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60년사는 반 공산제국주의 투쟁사다 ①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성공을 뒤로하고 우리가 오늘 맞이한 위기의 본질은 역사의식 부재에 따른 방향성 상실의 결과다. 국가사회의 주도세력은 자기 정당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가 오늘 맞이한 위기의 본질은 역사의식 부재에 따른 방향성 상실 결과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키고, 건설해온 주체 세력이 스스로 자기 역사를 부정하고 매도하는데 동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빛나는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도 새롭게 역사를 만들어갈 세력도 역경을 딛고 이룩한 성공한 대한민국 역사를 계승할 의사가 없다. 성공한 자기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실패를 기도하던 세력들을 찬양하는 수준에까지 와 있다.
건국 60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성공 역사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한국현대사 60년사에 대한 확고한 역사 인식의 정립이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속, 그리고 발전이란 共産 帝國主義(공산 제국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고 공산주의를 극복한 결과다.
대한민국 현대사 60년이란 반공산제국주의 투쟁사 그 자체다.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로 탄생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종속과 발전은 전적으로 공산 제국주의와의 대결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문제는 있어도 공산 제국주의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실종되어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레닌에 의한 공산폭력혁명이 성공한 이래 유라시아대륙 전체는 폭력혁명의 파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나같이 공산주의의 물결에 휩쓸렸다. 맑스-레닌이즘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스탈린의 군사적 폭력, 그리고 一國一黨(일국일당)주의에 입각한 코민테른의 지도에 의한 공산혁명은 동독, 폴란드, 체코 등을 포함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 35개국을 예외 없이 소비에트(Soviet)식 공산주의체제로 휩쓸려 들어갔다.
한국은 아직도 공산 제국주의와 그 변태적 잔재세력 극복 작업 끝나지 않은 나라
동베를린에서 평양까지 서유럽과 일부 아시아를 제외한 전 유라시아 대륙은 예외없이 공산주의의 길을 가야했다. 맑스-레닌의 이데올로기를 외우고 '스탈린 대원수 만세!'를 외쳤고 그 초상화를 들고 서있어야 했다.
한반도는 세계 공산주의와 아시아공산주의의 종주국이 소련과 중국과 국경을 함께하는 나라로서 가장 공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다. 한국은 유라시아대륙 끝에 붙어서 밀려 내려오는 쓰나미(tzunami) 같은 공산주의의 물결을 막아내야 했다.
다른 나라는 冷戰(냉전)체제를 겪어야 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은 냉전은 물론이고 6.25전쟁이라는 熱戰(열전)과 냉전을 반복해가며 겪어야 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개인 숭배적이고 전제적이며 가장 극악한 공산체제와 대치해야 하는 세계유일의 국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60년사는 共産 帝國主義(공산 제국주의)와의 對決史(대결사)다. 대한민국 존속과 발전은 곧 공산 제국주의와의 대결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은 아직 공산 제국주의와 그 변태적 잔재 세력에 대한 극복이 끝나지 않은 나라이고 그 대결이 지속되고 있다고 역사적 사실이 분명해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역사인식과 역사적 과제에 대한 소명의식도 분명해 질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의 또 다른 의의는 공산제국주의의 확산을 막아내면서 민족사에 없는 前無後無(전무후무)한 '民主主義 革命(민주주의 혁명)'을 만들고 성숙시켜 갔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혁명, 그것이 1948년 건국체제의 또 다른 역사적 의의다.
한국은 조선의 쇄국정책과 봉건제의 지속으로 민주주의적 역사와 경험을 갖지 못했다. 서양 문물과의 교류는 1876년을 기점으로 비로소 시작되었고 정치사회는 전근대적 왕조체제가 20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더구나 봉건체제의 해체와 근대화나 반봉건화도 타율적이거나 일본 식민체제를 통해 이뤄야했다. 열강에 휩쓸리는 시대가 계속되다가 일본에 의한 식민체제를 겪어야 한다. 스스로 근대저 ㄱ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켜나갈 기회와 경험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그 어떤 사실과 지표 보더라도 한국 민주주의 혁명은 1948년 건국체제에서 비롯됐다
우리 민족은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비로소 근대 민주주의를 도입시킬 수 있었다. 건국체제는 민족사에 유례가 없는 혁명적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킨 시기였다. 왕조체제를 폐지하고 민주공화제를 확립시키고 의회민주주의를 시작한 것도 대한민국 건국을 하면서였다.
남녀나 신분 차별 없이 모든 성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며 보통선거제도를 시작한 것도 바로 1948년 건국체제에서였다. 봉건제와 식민제를 막 끝냈지만 보통 선거권은 유럽 국가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일찍 도입되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건국과 함께 다른 나라들이 상상하기 힘든 경쟁적 복수정당제와 정기적 선거체제를 확립시켰다. 그 이후 선거는 끊이지 않았고 6.25전쟁 중에도 선거는 계속되었다.
건국체제를 통해 삼권분립에 입각한 견제와 균형의 법치주의적 제도, 그리고 종교, 언론, 집회, 결사 등 국민기본권을 보장하였다. 三審級(삼심급)제도에 따른 사법제도를 확립시켰고 1952년부터는 지방자치제도까지 전면 도입된 것도 모두 1948년 체제에서였다.
민족사에 일찍이 없었고 경험조차 없었던 민주주의의 도입이었고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갖던 서구 국가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의 전면적 민주주의제를 도입, 적용시켰던 것이다. 중국, 북한 등은 물론이고 주변의 많은 국가들은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이 1948년 체제를 통해 만든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흔히들 한국 민주주의는 소위 '민주화 시대'라는 1987년 건국체제에서부터 였다. 그 이후의 민주주의발전이란 민주적 경험을 쌓고 빈약한 사회경제적 토대의 부족을 메우며 성숙시키고 발전시켜나가는 정치발전과정이었을 뿐이다.
우리 건국 60년사에서 그 의의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한국에서의 民主主義(민주주의) 투쟁이란 곧 反 共産主義(반 공산주의) 투쟁이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서구 국가들에게 있어 민주주의 투쟁이란 봉건제적 왕조폐지 투쟁이거나 참정권 투쟁, 혹은 국민대표자에 의한 세금과 권력통제 방식인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투쟁이었다.(한국논단8월호)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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