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리더의 그릇
지도자의 그릇에는 국가이익과 국가발전이 들어 있어야 한다.
북군의 그란트(Grant)장군과 셔먼(Sherman) 장군은 1865년 봄 남부군의 수도 버지니아의 리치몬드(Richmond)를 공략하기 시작했다.그해 4월 2일, 남부군이 리치몬드를 포기하고 후퇴하자 그란트 장군은 퇴로를 차단하고 남부군을 포위한 후에 로버트 리 장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정중한 서신을 보냈다.
남부군의 리 장군은 더 이상의 항전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장병들의 희생을 막고자 항복을 결심했다. 1865년 4월 9일, 에포메톡스 군청 옆 농가에서 그란트 장군과 리 장군은 항복에 대한 회담을 가졌다.남부군의 리 장군은 수려한 용모에 잿빛의 남부군 정장과 버지니아 군도를 차고 위용을 갖추고 참석했고, 반면에 그란트 장군은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병사들의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란트 장군은 사관학교 선배에게 예를 갖추면서 옛날 같이 참전하여 싸웠던 멕시코와의 전투를 이야기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회담을 시작했다.그란트 장군이 항복 조건을 써내려 갔다. 항복조건은 매우 관대한 것이었다. 남부군이나 남부 주민들의 위상을 고려해 전쟁에 대한 책임이나 남부군의 전범 처리에 대한 어떠한 문구도 없었다.
항복문서의 요지 중에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이해와 용서를 위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전쟁 중에 지금까지 죽이고 죽으면서 치열하게 싸웠던 적을 이처럼 배려하고 용서한 전례는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볼 때 놀라운 일이었다. 항복내용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남부군의 장교와 병사들은 항복서명을 한 후 즉시 석방한다. 무기와 병기는 북군에게 인계한다.
장교는 허리에 찬 무기를 그대로 휴대해도 좋다. 말을 필요로 하는 장병은 지금까지 타고 다니던 말을 가져도 좋다.(먼 길을 가야 하고 농사에 필요하기 때문임) 패한 리 장군은 항복조건에 사의를 표하면서, 그란트 장군에게 부하들이 그동안 너무 굶주렸으므로 식량을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란트 장군은 북군에게도 부족한 식량을 남군에게 2만5000명분을 즉각 지원했다.
리 장군은 항복 후에 애마를 타고 남군 진영으로 돌아갔고, 북군 진영에서는 승리의 기쁨에 모자를 던지고 대포를 쏘며 밴드 연주를 했다. 패장에 대한 예우였다.그란트 장군은 “전쟁은 이제 끝났다. 남부군도 이제는 우리 국민이다”라는 연설을 한 뒤 모두를 포용했다.
남부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체포되지 않고 사면됐으며 패장인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대학의 총장으로 부임했다. 전범의 수괴로 어느 누구도 처벌되지 않았다. 미국의 미래를 위해 화해와 관용을 선택했던 것이었다.국가이익과 국가발전 그리고 미래의 미국을 먼저 생각하고 결심한 그란트 장군과 링컨 대통령의 판단이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대국을 건설한 기본 개념이자 정신이 되었다.
지도자의 그릇에는 국가이익과 국가발전이 들어 있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전쟁이 벌어지면 싸워 이겨야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안 싸우고 이기는 것이다. 설혹 불가피하게 싸워 이기더라도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기고도 국가차원에서는 불행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내부적 갈등과 마찰은 접어야 한다.
국가이익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주역인 링컨과 그란트 장군은 국가이익을 먼저 내다본 대표적 경우다.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저력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도자와 리더의 그릇이 후손들에게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조만간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지도자와 리더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konas)
서경석 (예)육군중장·고려대 초빙교수/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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