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들 ③
노무현 정부의 건국사 폄훼행위와 세계로부터의 도전
4. 노무현의 건국사(建國史) 폄훼행위
87년 체제는 과거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를 단절하고 대한민국이 반세기 동안 이룬 찬란한 업적을 부정하고 폄훼하였다. 대한민국 건국 및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형적인 역사관에서 대표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저주하는 발언을 해 왔다. 8월 15일,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서 "1948년 당시 정부를 수립할 때 우리 국민 상당수가 그 정부 수립을 반대했다"며 "통일정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부수립을 연기하자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 가슴에는 불완전한 정부수립에 대한 아쉬움이 상당히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그는 "그동안 정부 수립 역사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비판이 많았고 그 이후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에 의해 정통성에 관한 시비가 많았기 때문에 48년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러나 그것은 그 세력들의 평가"라고 일축, 건국세력 및 대한민국 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재차 드러냈다.
여기에서 노무현의 발언에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 번째는 노무현이 언급한 불완전한 정부수립에 반대하는 사람은 김구와 임정 및 중도세력을 지칭하는 것이고, 이들이 반대했는데 왜 단정을 수립했는가에 대한 불만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7년에 이미 북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구상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45·48년간의 해방정국에서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승만으로서는 단독정부를 포기한다는 것은 좌우익 합작정부를 구성하는 것인데, 전후 동유럽의 공산정권의 수립과정을 통찰한 이승만으로서는 좌우익 합작정권은 바로 공산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었기에 정치적 타협은 불가능했다.
두 번째, 노무현은 정부수립의 정통성에 문제가 많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 정권에 있어서 정통성 문제는 1948년 12월 12일, 파리 제3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국가라고 승인했을 때 이미 결말이 난 것이다. 남한은 유엔감시단에 의해 5·10 자유선거를 실시했고, 유엔감시단은 북조선에는 아예 발도 들여놓치 못했다. 북한의 선거는 자유민주주의 방식이 아니라 흑백선거로 일관했다. 노무현은 이런 역사적 사실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60주년 및 광복 63주년을 맞아 지난 13일 여론조사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4.9%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년사를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자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끄러운 역사'라고 한 응답자는 21.3%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폄훼해온 '노무현식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음이 입증된 것이다.
5. 세계화로 부터의 도전
87년 체제가 45년 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념적·정치적 도전이었다면, 또 다른 도전은 세계화 물결속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교류와 인종적 결합에서 발견된다. 이미 공교육의 붕괴현상으로 사교육이 증대되고, 초중고 조기 유학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학교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으로 유학을 갔지만 이제는 중국대륙으로 유학의 이동이 포착되고 있다. 이들의 가정은 중산층이상의 고소득층이다. 아버지의 해외 출장으로 인한 유학이 아니라 가정의 강제 분리로서 이혼, 별거 등 가정파탄이 적지 않다.
또 해외에서 교육은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면서 자칫하면 國籍 없는 청소년 교육이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과거의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에 대한 애착심보다는 개인적 성취에 대한 집념이 강화되면서, 다국적, 다문화적 성향이 강화된다.
또 국제결혼이라는 인종적 혼혈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도 감지된다. 출산율의 저하로 여성인구의 급감으로 농촌과 지방에서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부터 신부를 구하여 국제결혼으로 해결책을 구하지만, 혼혈가정으로 인해 생기는 자녀교육이나 부부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다.
60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생애는 참으로 험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다수는 그 실상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체성 위기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다. 그들에게 나라는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을 세우고 지키고 키운 사람들의 피땀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놓였던 국제 환경이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경험이 없는 물질적으로 평화스럽게 자란 청소년 이하의 세대에서 그런 현상이 심각하다. 이런 비현실적인 국민의 태도는 언젠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위험이 있다고 생각된다. 잘못된 역사교육과 안이한 안보태세가 만들어 낼 끔찍한 국가적 재앙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100년 전의 세계사를 돌이켜 보아도, 영토와 국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지 않았던가? 능력과 힘이 있으면 지킬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하면 나라는 세계지도에서 없어지고 말았다.(konas)
이주천(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