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좌파정부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말기에 합의한 「10. 4 선언」 제1항에서 6. 15를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등 6. 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갈 것을 합의하고 제2항에서 남북한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ㆍ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조항을 채택하였는데, 이 조항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먼저 북한을 따뜻하게 포용하면서 교류ㆍ협력을 활성화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에서 냉전구조를 해체시켜 사실상의 통일로 가는 최선의 길이라는 대북포용정책을 고집하고 북한과의 교류ㆍ협력과 지원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6. 15 남북공동선언」이후 남북한 간에 있은 대북 교류ㆍ협력과 지원은 일방적 ‘퍼주기’이었고, 북한 주민의 고통 경감과 남북한의 화해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북측의 체제와 국방력 강화를 돕는 결과가 되었다.
우리가 제공한 각종 지원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돌려졌음은 1985년부터 1995년 기간 중 북한의 국방비가 67% 감소되었으나,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222%나 증가되었다는 것이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연구에 의해서 확인되고 있다.
「10. 4 선언」을 합의하면서 좌파정부가 서해 북방한계선과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112억 달러가 소요되는 각종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하여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한 구상은 현실무시, 명분 상실, 이행불능과 같은 총체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4. 새 정부에 대한 대북정책 권고
국민들은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지난 4월 9일 제18대 총선에서 친북좌파 의원들을 집단 퇴출시켜 북한식 ‘우리 민족끼리’와 공산주의 국가와의 연방제 통일을 거부하는 메시지를 표시하였다.
새 정부의 통일정책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헌법이 정한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기초한 평화적 통일이되, 공산주의 국가와의 연방제는 아니다.
또한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통일은 헌법 정신을 무시해가면서 북한 공산주의자와 ‘빨리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 모두가 안전하고 자유롭고 함께 풍족하게 잘 사는 ‘올바른 통일’의 실현이다.
새 정부는 최근 북한이 북핵문제 협상과 연계하여 구사하고 있는 통미봉남에 대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버전의 대북포용정책 검토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나, 대선과 총선에서 좌파정부와 다른 대북정책을 추진하라고 한 국민의 메시지와 명령을 잊지 않아야 한다.
첫째, 북한과 국내 좌익세력들이「6. 15 남북공동선언」을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및 연방제 통일로 해석하고 이를 이행할 것을 압박해오는 것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하고, 정부 당국자는 동 선언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우방국과 협조하여 북한 핵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통일 한반도’에서 같이 살 북한 동포들과의 대화와 교류ㆍ협력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맞는 원칙 있는 대응을 해주기 바란다.
셋째, 대북 식량 지원을 위하여 국제기구와의 협조를 강화하는 유연성과 함께 북한 체제의 비효율성으로 인하여 해마다 되풀이 되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식량 증산 방법 전수를 위한 대화도 제의하는 적극성을 보이기 바란다.
넷째, 북한 인권 개선과 국군포로와 납북어부의 송환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한 북한의 협력을 계속 촉구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가 6. 15 선언에 대하여 좌파 정부와 다른 입장을 정립, 대북정책을 당당하게 추진하는 것과 함께 개성공단 등 지난 10년간 남북한 간에 있은 각종 교류ㆍ협력, 지원 사업들에 대한 객관적인 재고조사를 하고 실패한 대북포용정책을 주도해온 정부 진용을 교체하는 것도 시급하게 보인다.(Konas)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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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大中, 盧武鉉 等 左派들아! 共産主義는 用度 廢棄가 되었다. The Soviet Union officially broke up December 26, 1991, one day after Gorvachev resigned. 이런 歷史的 事實을 當身들은 否定하는가? 卽, '레닌'의 幻想은 1991年末에 蘇聯의 崩壞로 끝장 났는데... 왜 當身들은 '이데올로기' 後進國에서 彷徨하는가? 精神차리시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2008-06-19 오후 4:4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