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국가정체성의 규범적 왜곡의 치유의 길
국가정체성 문제는 이념이 아닌 헌법원리의 문제다. 대한민국헌법에서 말하는 국가정체성의 근원은 대한민국의 존재 그 자체이다.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 그리고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의 존재가 그것이다. 이 국가를 전제로 국적을 취득한 국민은 국가형성과정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국가존립 자체를 인정하며, 국가 상징 등을 인정하는 등의 헌법적 책무를 당연히 지게 된다. 그 핵심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건국의 제헌헌법이다.
조선민족은 해방된 지 3년여가 지난 1948년 7월 12일 '제헌헌법'을 제정하고 동월 17일에 이를 공포하면서 비록 '남한지역'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였지만,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탄생시켜 스스로를 '대한국민'으로 변환하였다. 대한민국을 "민주독립국가"라 하고 "민주주의 제 제도를 수립"하는 국가로 보면서 이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이 만든 나라로 정의한 건국헌법 '전문'은 제정 이후 60년이 된 지금도 헌법전문의 전형이 되는 명문이다. 조선왕조의 국가와 뚜렷이 구별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성립시킨 것이다.
건국헌법은 우리의 국가적 삶의 원점을 보여준다. 해방되어 광복을 찾은 시간과 공간인 1945년 한반도에서 1948년에 이르기까지의 미군정 속에서 자유와 민주의 정통세력이 좌파와 투쟁하여 얻은, 그리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국제적 안목과 승전국 미국의 영향을 '정부수립이 가능한 지역'에 살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능동적으로 수용한 결과인 자유민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법제도는 1960년 이후 개발 연대에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구호로 비록 관치의 '자유주의' 내지 관치의 '차등화' 그리고 관치의 '경쟁'이기는 하였지만 그 자유주의적 정책을 가능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국헌법이 가지는 '국민'의 규범이라는 의의를 폄훼하여 ‘민족’이라는 전근대적 개념에서 헌법의 얼굴을 보려는 시대 퇴영적 모습이 우리의 헌법인식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분단'이라는 현실에 대한 헌정사적 의미를 '국민' 국가의 눈이 아닌 '민족'의 개념으로 보게 하는 '민족' 통일 지상주의가 그것이다. 그것은 헌법적 정통성을 지닌 대한민국을 북한과 같은 차원에서 보는 반헌법적 행태들을 정당화하곤 하여, 법치주의의 왜곡 현상을 가져오게 하였다.
국가의 헌법적 정통성을 보수-진보의 문제로 치환하는 반(反) 국민국가적 사고, 즉 민족국가이거나 부족국가 차원의 생각이 근대의 국민국가를 성립케 한 제헌헌법 이후의 헌법질서를 옳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다. 헌법의 아버지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평가절하는 세태를 만들었다. 민족의 입장에서 해방공간을 바라볾으로써 그 시선의 한계를 노정한 백범 김구를 독립의 아버지로 보게 되었다. 건국의 아버지는 각자 존중되어야 함에도 그러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생활의 삶을 우리는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에 국가를 저당 잡히는 전(前)근대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건국헌법의 정신은 반국가·반헌법의 흐름 속에서 폄훼되었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1998년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가속화되었고 2003년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의 헌법과 법질서에 대한 회의(懷疑)를 깊게 하였다. 87년 체제 이전의 건국헌법까지를 극복의 시대로 규정하여 자파 정치세력의 공고화를 도모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한 남파간첩 및 빨치산에 대한 민주화유공자의 지정, 각종 과거사위원회에 의한 대한민국 정통성의 훼손,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라는 이름을 붙인 국방 방어능력의 흔들기 등은 많은 국민들에게 87년 체제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소위 민주화세력의 특정 일부가 기실은 좌파적 반(反) 대한민국의 정권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처음으로 품게 하였다.
선출된 권력은 정의이므로 헌법도 무시할 수 있다는 권력만능주의, ···대체로 그것은 시민들의 신뢰이익과 예측가능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기득권 타파라는 정치적 구호로써 박탈하는 것이었고, 감성적 대중의 표퓰리즘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런 헌법 무시의 분위기가 시민사회를 위협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헌정을 바로 세우지 못하게 하여 국가정체성을 파괴한다는 점을 우리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깨달았다. 국가정체성의 핵심인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인세습독재국을 긍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국민주권주의에 따른 전체국민의 주권 보유를 부정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에게만 주권을 부여하는 계급적 인민주권 등도 마찬가지로 국가정체성에 반한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의 소홀함은 우리 헌법의 영토 조항을 기초로 하는 국가적 정통성으로 표징되는 국가정체성에 어긋난다. 대한민국 정체성의 중심은 북한의 신판 왕조적 세습독재체제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며, 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공산독재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정체성을 지키려면, 한 사람이나 무정형(無定型)으로 결집된 대중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인치주의에 작별을 고하며, 권력의 독선과 파편화된 개인들의 아집(我執)과 주장이 아닌 헌법이 제 목소리를 내도록 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국가의 핵심인 헌법으로 이해하고 시현(示顯)하는 나라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면서 헌법을 국민 통합의 나침반으로 삼기로 뜻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국가정체성은 지켜질 것이다.(konas)
강경근(숭실대 법대 교수, 헌법학)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