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말하기를 한국사람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 버릇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특히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틈나는 대로 기록으로 모든 것을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으로부터 한 가문의 족보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러한 기록을 중시하는 우리의 역사 풍토에서 특히 스스로 잘못한 일과 이로 인해 야기된 많은 문제점을 솔직히 후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상세히 글로 남긴 작품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임진왜란 때 전시내각을 이끌며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선 영의정 유성룡(1542~1607)이 쓴 ‘징비록’(국보 제132호)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수제자인 유성룡은 1593년 10월부터 5년간 영의정으로서 나라의 위기를 구한 후 고향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로 돌아갔다. 그후 그는 그간 군국기무의 최고 책임자로 전쟁 수행과정에서 아쉬웠던 일들을 사실대로 기록해 후세에 전함으로써 다시는 그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려는 우국충정에서 전쟁 교훈서로 ‘징비록’을 저술했다.
임진왜란 전 일본과의 관계에서부터 임진왜란의 마지막까지 조선이 국방에 소홀했던 점, 전란 초기 미흡했던 대응태세, 국정 전반의 각종 문제점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정치·국방·경제·외교 등에 관해 종합적으로 상세히 기록했다. 그래서 책 이름도 ‘지난 일의 잘못을 반성해 미래에 대비한다’는 뜻으로 ‘징비록’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끊임없는 침략 속에서도 꿋꿋이 시련을 극복해 왔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불행히도 허다한 시련과 외침이 점철돼 왔다. 크게는 임진왜란·병자호란에서부터 작게는 거란이나 왜구의 침범 등 민족의 생존이 수시로 위협당했다.
이런 불행한 역사가 주는 교훈은 몇 가지로 들 수 있다.
우선 외침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과 혼자 힘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을 때는 다른 나라와 안보동맹을 맺어 대응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민들에게는 국가안보가 나라 보존을 위한 필수 선결과제임을 확고히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귀중한 역사적 교훈을 살려내지 못하고 쉽게 망각했고 또한 ‘징비록’의 가르침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다가 300여 년 만에 일본에 합병돼 35년의 뼈아픈 식민통치를 받았다. 그후 나라를 되찾기는 했지만 불행히도 국토가 반쪽으로 나누어져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게 됐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현재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한반도의 안보현실을 볼 때 지난 역사의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시대만큼 우리가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어 봐야 할 때는 일찍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지난달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회담 참석차 방한했을 때 그가 가는 곳마다 반미 시위대들이 미리 조직적으로 피켓을 들고 나와 극렬하게 반미 구호를 외쳐댔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의 국방장관을 적국인 북한의 인민무력상이 왔을 때보다 더 홀대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반미 시위대들에게 ‘징비록’을 꼭 읽어 보도록 간곡히 권하고 싶다.
또한 천하가 태평해도 전쟁을 잊으면 나라가 반드시 위태롭게 된다는 옛말을 상기하면서 오늘도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혹한을 무릅쓰고 임무수행에 여념이 없는 우리 군 장병들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당면한 지상과제인 국가 수호를 위한 각오를 더욱 굳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국방일보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