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드러난 좌우익 동거정권
이명박 정부에 대한 1주년 평가 강연회를 바라보면서
12월 19일, 이명박 실용정부의 집권 1주년을 평가하는 강연회가 우익단체인 국민행동본부 주체로 시청앞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일간지에 실린 광고문 타이틀에서 1년을 평가하는 보수우익의 불만이 잘 집약되어 있다. 광고문은 "친북좌익을 몰아내라고 뽑아주었더니 '좌우동거 정권'을 만든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죄인이 되려는가?" 였다.
'좌우동거 정권'이란 용어는 작년 5월말에 필자가 인터넷 월간조선 전문가칼럼에 올린 글, "차기정부의 성격, 좌우익 동거정권의 등장 가능성 크다"에서 그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차기정부는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좌우익의 동거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바가 있다. 불행하게도 필자의 불길한 예측이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연사들은 이동복 전 국회의원, 조갑제 닷컴대표, 강동순 전 KBS방송위원, 김성욱 기자였다. 이들 연사들 대부분의 견해는 "개혁이 있었지만 아직 미진하며 좌파정권의 대못을 뽑는데 있어서 보다 이명박 정부가 과감하게 인적 청산을 추진해 나가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이동복은 대선의 결과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해석을 잘못했다는 점, 촛불시위 이후에 이 대통령이 좌파를 보는 시각이 달라였다는 점을 강조했고, 보수애국세력에게 현 정부를 도울 것을 도우고 잘못된 점은 과감하게 지적해 줄 것을 주문했다.
조갑제는 1년의 평가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서 미시적으로 분석하였는데, 윤이상 음악관에 대한 현 정부의 화끈한 지원이 박정희 대통령 박물관에 대한 미온적 지원과 대비했다고 섭섭함을 피력했다.
강동순은 방송계에서 좌파청산이 불완전함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마치 수술처방이 필요한 암환자에게 한방처방전을 제시한 것으로 비유했다.
김성욱은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특유의 자료를 통해서 좌파의 계보와 촛불좌파의 난동을 설명했으며 2009년도의 좌익난동에 우려를 표명했다.
강연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대통령과 또 앞으로의 보수혁신과 인적청산은 타이밍상으로 내년이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좌익의 난동이 결코 끝나지 않았으므로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과 보수애국세력의 중단없는 애국적 희생과 투쟁을 지속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하여 내년에는 보다 즐거운 망년회를 맞이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지난해 5월에 인터넷 월간조선의 전문가칼럼에 실린 것을 다시 재록한다. 부디 애국시민들은 필자의 글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하여 얼마나 유사점이 있고 또 차이점이 있는지를 검토, 지적해 보기 바란다.(konas)
이주천(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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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부의 성격, 좌우익 동거정권의 등장 가능성 크다"
I
차기 정부는 어떤 성격의 정부일까?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경선도, 범여권의 후보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 대선의 결과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차기정부의 성격을 논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아심을 가질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10년에 걸친 친북좌파 정부에 진절머리를 낸 여파로 야당인 한나라당이 재집권한다고해도 보수우파 중심의 집권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87년 6.29선언에서 민간정부에 바로 권력이 이양되지 않고 과도기정부인 노태우 정부로 넘어갔다가 1992년에서야 비로소 김영삼 정부로 권력이 이양된 사례가 있다.
II
원래 한나라당은 전두환-노태우 라인의 민정계와 김영삼-이회창 라인의 민주계가 혼합되었는데, 김영삼이 권력을 잡고 이회창이 대선후보로 나오는 과정에서 소위 민주화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였는 이 과정에서 좌익 운동권세력들이 많이 들어왔다. 불행하게도, 본의가 아니었지만 김영삼과 이회창이 결과적으로 좌파의 宿主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한나라당은 중도우익의 무지개식 잡탕정당으로 출범했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 인적 구성, 후보 측근들의 이념적 성향 등을 보면, 집권해도 좌우익 동거정권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예측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한나라당의 정강 정책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손질을 해 왔는데, 특히 2006년 1월에 대폭 손질을 해서 북한과 공조하면서 남북한의 공동번영을 추구하기로 정강을 대폭 손질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내의 보수우익이 한나라당의 소장파든지 좌파들을 청산할 수 없는 이유도 정강정책을 이미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강정책의 변경은 당의 대표, 최고위원급이나, 빅2 이명박-박근혜 핵심선에서 완강하게 반대하면 변경, 채택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즉 한나라당의 수뇌부 대다수가 북한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에서 유연하고 부드러운 입장으로 선회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한나라당은 이념의 인적 구성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중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여러 가지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반공주의와 보수우익에 투철한 인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김기춘, 김용갑, 이재춘, 정형근, 박진, 홍준표 등등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불과한데, 사정이 변하고 있다. 안기부 출신의 공안통 정형근 의원은 골수좌파인 함세웅 신부와 함께 북한에 가서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김정일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설득하려고 했다고 전한다. 홍준표와 같은 공안검사 출신은 헌법 제3조를 수정하자고 했고, 박계동 의원을 평양을 방문하여 “현찰로 대북지원을 하자”고 하여 보수우익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初選과 고참의원의 중간에서 당의 내부 조정자 역할, 즉 허리를 맡고 있는 중견의원들이 이미 중도화된다면 당의 이념에 변질을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어쨌든 열우당, 민노당 뿐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포함하여 오늘날 한국에서 명망가들이나 정치가들은 북한에 갔다 오고 싶어서 잔뜩 몸이 달아있다. 여의도의원회관에서는 “올해가 저물기까지 평양 벗꽃 구경도 한번 못하면 병신 議員”이란 우수개 소리가 들리고 있다.
세 번째로, 빅2진영인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강정책을 살펴보면, 둘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처럼 철저하게 보수주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은 아니다. 민노당이나 열우당처럼 노골적인 대북유화책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가급적 김정일과의 대결을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두 캠프진영의 인적 구성은 좌우익이 혼합된 인적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박근혜의 캠프는 당내에서 다소 우익·중도 진영으로 갖추어져있고, 이명박은 핵심참모에서부터 당내의 개혁, 진보를 주장하는 소위 중도좌파진영까지 흡수하여 외연을 넓히고 있지만, 하부조직으로 가면 갈수록 이-박에 대한 선호도에서 갈라지지 이념전선에서 대립되지는 않고 있다.
네 번째로, 한나라당의 비서진이나 실무진의 이념성향은 민정계 성향보다는 중도성향으로 운동권과의 은밀한 癒着이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비근한 예로, 민노당의 비밀당적을 가진 실무진들이 무려 30여명이나 적발되었지만, 중징계 등으로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유야무야된 것은 자칫 강한 처벌이 당의 기빌정보를 누설할 우려도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뿌리가 깊기 때문에 수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한다. 로마제국 말기에 기독교인들을 처벌하려고 했을 때, 구중궁궐에서 황제 모친, 황비와 그 친인척들이 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기 처벌할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사회적 사정으로 결국 로마말기에는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여명의 비밀 민노당 당적보유사건은 좌파가 깊이 한나라당에 침투했음을 나타내는 反證이다. 고구마 덩쿨처럼 치렁치렁 얽혀있다면 처치가 곤란한 법이다. 겉으로 보이는 얼굴과 머리는 파랑색인데, 손과 발이 불그스레한 당뇨병 환자를 연상해 보라!
III
한나라당의 집권시에 자연히 이들은 論功行賞 차원에서라도 한 덩어리가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고 고위공직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좌우익 동거정부의 등장 가능성을 지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긍정적으로 좋게 말해서, 몇년전부터 시민단체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예측은 한나라당이 분당하여 ‘두나라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사적으로 좌우익 동거 정권은 존재했었다. 한국의 경우, 김영삼 문민정부가 엄밀하게 말한다면, 최초의 좌우익 동거정권에 해당된다. 그런 정치실험을 했지만, 극렬 운동권과 과격노조들이 사회적 불안을 조장했고, 여기에 김대중이 이끄는 야당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김일성이 초래한 1차 북핵위기에서도 갈팡질팡하면서, 결과적으로 IMF라는 최초의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좌우익 동거 정권이 등장한다면 정치적 안정에 대해서 낙관할 수 없다.
외국에서도 좌우익 동거정권의 등장 사례가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1981년 5월 10일, 프랑수아 미테랑이 지스카르 데스탱을 물리치고 사회당 출신으로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테랑은 임기 7년의 대통령 직을 두 번 꼬박 채웠다. 무려 14년을 재임 한 미테랑.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최장수였다. 그는 재임 중 두 차례에 걸쳐 좌파 대통령에 우파정부라는 괴이한 쌍두마차를 몰았다. ‘좌우동거’는 사회당 개혁주의에 대한 절묘한 견제와 균형이었고, 당초 우려와는 달리 순항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프랑스 공산당이 우익 사회주의자들과 반파쇼 인민전선을 결성한 경우나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 장군과 싸운 스페인의 인민전선 정부(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민주주의, 공산주의와의 결합)는 모두 실패한 경우에 속한다. 그래도 프랑스와 스페인의 인민전선에 가담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국제적 파쇼세력에 대한 저항이란 대의명분이 존재했었다.
IV
만약 좌우익 동거 정권이 등장하게 된다면, 단순하게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본격적 화해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그런 정권의 성패는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서 좌익과 우익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滿開하여 표를 긁어모으기 위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플리즘의 정치작태를 보이고 있는 바, 심지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에게 알현하기 위해 남한의 온갖 기밀정보를 갖다 바치면서 대북지원을 약속하면서 아양과 추대를 떠는 친북좌파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데, 이에 맞서서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카리스마형 지도자가 등장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우익으로서는 네 가지 당면 과제들이 놓여있다. 첫 번째로, 올해 친북좌파정권을 교체할 수 있겠는가?
또 두 번째로,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좌우익 동거정부가 등장하게 된다면, 국가경쟁력 강화 등 이들이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여 함께 무엇을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이유는 햇볕정책 존속 여부, 북핵문제, 북한해방, 김정일 정권 교체 등의 대북정책에서 차기 집권층내부에서 보수우익과 친북좌익은 첨예하게 대립한 채, 지루한 정책논쟁이 지속되어 대북정책이 장기간 표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더 심각한 점으로 좌파가 일정한 권력을 향유한 차원에서 보수우익이 간절하게 바라는 친북좌파의 척결은 가능할 것인가? 네 번째로, 좌우익 동거정부가 들어선다면, 보수우익은 과연 어느 정도로 수용하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강하게 남는다.
결국 보수우익은 이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한다면, 올해 12월 대선이라는 1차전과 내년 4월 총선이라는 2차전을 연계한 선거 전략을 수립해야할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것이다.(2007년 5월 26일)
<김정일의 대항마를 찾아라> II(뉴라이트출판사, 2007, pp.223-230)
교보문고에서 시판, 출고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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