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개성공단이 볼모인가
북한은 지난 11월 12일 군과 외무성, 적십자사를 총동원해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 제한 및 차단, 핵 시료 채취 거부, 판문점 적십자 대표 철수 및 남북직통전화 단절 등 대남 강경조치를 한꺼번에 쏟아내며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유엔에서 대북 인권결의안이 통과되자 북한은 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과 관련해 "북한의 존엄성과 체제에 대한 도발"이라고 반박했다.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거론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발언에 대해서도 남측 정부와는 남북관계와 통일을 논할 여지가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그리고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한다며 24일 우리 측에 개성관광과 남북간 철도운행 중단, 경협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남측 상주인원 축소, 각종 교류협력과 경제 거래 등을 위한 민간단체 및 사업자의 방북 차단 등 고강도 남북관계 차단조치를 동시에 내놓았다. 사실상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교류협력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북한의 조치는 한마디로 통미봉남 가능성이 보이자 개성의 민간기업을 인질로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북한의 전술은 두 가지 오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첫째,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유화정책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오바마가 북한의 지도자와 직접 대화를 시도하더라도 북한 측의 과도한 양보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오바마가 불량국가를 대하는 원칙으로서 강조하는 직접외교(direct diplomacy) 앞에는 몇 개의 형용사가 붙는데, '엄격한(tough)', '공세적(aggressive)', '원칙 있는(principled)' 등의 단어가 그것이다.
즉, 북한과 대화하되 깐깐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40대 젊은 대통령으로 외교 경험이 없는 오바마는 북한을 다루면서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길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오히려 더 강경해질 수 있다. 직접대화를 시도하겠다는 것만으로 북한이 오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이명박 정부를 압박한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상대방을 위협해 이득을 챙겨온 북한의 행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본 시각을 갖고 있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되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효과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남측 국민들의 반북 정서만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남측의 여성 관광객을 사살하고서도 진정한 사과조차 거부하는 북한 당국의 협박에 이명박 정부가 굴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측 정부가 실용적이고 유연한 대북정책을 취하기 어려운 핵심은 여기에 있다는 점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누가 뭐래도 개성공단은 남북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한다면 북한의 신인도는 크게 하락할 것이고 외자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 분명하다. 혹자는 한국이 개성공단에 투자한 막대한 금액으로 인해 우리 측의 손실이 더 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누가 더 손해를 보는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 모두가 패자가 되는 매우 안 좋은 게임이다.
그동안 남북관계에서는 정경분리라는 일정한 룰이 지켜져 왔다. 그래서 정치ㆍ군사적으로 갈등이 있어도 경제협력이나 민간 교류는 유지되어 왔고, 그것이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를 돌파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제 남북 당국 간의 정치적 문제를 빌미로 개성공단의 우리측 민간기업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향후 남북 민간의 경협사업이 불안감 속에 신뢰를 잃을 것은 당연지사다. 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 설령 우리가 이번에 북한 요구대로 양보한다고 해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북한은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불필요한 강경대응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지만, 기존 대북 원칙은 확고히 지키는 당당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매일경제)
이상현(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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