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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제 이름을 찾아주자

Written by. 김병렬   입력 : 2008-08-01 오전 8: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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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영유권 표기가 ‘주권 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으로 바뀐 지 일주일 만에 다시 ‘한국(South Korea)’으로 원상 회복됐다. 미국 지명위원회의 이 같은 조치는 주미대사관을 통한 우리의 적극적인 외교적 설득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결심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유권 표기 문제는 회복됐지만 명칭은 독도가 아닌 ‘리앙쿠르 바위’로 전과 같이 하기로 했다.

1945년 대한민국이 광복되고 난 후 한국과 일본을 분리하기 위한 작업에서 미국은 제주도·거문도·울릉도·독도라는 명칭 대신에 ‘퀠파트섬’ ‘해밀튼항’ ‘다즐레섬(우츠료)’ ‘리앙쿠르 바위(다케시마)’라고 썼었다. 즉 우리의 섬 이름을 우리가 사용하는 대로 표기한 것이 아니고 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으로 표기됐으며, 그나마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식 이름까지 괄호로 병기됐던 것이다.

독도는 울릉도에 주민이 거주하기 시작한 선사시대부터 울릉도 주민에 의해 이용돼 왔으며 시대에 따라 우산도·자산도·삼봉도·석도 등으로 표기돼 왔다.그런데 일본은 독도라고 하는 섬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조선왕조에서 왜구의 침탈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울릉도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킨 틈을 타 1620년께 울릉도에 고기를 잡으러 오는 과정에서 독도를 인지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안용복의 2차에 걸친 도일 활동으로 1697년 1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는 국서를 보낸 후 두 섬에 일절 접근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독도를 망각하게 됐던 것이다.명치유신에 의해 서구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 일본이 1870년대에 다시 독도를 발견하고는 새로운 섬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다 조사를 해 보니 1671년에 이미 조선의 영토이므로 일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1877년 3월 17일 “품의한 취지의 죽도(울릉도) 외 한 섬(독도)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라고 당시의 총리대신인 이와쿠라 도모미가 지령을 내려 이후 일본이 발행하는 지도에 독도가 포함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이러한 독도에 대해 일본이 딴 마음을 먹은 원인은 러일전쟁의 필요성에 의해 1905년에 독도를 편입한 데 있다.

당시 해군력이 부족한 일본은 효과적으로 러시아의 군함을 발견하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에 망루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때 울릉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미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울릉도를 통째로 징발하지 못하고 망루 터만 세 군데를 징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독도는 주민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통째로 징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케시마’라고 창씨개명을 했던 것이다.

광복과 동시에 다케시마라는 이름 대신 독도라는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리앙쿠르 바위라고 하는 서양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미국 지명위원회가 표기를 원상 복구한 것을 계기로 해 리앙쿠르 바위의 본 이름인 ‘독도’를 찾을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독도가 제 이름을 찾아야만 독도가 진정한 광복을 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Konas)
출처 : http://kookbang.dema.mil.kr

김병렬 (국방대학교 교수 brkim@knd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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