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이승만 초기 - 知美, 광복후 - 用美"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지도자들' 분석 학술대회 열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8-11-26 오후 5:05:13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해방 이후 3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수립과정에서 활동했던 주요 지도자들의 행적과 그들의 활동을 더듬어 보는 학술대회가 열려 건국 당시의 역사와 시대적 상황을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통합의 역사를 조망해보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회장 정윤재)는 2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 26일 오후 2시 은행연합회관에서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주최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날 학술대회에서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신익희 등 근현대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지도자들의 행적 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konas.net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그 지도자들' 주제로 열린 이 날 학술대회에서는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정국,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김구 신익희 이승만 김성수 이시영 서재필 조소앙 안재홍 선생 등에 대한 행적과 역할론을 재조명했다.

 먼저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는 김구 선생에 대한 평가와 해석에서 김구 선생의 국가건설노선에 대해 "자주성과 선명성, 민족성과 의지성 등 권력의지는 강력했으나 국제성과 융통성, 일관성과 현실성, 적응성과 객관성은 매우 허약했다"고 평했다.

 박 교수는 "김구의 정치활동과 노선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단일표제주의' 로 식민지 시기에는 반일지상주의, 종전직후에는 임정지상주의와 반공 - 반탁지상주의, 그리고 국가수립 전후에는 통일지상주의였다"며 "그 점에서 김구는 파괴력 있고 선명한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매우 단순하고 직정적인 정치인으로 본질적으로 말하면 독립투사로는 맞는 성정이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잘 맞지 않아 그런 점에서 볼 때 불행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일 단일표제주의를 갖는 그가 집권하였다면 하나의 단일 표제지상주의에 빠져 국가와 사회의 모습은 다른 선명한 노선과의 충돌로 갈등하였을 것이며, 특히 국제관계 부문에서의 충돌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해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조정 등이 부족했음을 거론했다.

 ▲ 이 날 학술대회에는 200여명이 넘는 많은 청중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기울였다. ⓒkonas.net

 이철순 부산대학교 정외과 교수는 김구와 더불어 북한을 방문해 남북협상에 임한 김규식 박사에 대해서는 "명분에만 집착한 정치가가 아니라 북한 김일성 정권에는 의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접근했고 정세에 따라서는 현실에 적합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규식은 이상주의 일변도의 정치가가 아니라 현실주의적 측면도 있는 정치가로 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남북협상을 전후로 한 시기를 살펴보면 그가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실리를 전혀 계산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유엔 총회서 유엔감독하의 남북총선을 결의하자 일단 환영했다. 그것은 남북한 전체를 관장하는 선거라며 중간파에게 유리한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소련의 반대로 남한만의 단선이 결정되자 남한 총선과 남북협상 참가라는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서게된다"고 말했다.

 이후 남북협상이 실패로 끝난 후에는 북한 정권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제2차 남북협상도 거부한 채 1948년 유엔이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자 김 박사는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기에 이른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해공 신익희 선생에 대해 발제에 나선 김용달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근대사에서 해공 만큼 이념편력이 다양하고 그만큼 거침없는 행동철학을 드러낸 사람도 없다"고 평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기원을 상해의 임정으로 본다면 해공은 임시 정부 수립이나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산파역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핵심 주체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독립운동시기의 이념편력이나 노선 전환,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드러나는 대한민국 건국노선의 변화는 현실과 실질을 중시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던 양명학을 익힌 결과라고 할 수 있다"고 양명학자로서의 생활철학에서 그 근원을 찾고자 했다.

 이어 "그는 명분이나 형식을 무시하거나 저버린 것은 아니지만 원칙보다는 현실, 명분보다는 실질, 형식보다는 내용을 더욱 중요시 했다"고 말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 독재 민주화 역정을 안목에 넣고 경제번영과 민주발전을 이룬 현재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발전에 끼진 해공의 공적은 더욱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참석자들이 발표자의 발표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konas.net

 차상철 충남대 교수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현실에 입각한 용미주의자로 평가했다. 미국 유학과 오랜 망명생활을 거쳐 당대 최고의 미국 전문가가 된 이승만은‘가쓰라-태프트 밀약’과 한일강제합방을 목격하며 철저한 지미(知美)주의자가 됐으며 광복 직후 귀국할 무렵에는 용미(用美)주의자로 변해 있었다고 그의 행적을 더듬었다.

 차 교수는 소련과의 협상을 통한 남북한 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하면서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한 미국을 돌아서게 한 일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승만은 1946년 12월 미국을 방문해“북한에는 이미 사실상의 정부가 수립됐기 때문에 남한도 그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이승만은 이듬해 귀국한 뒤에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며 "이승만이 1946년 6월‘정읍 발언’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론을 내놓기 전에 북한에서는 이미 김일성이 스탈린의 지시로 북한만의 정부 수립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1993년 옛 소련의 문건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차 교수는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포기하면서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을 결과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결국 이승만이 미국을 주도한 격”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승만의 단정노선은 냉전의 세계사적 전개과정과 냉전이 종식된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며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새로운 국가인 대한민국을 창건하기 위한 역사적 과업에서 유달리 영리한 정치가였다고 평가받았던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한 연출과 주연 역할을, 그리고 미국은 조연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시영은 "계보와 조직도 없이 도덕적인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세워 가려 한 인물", 서재필은“84세의 고령으로 귀국해 1년 2개월 동안 활동한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최후의 봉사자", 조소앙은“5·10선거에는 불참했지만 선거를 통해 제정된 헌법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야당 지도자로 활동한 그의 일관된 논리는 민주주의와 독립운동", 안재홍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중간우파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한 현실주의자" 등으로 평가됐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