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먼저 '시민적 우정'을 생각하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사는 보람과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
강물이 흘러가듯 2008년 한 해가 흘러갔다. 한 해를 보내며 수많은 추억들도 더불어 떠나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망각의 강이라고 불렀던 ‘레테의 강’에 던지지 말고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까닭은 새 출발을 하기 위함이다. 매일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도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자신의 담배 인생을 되돌아보기 때문에 가능한 이치와 다를 바 없다.
올해 역시 개인적으로 보면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교차하고 있을 터이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큰 일이 있었다. 여야 간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층 더 공고화되는 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사무엘 헌팅톤은 한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야 간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두 번에 걸쳐 이뤄지면 단단해진다고 진단한 바 있는데, 올해가 한국에 있어 바로 그런 해였다.
하지만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다원주의사회에서 구성원들 간에 갈등과 반목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갈등과 대립이 어느 한계 이상으로 증폭될 때, 공동체는 해체의 길목으로 내몰리게 된다. 많은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 정치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그러기에 모르는 남에게 어떤 예의를 갖춰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는 물론, 아예 무관심한 경우도 많다. 차라리 얼굴을 마주보고 사는 작은 공동체에서는 정이 오가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깍듯하다. 가정공동체·직장공동체·교회공동체 등이 다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간도 빼주고 쓸개도 빼줄 정도의 감동스러운 일도 많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릴레이 장기이식을 보라. 가족을 위해 홀로 희생하는 기러기 아빠도 훈훈한 가족의 정을 대변한다.그러나 모르는 사람들끼리 사는 시민공동체는 다르다. 말만 공동체일 뿐, 얼굴도 모르고 마주볼 일도 없는데 어떻게 고운정이 솟아 나고 또 예의를 지킬 마음이 생기겠는가.
그러기에 이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이름을 붙인 학자도 있다. ‘상상의 공동체’에서는 정도 메마르고 예의도 실종되기 쉽다. 우리 인터넷에서 수없이 생겨나는 ‘악풀’들이야말로 ‘상상의 공동체’의 어두운 단면이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예의 바르게 대할 법도 한데, 욕부터 하는 무례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시민적 우정’이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점을 헤아려 모르는 사람들끼리 특별한 우정이 필요함을 강조해 그리스어로 ‘필리아 폴리티케(philia politike)’라고 명명했다. 이른바 ‘관포지교(管鮑之交)’처럼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도 중요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우정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달라도 우리는 더불어 정을 느끼고 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사는 보람과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 한 해를 보내며 나부터 ‘시민적 우정’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를 위해 우리 모두 가슴에 촛불을 켜 보자.(konas)
박효종(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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