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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을 향한 선생님의 사명

대한민국교육조합 창립기념, 교육정책토론회 주제 발제문 발췌

Written by. 천세영   입력 : 2008-11-22 오전 10: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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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개혁, 선생님만이 할 수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말 가르치고 싶어하신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은 학교 다닐 때 누구보다도 모범생이었다.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고 공부도 잘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었다. 그런데 이젠 학생들이 그런 선생님의 말을 잘 안 들어서 정말 속상한 것이다. 더군다나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눈코뜰새 없이 바삐 일하는데도 그렇다.

 정작 선생님들이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정부의 정책분석과 학자들의 연구보고서에 장황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속 시원한 해결이 아직도 안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그러한 대책들이 무언가 헛다리를 짚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말할 수 없이 바쁜 이유, 중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원강사 보다 못 가르친다고 불신 받는 이유를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해결책을 내놓고 실행하는데 있어서 선생님들은 나서지 못하고 있다.

 10년전에 일군의 선생님들이 나선 적이 있었다. 참교육의 이름으로 나섰다. 많은 학생들이 학부모들이 숨죽이며 마음 속 갈채를 보냈다.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한 데로 꼬여 나갔다. 그리고 이젠 그 선생님들이 교육개혁의 걸림돌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급기야는 교사주도의 개혁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교사를 넘어서 교육계는 더 이상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집단으로 매도당하기까지 한다.

 과연 그러할까?
 선생님들의 가장 큰 소망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고, 끝에 가서는 무엇을 시험에 내야 할지까지 국가와 교육청에서 정해서 내려온다. 그것은 오로지 선생님들의 몫이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것을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이 이해하고 싶은 새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
 처음에는 많이 기대했다. 그런데 촛불 광풍이 되어 일부 선생님들은 촛불의 주역으로까지 비추어지기도 했다. 선생님들의 의도와는 달리 자율과 창의는 순조롭게 수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 사실이다. 첫째로 모든 선생님들은 다 같지는 않으며, 둘째로 좋은 선생님들이 나쁜 선생님들보다는 훨씬 많으며, 셋째로 정말이지 학교선생님들이 학원선생님들보다 더 교육에 관한 한 보다 더 수준 높은 전문가라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는 아직은 기대를 버릴 수 없는 새 정부의 교육개혁안을 선생님의 눈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혹시 선생님들은 그 일에 동참할 수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선 새 정부의 교육개혁방안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가부터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대선과정과 인수위 그리고 2008. 3. 20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교육개혁안들은 대체로 초중등분야와 대학분야로 나누어서 구성되어 있는데 성격으로 보아 자율화를 향한 과제, 책무성과 관련된 과제, 그리고 영어공교육 정책과 같이 특별한 전략과제로 구분된다.

 자율화를 향한 과제 중 대표적인 것은 단연 대학입시의 자율화이다. 수능 9등급제의 폐지로부터 논의가 시작되기는 하였지만 실상은 2012년 이후 대학입시에 관한 모든 권한을 대학으로 전면 이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수능시험 활용방식, 본고사 실시 여부 등등 모든 것들에 대해 철저하게 대학에 일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지금부터 4-5년 후에는 대학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지필고사에만 의존하는 구시대적 입시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입시사정관 제도와 같이 보다 선진화된 입시제도를 스스로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다.

대학이 이와 같은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입시 이외의 국립대의 법인화를 포함한 대학의 운영 방식 자율화와 체질 개선이 병행된다는 것도 전제한다. 또한 대학의 이러한 자율성은 초중등학교 교육의 내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초중등학교의 내실화 또한 자율화와 다양화에 기반할 때 가능하다. 4.15 자율화 조치가 많은 논란을 만들어냈지만 그 궁극적인 것은 교실내 교육과정이 생명력을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려면 교사는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구성해내야 하며, 교장은 그런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교사와 교실을 책임지고 확보할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을 갖추어야 한다.

고교 300플랜도 이러한 교장과 교사들, 그리고 학생들의 교육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학교들을 만들어내는 상징적 출발점들이다. 교과서와 교육과정의 운영 체계도 전면적으로 학교에 자율성을 허락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가 모든 교실이 같은 교과서를 같은 속도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책무성의 보완은 자율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가 방종에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플랜들은 강력한 책무성 기제로서 교육기관 정보공시제를 제시하고 있다. 2008년 12월이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학교별 정보공시를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

초중등학교는 물론 대학들도 학교의 운영과 그 성과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되어 있으며, 그리고 이러한 정보에 근거하여 재정지원이 이루어지도록 계획되어 있다. 기초학력 미달자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이와 같이 객관적 정보에 근거하여 이루어질 때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공개되는 정보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초중등학교의 학업성취도 검사와 대학 성과로서의 취업률 조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정보가 학교와 대학의 절대적 성과지표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교육기관 성과로서의 교육력을 측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은 없는 상태이다. 우선은 불충분하지만 최소한의 객관적 자료를 수집, 정리, 분석의 경험을 축적하다보면 보다 타당하고 신뢰로운 책무성 정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한다. 영어 공교육 정책과 대학과 연구기관의 융합 전략이 그것이다. 학교에서 실용영어교육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기대를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존 교사들의 수업방식과 준비도가 전혀 충분치 않을뿐더러 수능시험이라는 장애물을 걷어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과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우선 수능시험에서 영어를 분리하여 국가인증시험으로 대체하려고 하며, 그 인증시험의 관점을 실용영어에 두되, 실용영어 교육을 학교에서 책임지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기존 교사 외에도 대대적인 계약제교사를 충원하고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대폭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현행 교과서와 교육과정 체제의 문제, 수능시험제도로부터의 속박, 교사와 수업 환경 문제 등등 많은 난관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기실 다른 교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이다.

다만 교과의 특성상 영어의 경우 다른 교과와 달리 훈련적 요소가 약간 더 하기 때문에 그 실험이 약간은 용이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어교육정책은 자율과 책무에 기반한 이명박 정부 교육개혁의 하나의 테스트베드인 셈이다.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이미 10조를 넘어서고 있는 R&D투자를 대학으로 흡수하기 위한 전략 또한 대학의 자율과 책무 제고를 보완해주는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보면 새 정부의 교육개혁안은 제법 괜찮아 보인다. 선생님들도 이 정도면 충분히 수긍이 되는 것들이며 동참해볼 만한 일이다.

2. 교육개혁, 교육을 살리고 나라를 살린다

  우리에겐 정말 시간이 별로 없어 보인다. 세종대왕과 명성황후께서 시간이 없으셨듯이 말이다. 중국은 다시 패권국가가 되어가고 있고 북한의 상황은 언제 급변할지 모른다. 조선말의 쇄국주의 망령은 유령처럼 떠돌고 있으며, 교사들은 극도의 무기력에 빠졌다. 군사부일체를 다시 생각하고 대의멸친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학교를 살려야 한다. 학교를 살려 나라를 살려야 한다. 물론 교육의 보금자리가 학교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인류문명사 반만년을 지켜내 온 곳이 학교이며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과 제자간의 끝없는 대화가 그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가꾸어 왔다. 역사는 발전하여 그 학교가 수백, 수천 명을 대상으로, 아니 요즘에는 이런닝 기술에 힘입어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열린다. 학교의 모습이 많이도 바뀐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습도 바뀌었고 역사의 모습도 바뀌었다.

 그러나 학군의 학교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죽어 가는 학교에는 막막한 심정으로 일손을 놓아 버린 안타까운 선생님과 그런 선생님을 존경하고 싶어도 존경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다시 학교를 살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교육의 미래가 없고 나라의 미래가 없고 인류의 미래가 없다.

 사실 그 방법은 오랜 동안 이야기되어 왔던 학교의 자율과 다양성을 살리는 길이다. 교육은 원래부터 획일적 잣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학교의 개성을 살리는 길 이외에는 없다.

 학교의 개성을 살려 학교를 살리려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붙들고 있는 최후의 열쇠는 학교의 자율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300년 근대국가공교육제도가 학교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고 그 학교라는 괴물이 교육을 죽였지만 그래도 한 시절 학교는 교육의 보루로서 성과를 높여왔다. 그러는 가운데 학교의 힘은 커져가기만 했고 교육은 죽어가기만 했다. 학교의 뒤를 국가가 봐주는 바람에 교육의 주인공들이었던 학생과 선생님들은 뒷방으로 밀려났다. 이제 이들을 다시 앞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를 뒤로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앞자리에서 제자와 선생님이 반갑게 만나야 한다.

 선생님이 나서야 한다
 학교와 교육을 살리는 일은 누누이 지적되어 왔던 자율과 분권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국가가 개개 학교의 교육과정과 인사운영에 관여를 하면 안 된다. 국가 교육과정의 틀은 가능한 느슨하게 만들어야 하고, 교재의 선택과 제작은 철저하게 선생님의 고유영역으로 맡겨두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사실상 이 나라 최고의 인재들이다. 조선경국대전에 규정된 사범자는 지와 덕을 겸비한 사람의 모범 그 자체이다. 우리 선생님들도 분명 처음에는 기러한 자질은 물론이요 사명감과 꿈을 가지고 학교현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사명감을 국가의 과도한 간섭과 제도의 굴레가 사정없이 짓밟아버렸다. 학교와 선생님의 눈물과 땀을 인정해주어야 하며, 그러려면 우선 학교와 선생님의 권위를 살려드려야 한다. 우선 교장선생님에게는 학교특색프로그램을 담당할 선생님을 뽑고 지원해줄 수 있는 권한을 드려야 하며, 선생님에게는 수업에 쓸 교재와 수업방법 그리고 학생들을 독려하고 평가하는 권한을 돌려드려야 한다. 어려운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는 우리 교육의 미래가 없다.

 인간사회의 진정한 발전척도는 자유와 자율의 향유 수준이며, 한국이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가의 척도이기도 하다. 정범모 교수도 지적하듯이 자율은 인간이 인간되는 척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보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나는 어엿한 인간이다'라고 느끼는 인간적 質感은 그의 자율감각과 정비례한다. … 자유민주주의 또한 애당초 인간이 인간적 질감을 찾고 지키려는 세계사 흐름의 기조고, 기 기조는 자유·자율(정범모, 2008:44)."이라고 하였다. 한국교육의 질곡은 바로 이러한 자유와 자율의 수준이 인간적 질감에 못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가장 큰 원인은 국가와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새인가 한국교육 각 단위들은 타율에 젖어서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보다는 주어진 틀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겁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타율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불편함에 대해서 마저 타율을 가용하는 외부의 힘이 그것을 걷어 내주기를 바라는 습성이 오래되어 버렸다. 선생님은 그 외부의 힘에 눌려 지내오기만 했다. 이젠 과감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개혁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konas)

 천세영(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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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교육은 삼위일체가 되어야 올바른 교육이 되며 그성과를 기대할수 있다. 즉, 학교(선생님), 학생. 학부모의 공통적인생각과 꾸준한 학습이 이루어져야하며, 이에 국민정서와 알맞는 교육정책이 뒤따라야한다고 본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11-24 오전 11:29:23
    찬성0반대0
  • ssjung6693    수정

    교육은 가르치는 선생님만 있어서 되는것도, 배우는 학생만 있어서 되는것도 아니지요. 바른길에선 교육은 선동하지않아도 따르기 마련인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미래가 살수있는 교육에 바른길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11-24 오전 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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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교육개혁    수정

    이 새끼는 좌경화된 전교조에 대해서 한 마디도 없구나 꼭 멍텅한 향군에 어울리는 놈이구나</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11-22 오후 9: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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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뿔난엄마    수정

    퍼갑니다..아하625...</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11-22 오후 1:15:02
    찬성0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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