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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軍의 산파 창군동우회 총회 열려

110명 장교 임관, 현재 국내외에 23명 거주... 아직도 안보에는 열혈 청년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9-01-15 오후 3: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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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군 탄생의 산파역할을 담당했던 우리 군의 최고 원로들도 이제는 80대 중반을 훌쩍 넘겨 90세를 넘어서는 등 창군 원로들도 세월의 무게만큼은 빗겨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같이 찬바람이 불고 한파가 기승을 부리면 건강에는 더욱 적신호가 켜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60여년 전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의 굳건한 기둥이요 튼튼한 안보의 버팀목이 될 군대 창설을 위해 현지에서 진두지휘하고 김일성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불법 남침(6·25전쟁)에 맞섰던 청년의 기개는 변함 없어 보였다.

 그 당시 거센 바람 앞에 일렁이는 촛불 신세와도 같은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전선을 누볐던 이 나라 국군태동의 주역이자 군사영어학교 출신 창군동우회원들은 육신에는 다소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만은 부하를 독려하고 호령하며 조국의 산천을 지켰던 모습은 예나 이제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  1월15일 정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창군동우회 2009년도 정기 총회 모임. 이 날 모임에는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이 참석해 우리 군의 최고 원로들에 대해 깊은 예를 표했다. ⓒkonas.net

 2009년 기축년 새해를 맞아 국내에 거주하는 창군동우회(회장 김계원, 예. 육군대장 전 대통령 비서실장)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16명의 회원 중 건강상 이유 등에 의해 이 날 모임에는 5명이 참석해 매년 전·후반기 한번씩 이뤄지는 모임에 비해 모이는 회원의 숫자는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진다.

 창군동우회 창설 기념일인 1월 15일 정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이 날 모임에는 김계원 회장을 비롯한 백선엽(예, 대장. 전 합참의장), 강영훈(예, 중장. 전 국무총리), 황헌친(예, 준장. 전 1군 사령부 참모장), 김종면(예, 준장. 전 특무부대장)이 참석해 지난 한해 회고와 국가안보를 위한 의견을 교환했다.

 ▲ 총회 모임에서 향군 노창현 조직 복지국장의 향군활동상을 설명듣고 있는 백선엽(가운데), 강영훈(오른쪽) 원로, 왼쪽은 박세환 향군 육군부회장 ⓒkonas.net

 또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박세직 회장과 박세환 육군부회장, 그리고 노창현 조직 복지국장이 참석해 향군의 활동상을 알리는 시간도 가졌다.

 이 날 박세직 향군회장은 금년도 향군이 주안을 갖고 추진해 나갈 안보와 관련한 업무중점방향을 설명하고 원로들의 의견을 귀담아 금년한해 향군이 해야할 안보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향군은 이 날 창군 원로들에 대한 설명에서 ▲후방예비전력 주체 안보중심체 역량 축적 ▲좌편향 국가정체성회복 친북좌파 척결운동 전개 ▲친목단체지원 회원권익 및 복지 증진 ▲국제사회에서 향군 위상 부각 등에 대해 알리고 특히 좌편향 교과서 등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이해를 돕기도 했다.

 오찬을 겸해 이루어진 이 날 모임에서 회원들은 그 동안 향군이 주도해온 국가 안보활동에 격려를 보내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향군이 침묵을 해서는 안 된다"고 독려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얘기를 한다. 안보에 관한 한 믿을데는 향군밖에 없고 향군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고 또 그런 말을 듣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군의 살아있는 전쟁영웅으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백선엽 장군은 국방부전사편찬위 자문위원장으로 지난해 10월 6·25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 상황을 실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 등지를 현지 확인하고 돌아왔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6·25전쟁 초기 사단장과 군단장으로 전선을 지휘해 그 자체로서도 생생한 전사(戰史)이기도 한 백선엽 장군은 만주에서 창천, 단동 용정, 연길, 토문, 간도 등 300Km를 버스로 이동했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이 지역이 지난 날 고구려가 차지했던 우리 영토였음을 강조해 노령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나라사랑 정신에는 하등의 변함이 없음을 새삼 일깨워 주기도 했다.

 백 장군은 "현지를 돌아보면서 6·25전쟁 때 중공군이 어떤 과정, 어떤 루트를 통해 들어왔는지를 지형 정찰한 것은 매우 유익했다"며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열거해 나가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백 장군은 "6·25전쟁시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던 김일성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낙동강에서 45일 동안 후퇴를 거듭해 압록강 만포진 까지 숨어들었고, 이것은 김일성에게 최악의 상황이었다"며 이로 인해 "소련의 스탈린에게 잘못 보여 매우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전사의 한 토막을 소개했다.  

 이런 것이 계기가 되어 휴전후 제일 먼저 박헌영 등 남로당을 숙청하고 이어 소련파 공산당, 그리고 중국계인 연안파를 숙청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 백선엽 장군과 강영훈 장군이 반갑게 악수를 나눈 후 서로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고 있다. ⓒkonas.net

 그런데 국방경비대 창설의 주역인 창군동우회는 해방 직후 서울에 세워진 군사영어학교 출신 간부들의 모임이다. 군사영어학교는 미군정 당국이 장차의 주한 미군 감축 및 철수에 대비하여 한국에 미국식 군사제도와 교리에 입각한 토착군사력을 양성하고자 영어를 이해하는 간부요원을 확보하기 위해 1945년 12월 5일 개교했다.

 1946년 4월 폐교 이전까지 110명이 졸업, 장교로 임관되었고 나머지는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1기로 편입되었다가 임관하였는데, 이들은 국군의 창설과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6 ·25전쟁에서는 국토방위에 많은 공훈을 세웠다.

 현재 창군동우회원 23명중 국내 거주자는 백선엽, 강영훈, 김계원, 백인엽, 김병휘, 백선진, 백남권, 정진완, 박현수, 김완용, 이치업, 황헌친, 김종면, 유재흥, 이후락, 이한림 장군 등 16명이며, 해외 거주자는 장도영, 원태섭, 이정석, 김병길, 이희권, 임선하, 김웅수 장군 등 7명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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