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들 ②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좌파적 성격과 좌파가 김구에 집착하는 이유
2.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좌파적 성격
특히 김대중의 집권은 50년동안 집권한 건국-반공-보수세력이라는 이승만 노선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광복 직후 김대중씨가 목포의 좌익 진영의 핵심 조직원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98년이후에 전개된 권력의 좌경화와 국가정체성 위기를 능히 예측할 수 있는 불길한 징조였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과정을 거치면서 4대 개혁법안이라는 미명하에 친북법안이 입안됐으며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공안기능의 축소·폐지 등 무력화를 기도하면서 반공우파세력을 위축시키고 국가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일대 혼란이 야기되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스스로가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넣자고 했으니, 국가보안법은 칼날이 망가지고 녹슨 칼이 되었다. 이제 공안은 청와대의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면서 간첩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과거 좌파 정권시절의 서글픈 풍경이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이 국가정체성을 훼손했다고 비판받은 이유는 48년 체제의 건국이념과 이승만 노선을 계승하면서 문제점을 보완, 수정하는 식으로 국정을 이끈 것이 아니라 48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의 핵심세력은 주사파 운동권으로서 親北左傾史觀으로 무장하였다. 그들의 역사인식은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진정한 민주화시대가 열렸으므로 그 이전의 정치권력은 노태우-김영삼 정권을 포함하여 정통성이 없다고 斷罪함으로써 48년 체제를 전면 부정하였다. 그래서 1948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역사로부터의 斷絶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공산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비판을 삼갔고 오히려 그 체제를 옹호하는 친북성향을 노골적으로 나타내었다. 심지어 북한에 대해서 아낌없는 물적 지원을 주장하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이 햇볕정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비록 평양에 가서 김정일에게 막대한 달러를 갖다 받치고 돌아왔지만 DJP 연합의 한계로 인해 낮에는 親美로, 밤에는 親北이라는 조심스런 이중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후임자 노무현 대통령은 낮이건 밤이건 노골적인 용감한 친북정책을 부끄러움 없이 자행하여 세간을 놀라게 했다.
실례로,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은 독립운동가였지만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에게 이용당하면서 5·10선거를 보이콧하고 좌우합작 노선을 추구한 김구를 영웅으로 만들었는데, 그 예를 들면, 백범기념관이 2000년에 기공되었고 2002년에 개관되었다. 또 노무현 정권은 10만원 지폐에 김구 얼굴을 넣으려고 추진하였다.
3. 왜 좌파는 김구에 집착하는가?
의문점은 왜 좌파정권은 그토록 김구에 집착하는가 이다. 그 이유는 김구가 남한에서는 최초로 김일성의 초청으로 평양으로 가서 협상을 했던 남북협상파의 先驅者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2000년 김대중의 평양방문이 대의명분을 얻고 6·15선언에서 언급된 남북연방제로 가는 논의에서 동력이 붙으려면 김구의 위상을 회복시켜야만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해방 이후 김구와 김대중은 한 일이 많았다. 김구는 미군 하지 중장과 투쟁하면서 反託운동을 전개했고, 김대중은 부지런히 左翼운동가로서 맹활약했었다. 그러나 김구와 김대중은 48년부터 전개된 대한민국 건국의 과정에서 한 일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오히려 해독을 끼친 인물인 것이다. 해방이후부터 50년대까지 김대중은 줄곧 反이승만 노선을 걸었으니 자연히 김구 노선을 추종할 수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8·15의 성격에 대해서 광복절(해방절)이냐, 건국절이냐의 논란도 해방정국과 건국의 과정에서 어떤 인물이 어떻게 공헌했는가에 대한 평가에 연관지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해방-독립운동에 활동한 남북한 좌우익합작노선을 강조한 김구와 같은 인물만을 높이 평가하면 광복절을 강조할 것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남북연방제를 강조한 김대중과 노무현의 6·15 및 10·4남북공동선언과 연결된다. 그러나 해방은 물론 건국의 과정까지 공헌한 반공노선을 천명한 이승만과 같은 인물을 높이 평가하면 건국일을 강조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적 통일과 북한해방을 지향하는 것이다.
김구의 위상이 올라가면, 자연히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의 위상이 위축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승만이 건국한 대한민국은 성립되지 말았어야할 문제투성이의 임시정부가 되는 것이고 후세들에게 역사적으로 청산대상이 된다. 또 김구가 구상한 남북한 좌우익합작 정부가 가장 이상적인 정부로서 인정을 받게 되면 이를 계승한 김대중의 남북한연합 내지 남북연방제 논의가 북한 김정일의 지원을 받아서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책략이다.
어쨌든 좌파정권하에서 8·15특사라는 명분하에 감옥에서 풀려난 사상범들의 공공연한 정치활동이 재개되었고 언론과 학계에서 칼럼을 쓰는 등 그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상지대학과 성공회대학 등 특정 대학들은 좌파지식인들의 知的 安息處가 된지 오래되었다. 중고교에서 전교조가 중심이 되어 채택하고 금성출판사가 만든 좌경화된 역사교재를 통한 좌경화역사교육으로 청소년의 정체성 혼란이 극심해졌다. 심지어 북한 김정일 공산정권에 대해서 아무런 반대급부도 없이 무려 8조원에 이르는 퍼주기식, 묻지마 대북지원을 해준 결과, 북한의 개혁과 개방의 성과를 이루기는 커녕 그 돈을 근간으로 해서 무모하게도 김정일은 핵개발을 단행하여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이적행위를 자초하였다.
이것은 87년 6월항쟁 체제의 주체세력이 근본적으로 해방이후 전개된 김구와 상해임정의 좌우익 합작노선을 추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핵심인 주사파 운동권출신들은 感傷的 民族主義에 젖어서 결과적으로 북한의 '민족공조'와 '우리민족끼리' 對南工作에 철저하게 놀아나는 정치행태를 보였다. 그 단적인 예로 좌파시민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문을 이행하라고 다구치는 현상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노무현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발표하면서 자주국방이란 현란한 구호를 지니고 워싱턴을 방문하여 한미연합사 해체의 당위성을 설파하였다. 그 결과 멀쩡한 한미연합사가 2012년에는 평시-전시作統權이 한국군에 이양되면서 한미연합사는 해체의 장송곡을 올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경제성장과 튼튼한 안보의 버팀목이 된 한미동맹은 뿌리 채 흔들리게 되었다. 그 동안 무리하게 강행된 햇볕정책과 대북유화정책은 김정일의 핵무장으로 뒤통수를 맞게 되었으며 北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현실화되었고, 결국 각종 좌파 정권의 노골적인 친북정책에 실망하고 대오각성한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단행한 것이다.(konas)
이주천(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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