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전교조를 극복해야 '잃어버린 10년' 복구 가능
좌파는 선거결과에 불 승복과 투쟁적 저항성향이 지배-MB는 次期 우파정권 창출할 의무 있다
어느 정권이라 하더라도, 정권 교체기에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집권 초기 국정 장악력이 문제가 된다. 더구나 이념이 같은 정당끼리의 교체는 별 문제가 없으나, 이념이 다른 정권 교체는 인계인수의 껄끄러움이 국정 장악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우파라는 개구리가 미지근한 냄비물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더구나 국정핵심정보에 대한 인계가 없을 수 있으며, 특히 국정원의 역량저하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이념이 다른 정권교체의 경우는 김영삼 정권에서 DJ정권 그리고 MB정권이었다. 이 두 번의 정권교체기의 경우를 대비하여 보면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첫째, DJ정권 초기는 우파와의 공동정권이었다. 즉 자민련이 내각책임제 개헌을 조건(결국 실패했지만)으로 DJ를 지지하여 성립된 정권이었다. 따라서 JP가 총리로 취임하였고,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7개부처 장관임명은 JP몫이었다.
DJ 대통령은 2년 후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 깨진 후에도 박태준 씨와 이한동 씨를 연이어 임명하여 우파 활용의 妙術(묘술)을 연출하였다. 따라서 우파인사들이 상당수 좌파정권 안정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고, 우파에서 좌파 정권으로의 이행이 원만하게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때문에 우매한 보수적 국민들은 우에서 좌로 넘어가는 국정운영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좌익정권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마치 개구기를 냄비에 넣어 서서히 데우면 뛰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이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MB와 그 지지세력의 권력 독점욕이 사태를 그르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MB 단독정권이 성립되어 좌에서 우로 급격히 넘어가는 과정인데 처음부터 소고기 파동 등, 소란한 정국으로 시작되었다. 두 현상이 다른 이유는, 공동정권과 단독정권의 차이도 있으나, 정권을 빼앗긴 측의 성향의 차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10년 전의 보수적인 우파는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체념적 온건성향인데 반하여 지금의 좌파는 선거결과에 대한 불 승복 심리와 투쟁적 저항성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구리가 뜨거운 냄비에서 뛰는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e지원 사건과 같은 국정정보의 유출, 시민단체 데모 등의 우회적 방해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정권 초기에는 다른 때보다도 더욱 수권세력의정치기반이 확고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MB정권은 압도적 표차로 승리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스스로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였다. MB가 당선 후 협력을 받아야 할, 같은 우파정당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내 비주류 세력까지 거세시도의 오해를 낳기도 하였다. 이렇게 된 원인은 MB와 그지지 세력의 권력 독점욕이 사태를 그르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소고기 파동으로 야기된 좌파공세에 대항할 범 우파세력의 집결이 불가능하였고, 도리어 야바위꾼(광우병 보도TV와 인터넷 매체들)들에게 놀아난 일부국민의 흥분과 비난에 머리 숙이는(청와대 뒷산 발언) 나약함을 드러내어 우파로부터도 스스로 고립되었다.
DJ정권 초기의 성공은 우파의 협력 덕이었다
따라서 불안(지지율 20%선)한 정부로 국정운영에 임하게 된 것이다. DJ정권 때와 같이 이념이 다른 세력과의 공동정권은 아니더라도 권력 독점욕만 버린다면 이회창 총리 영입, 자유선진당 통합도 이룰 수 있어, 어떤 야바위꾼이 등장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정권 창출이 가능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초기 안정은 안정적 이미지의 고건 총리 영입이 주효했다.
큰 나무가 바람을 막고, 심은 사람이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MB가 현 러시아정국의 케이스를 우려했다면 이런 큰 그림의 정치적 발상이 나올 리 없다. 他黨(타당)과의 제휴까지 안가더라도 박근혜 총리 안으로라도 능히 난국을 조기에 돌파할 수 있었다. 총선 전 '국정의 동반자'로 지칭한 MB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당선 후 "나의 경쟁자가 아니다."의 발언으로 '화장실 출입전후'의 정치적 신뢰 상실만 부각시켰다. 요는 권력독점욕이 오늘의 허약한 내각을 잉태하여 어려움을 자초한 것이다. 선출된 대통령이라고 해서 권력독점이 현명한 것은 아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임기응변과 폭넓은 도량이 있어야 한다. 도량 그 자체가 정치일 수 있다.
둘째, 국정경험 있는 인재의 등용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DJ 초기 정권은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기 때문에 국정경험이 풍부한 우파인사가 상당수 등용되어 국정운영에 차질이 없었다.
특히 유능한 경제전문 인재들은 IMF사태까지도 이겨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DJ는 未曾有(미증유)의 경제적 난관을 우파인사를 활용하여 극복하는 한편,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애매한 언어로 해인지 달인지 국민으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면서 전교조를 합법화하여 민주노총을 비대하게 만들었고, 시민단체에 세금을 퍼부어 좌파세력을 확장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하여 IMF극복 선언을 서둘렀고,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은 도리어 남한 옷 벗기기가 되었으며, 금강산 관광 대가는 핵폭탄 선물로 되돌아 왔다. 이렇게 잘못된 DJ정책들이 시행될 수 있는 토대는 IMF사태에도 불구하고 국정의 안정운영에 우파 일부가 협력했기 때문이다.
MB주변 위기에 대처할 인재(바람막을 사람)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각책임제로 권력을 잡으려 헛된 꿈 때문에 JP는 본의 아닌 부역을 한 샘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1965년부터 10년간 중국의 문화혁명은 대학교육이 없는 시대를 만들었다. 따라서 등소평의 개방개혁을 집행할 능력 있는 인재가 부족하였다 .중국의 80년대는 인재를 기르는 기간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MB정권이 들어선 바로 지금이 중국의 80년대와 같이 우파 인재난에 봉착한 것이다. 좌파정권 10년은 우파인재의 소멸시기가 되어 버렸고, 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은 70세를 넘는 고령이 되었다.
따라서 청와대 비서실 진영이나 장관등용은 10년 전 국과장급관료의 경험자나 연구소 연구원 또는 조교수급 학자였던 분들로 메울 수밖에 없는 실정에 처한 것이다. MB 인맥도 '고·소·영'과 서울시청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능력보다도 충성도를 중시하기 때문에 인재를 널리 구하지 못했다. 인재의 부족은 국정위기 때에 알아본다.
소고기 사건의 미숙한 대응은 이러한 인재등용의 애로와 무관하지 않다. 즉 '노'라고 할 수 있는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대통령자신이 '노'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는지도 모른다. 등용된 사람 중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극히 적은 것을 보면 대충 알만하다. 연장자라 하더라도 외부에서 볼 때 예스맨에 가까운 분들로 보인다. 이런 참모 진영은 위기가 닥쳤을 때 바람 막을 사람이 없는 게 험이다. 대통령이 고립되어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 결과는 국민을 조마조마하게 할 뿐이다.
셋째,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파정권의 연속이었다. DJ정권이 처음으로 좌파정권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우선 행정 권료가 말을 듣지 않을 우려가 있다. 面從腹背(면종복배) 현상이 일어나고, 행정차질이 염려된다. 98년 2월 DJ정부는 총무처와 내무부를 행정자치부로 통합하는 등, 대대적인 정부조직 축소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나 원래 좌파정부는 작은 정부지향 형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부처가 개편되면 공무원 발령을 다시 내게 된다. 공무원은 인사권자에게 약하다. 재신임을 받으려면 꼼짝없이 새 정권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약점들을 보완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부처 축소는 공무원 장악의 일환이었다. 1년 후에 다시 국정홍보처와 여성부 신설, 부총리 제 부활 등 확대개편으로 되돌린 것을 보면 그 진위를 알 수 있다.
역시 좌파정부는 큰 정부지향 형인 것이다. MB정부도 '작은정부'를 표방하고 나왔다. 선진국의 어느 나라든 보수정권은 작은 정부지향 형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공무원 길들이기'와 겸할 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길들이기 전에 소고기 파동이 터졌다. 정권의 힘이 빠져 '길들이기'에 별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관료 중에는 과거의 공신이 현재의 逆賊(역적)이 되는 당혹스런 입장에 처하는 공무원도 있을 것이다. 전 정권의 정책집행이 도마 위에 올라갈 때마다 관련 공무원은 심리적 공범관계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안정되지 않은 관료사회는 행정차질의 우려가 크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공무원은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玉石(옥선)을 가려 이해로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피차 어려운 때다. MB는 서울 시장 당선 후 반대 진영의 직원명단을 보지도 않고 폐기한 일이 있다. 잘한 일이다.
위와 같이 10년 전 DJ정부 때와 비교해 MB정부가 상당히 불리하다. 운명적인 점도 있고, 가만하여 자초한 면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약점들을 보완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지나간 몇 개월을 돌이켜 보면, 문제의 해결을 인내심과 세월에만 의지하는 것 같다.
지지기반의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이 가장 소홀한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급변하는 시국대응에 적절하지 않다. 해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분의 축소, 노사개혁, 규제개혁, 대북관계, 세제개혁 등 좌파정권 10년의 유산 정리가 산적해 있다. 더구나 미국의 금융공황으로 벌어진 세계적 불황의 쓰나미 까지 뒤집어쓰게 되었다. 잘해서 3% 경제성장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난제들을 극복하려면, 먼저 정치적 지지기반의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점이 가장 소홀한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원인을 MB 개인적 경력에서 엿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는 현대건설이라는 대기업의 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기업인 출신이다. 그래서 CEO 대통령이라고 한다. 미국식 진짜 CEO는 기업경영에 全權(전권)을 가지고 있고, 그 대신 잘못하면 주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해임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그렇지만, 대부분의 고용사장의 경우 명색만 CEO일뿐 그 권한은 관리부문에 국한된다. 그러면서 매출증대와 이익창출의 의무만 질뿐이다. 현대건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결정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허락 없이 집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대신 잘못 해도 왕 회장에게만 잘 보이면 쫓겨나지 않는다. 게다가 왕회장보다 한 수 더 떠야 인정받는다. 그러므로 왕회장 외에 다른 사람은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다. 경영참모들은 왕회장이 보내주는 사람이거나,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쓰게 된다. 더구나 건설업 특히 토건업이란 기업풍토가 군대나 비슷하여 일사불란한 체질의 조직이다.
MB는 좋으나 궂으나 이런 환경에서 청춘과 장년을 보냈고, 서울 시장이 되어 비로소 처음으로 윗사람 없는 자기 결정이 가능한 CEO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이라는 사나이는 왕회장에게 "아니요"라고 말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주관이 뚜렷하고, 치밀한 계획과 행동을 겸비한 유능한 인재였던 것 같다. 대체로 바람직한 CEO상이나 윗사람이 없으면 독선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권 초기의 실수는 장래를 위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대강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의 공통점은 첫째, 반대가 있더라도 자기가 확신이 서면,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관철한다(청계천 공사). 둘째, 부하는 예스맨을 선호하고, 제2인자는 두지 않는다(내각과 비서진 인사). 즉, 윗사람에게 "노"할 수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으로부터는 "노"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셋째, 매사에 끈덕지고, 불리하면 상황이 유리해 질 때까지 잘 참는다(소기가 파동 대응). 넷째, 자기 윗분에게만은 잘 보이도록 노력한다. 취임 후 첫 나들이는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었고, 당시 그에게 부시가 왕 회장 이미지로 닦아왔을 것이다. 왕회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소고기협상을 소홀하게 다룬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성이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방향만 잘 잡으면 성공할 수도 있다. 국영기업 사장인사에 과거와 같은 정치인의 자리마련이 아니라 민간 전문경영인을 임명하는 것 등은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상형은 경제를 살린 박정희 대통령일 것이다. 제2의 박정희가 그의 꿈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가 문제일 것이다. 그의 경력에서 살펴보았듯이 부정적인 면은 정권 초기에 국회의원 공천과 장관을 비롯한 참모인사에서 그 취약점이 드러났다. 소고기 파동이 없었더라면 독선적 국정이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비주류가 갈라서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소고기 파동(좌파의 우파공격)이 우파간의 상쟁으로 보수진영이 분열될 위험은 예방된 셈이다.
더구나 독선적 자세도 다소 누그러졌다(대운하 포기, 비주류 입당 등). 앞으로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는 더욱 신중해 질 것이다. 그래서 소고기 파동을 정권초기에 격은 것이 장기적으로 잘 된 일 일수 있다. 다만, 이념을 추월한 실용주의가 원칙없는 시계추 행정이 될까 걱정이다. 등소평의 '黑猫白猫(흑묘백묘)론'이나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실적 지상주의가 MB의 생각일 수 있다.
MB는 우파 차기 정권을 창출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신뢰회복이 先行(선행)돼야
그러나 실적을 올리려면 먼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일부터 해야 한다. 이 일의 핵심은 민노총과 전교조를 극복하는 일이다. 세계금융대란 극복이 우선이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모든 개혁과 실적 향상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내년도에 노조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면 MB정부의 가능성을 안다.
우리나라 노사문제는 꼬일데로 꼬여왔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역대정부가 노동분쟁이 터지면 빨리 해결하도록 기업에 압력을 넣었다. 기업은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은 깨지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하여 돈으로 해결하려는 타성이 몸에 배였다. 이러한 나쁜 타성을 단절해야 노사문제가 바로 선다. 나쁜 타성이 시정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단초가 되는 것이 내년까지 유예된 노동법의 전임자 임금지급 불법화다. 과연 이것이 관철되는 지를 지켜보면 MB정부에 희망을 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국민은 노무현 정부에 크게 실망했다.
결과는 좌파의 失權(실권)이었다. 작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국민들은 4년 후 노무현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그것이 더 걱정이다. MB는 우파 차기 정권을 창출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에 대한 신뢰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쫀쫀한 스타일의 틀을 깨고, 넓은 인재등용 그리고, 불퇴의 의지를 보이는 그런 정치로 국민을 마음놓게 하라.(한국논단)
박종규((사)바른경제 동인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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