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김훈 "난중일기, 내 마음속 떠난 적 없다"

광화문 문화포럼서, "'칼의 노래' 40일만에 다 써"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8-09-10 오후 3:21:18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글 쓰는 외에는 현실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글 쓰는 것도 현실개입일 것입니다. 현실에 개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앞서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먼저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개입이냐, 아니냐를)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국민, 젊은이들은 당면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보다 정서적, 이념적으로 인식하며 내편이냐 아니냐, 나에게 유리하냐 아니냐 하는 것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거기 비해서 현실을 과학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매우 부족하다고 봅니다. 나에게 이로운 것이냐, 해로운 것이냐 하는 것을 논하기에 앞서 과학적으로 '이것은 왜 이런가' 하는 의문을 모색하는 젊은이를 길러내야 갈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위에다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지, 참여냐 아니냐는 다음 문제라고 봅니다."

 자신의 '현실참여'와 관련한 청중의 질문을 받은 작가 김훈 씨는 현실 참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과학적 인식'으로 함축하면서 좌 나 우 한편으로의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베스트셀러 '칼의 노래' 저자이자 '남한산성' 등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김훈 작가는 10일 아침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남시욱)이 주최한 정례 조찬 강연회에 초청강사로 나와 '나의 문학과 사회의식'을 주제로 작가로서의 자신의 현실참여와 현실을 바라보는 입장을 난중일기 속에 드러난 이순신 장군의 사고에 비유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 광화문 문화포럼. 10일 아침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이 날 포럼에서는 '칼의 노래' 저자 김훈 작가가 나와 '사회의식'과 관련한 내용으로 아침공론을 진행했다. ⓒkonas.net

 이 날 강연에 앞서 주최측은 지난 7월에 김 작가를 강사로 초청해 준비했으나 광화문을 중심으로 벌어진 촛불 시위 등으로 인해 이 날 갖게 되었다며 강사를 소개했다. 김 작가는 강연 서두에 자신은 말하는 전문가가 아닌 작가로서 '소설'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하는데 주최측에서 자꾸 '사회의식'과 관련한 얘기를 하라고 해 진땀을 흘리면서 나왔다며 실수를 하더라도 양해해 달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이 자아졌다. 그러나 1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 대작가답게 여유 있는 자세로 말문을 열었다. 

 금년으로 우리 나이 60세인 김 작가는 먼저 "대한민국 건국 60년과 같은 나이에 어제 신문을 보니 북한도 60주년이라고 해 참담함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6·25전쟁의 참상을 우선 화제로 올렸다.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피란 할 당시 나이가 세 살이어서 6·25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부친으로부터 들었다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피난을 갈 때 8박9일을 가면서 많은 어린이들이 기차에서 떨어져 죽거나 터널 통과 시 기차지붕 위에 타고 있다 터널 콘크리트에 부딪쳐 죽는 상황들과 함께 부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겪은 현실들을 사실적 표현에 입각해 가감 없이 말해 나갔다.

 김 작가는 지금도 '허쉬' 초콜렛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대다수 어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 작가도 부산 피난지에서 미군으로부터 초콜렛을 받아먹기 위해 또래 아이들과 함께 떼지어 몰려다니며 초콜렛을 받았던 기억과 함께 피난을 가면서도 권력자들은 소소한 가재도구까지도 챙겨 갔던 피난 기차의 모습, 그런 나라가 오늘날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북한의 60주년 건국일 9·9절을 떠올리며 생각하게 되었다고 되새겼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에 그가 본 세상은 "전쟁은 세상을 부수는 어른들의 행위라고 여겼고 왜 때려 부숴야 하는지 답답하고 무서웠으며,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대동강 철교를 타고 넘는 피난민들을 본 느낌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개, 돼지나 다름없는 짐승과도 같았고 그런 그들을 국가나 다른 어떤 제도로부터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살았다"고 힘이 없는 정부, 국가아래서 겪어야 하는 국민의 처지를 탄 했다.

 이어 대학(고려대 정외과)생활을 회상하면서 "당시(1966년)의 대학은 사회진출을 못하는 청년을 가두어두는 수용소와 같았고, 학교는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일년 내내 데모에 매달렸을 뿐 아니라 청년은 대학이 인문주의의 소망을 받아주고 충족해주기를 바랐으나 대학은 그러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김 작가는 이 날 강연에서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인 '난중일기'에 대체적인 시간을 할애했다. 어쩌면 '칼의 노래'의 저자로서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런 대학시절의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외과에서 영문과로 옮긴 후 영시(英詩)를 공부하면서 낭만주의 시에 심취하게 되었다는 그는 이런 워즈워드 등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가 청년의 영혼을 아편처럼 장악했다며 그러던 중 우연히 도서관을 가서 다 헤져 굴러다니던 난중일기책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난중일기와의 첫 만남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난중일기와 관련해 "당시 이순신에게 희망이나 행복, 미래가 없었고 그가 감당한 현실은 절망뿐이었다. 임금은 의주로 도망하면서도 호시탐탐 죽이려 했고, 적은 수백 배 강한 상태에서 부하마저 다 도망가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절망을 받아들이면서도 앞으로 나 아가는 장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난중일기에 대해서도 "영원히 후손에게 보여줄 문화재"라며 "그러나 거기에는 아름다운 문구나 인식론, 철학적 수사가 담겨있는 게 아니라 전쟁을 겪은 지휘관의 진중일기"라고 작가적 시각을 피력했다.

 그는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낭만은 이상이지만 현실을 말하기에는 매우 빈약한 반쪽 문학이라는 생각을 갖게되었고 그때부터 학교와 영문학이 싫어져 학교를 그만두고 군에 입대했으며 제대 후 기자가 되었다고 했다. 김 작가는 기자가 된 이유에 대해서도 "그런 질문을 특히 후배 기자들에게서 많이 듣는다. 왜 기자가 돼 25년을 했느냐 면 사회목탁이나 무관의 제왕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하고 밥 벌어먹기 위해 길바닥을 헤매다 신문사 들어갔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고 전혀 예상 밖의 말을 했다.

▲ 김훈 작가. 그는 "왜 작가님의 작품에는 '노래' 제목이 유독 눈에 뜨입니까"하고 질문을 하자 "'통곡'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제목에 '칼의 통곡'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아이러니로 '노래'를 택하게 됐다고 답하기도 했다. ⓒkonas.net

 계속해서 "나이를 먹고 언어를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 이순신에 대해 말해야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의 소망은 막연하고 간절하다. 난중일기가 내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다"며 "이십대 초반에서 35년이 지난 어느 날 연필을 들고 '칼의 노래'를 써나가기 시작했고 40일만에 다 썼다. 나의 삶의 고통 등이 잘 숙성된 글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순신의 지도역량이나 덕성을 쓴 게 아니라 바다에서 벌어진 사실에 입각한 리얼리스트였다"고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조선의 정치권력은 사색당쟁으로 갈라져 있어 당파성에 매달린 자들의 눈에는 현실의 올바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오직 당파성이 '정'(正)이었지만, 이순신은 당파성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였기에 연전연승을 했고 이것이 과학과 사실의 승리"라며 "(반대편에서의 입장에서는)연전연승하는 저자(이순신)가 누구의 편인지 잘 모르니 너무 무서운 존재여서 그를 죽이려한 것"이라고 이순신을 모함했던 선조와 조정을 빗대었다.

 김 작가는 요즘 글을 쓰거나 신문 등을 읽기가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것이 또한 김 작가의 현실이라고도 했다. 이는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말함에 있어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 뒤죽박죽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언행이 횡행할수록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절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서로 뒤섞여 쓰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이 또한 당파성에 입각한 것이자 그것을 '정'으로 보고 신념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나는 신념이 가득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진심이 신념 쪽에 있느냐 의심 쪽에 있느냐하면 의심 쪽에 있다고 본다"고 자신의 평소 소견을 피력했다.

 이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서 말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초이며, 민주주의는 소통에 의해서만 가능한데도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면 단절이 되고 소통이 안되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나. 말은 허약하다. 나의 말 나의 주장은 남의 말에 의해 부정되며 또 다른 남의 말에 의해해서 부정된다. 언어가 돌덩어리처럼 된다면 언어는 무기가 되고 그런 언어는 소통되지 않는다. 요즘 언어는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그것을 정이라고 말한다. 단절만 쌓여가고 이런 상태서는 대안이 없다"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글 쓰는 사람의 사명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증명하는 것 일거" 라며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그것만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악과 폭력, 야만 속에서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고는 "유년시절 가장 큰 사태는 한국전쟁이고 청소년시절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저열한지 배우는 게 힘들고 무서웠다. 동족끼리 죽이고 부수고 하는 야만성에 절망했다"며 좌우익의 대결상황을 비판하고 "야만성 그 자체를 반성하지 않고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따진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또 "원시시대부터 계속된 인간의 야만성이 계속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치를 떤다.그래서 또한 소설 밑바탕에 대부분 전쟁과 싸움이 나온다"며 "약육강식은 영원한 인류의 문제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했다. 이런 모습이 그의 소설이나 글로는 감당하기가 어렵고 다만 들여다 볼 뿐이고 그래서 많은 회의와 주저를 느낀다고 작가로서의 심적 고통의 일단을 전했다.

 김 작가는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작성한 문장들을 하나의 예로 들면서 "문장 하나 하나마다 의견과 사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전략이 있어야 원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나는 이순신에게 배웠다. 무인들이 칼 한번으로 사태를 정리하듯이 칼을 한번 휘두르는 문장으로 (난중일기를) 쓰고 있다. 재미없고 수사학이 없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것이다"고 했다.

 이어 "밀턴이나 워즈워드보다 더한 문장이 난중일기에 들어있다"고 난중일기에 흠뻑 빠져있는 작가의 세계를 다시 한번 일깨운 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날이면 노량에 가서 소주한잔을 따르고 돌아온다"고 끝을 맺었다.

 이 날 김훈 작가의 강연은 그의 명성만큼이나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 강연이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