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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집권 1년 : ③ 문화]걷어내지 못한 左派의 해로운 유산,'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북돋아야'

Written by. 복거일   입력 : 2009-02-02 오후 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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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은 2월 25일 부로 취임 1년을 맞이한다. 취임이후 공약 달성을 위해 실용주의를 내 세우고 각 분야에서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우리의 주관적 해법이 통하지 않는 북핵문제, 세계경제난 등으로 그 성과는 국민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코나스는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을 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앞으로 한국논단측의 협의하에 6회에 걸쳐 정치, 경제, 문화, 안보, 대북, 교육분야  순으로 진단해 본다. (이 글은 한국논단 2월호에 게재된 내용 임.)<편집자주>

   문화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또렷이 정의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논의의 맥략에 따라 그말이 가리키는 것이 많이 달라진다.

 이념은 문화의 중요한 요소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정의하면, 문화는 “정보의 비유전적 전달(non-genetic transmission of information)"이다.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유전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을 빼놓고, 후천적으로 개인들이 얻는 모든 정보들이 문화라는 얘기다. 이처럼 넓게 정의하면, 문화는 모든 사회현상들을 포함한다.

 보다 좁은 정의는 문화의 전통적 특질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 문화”나 “불교 문화”는 문화를 이렇게 정의한 경우들이다. 한층 더 좁은 정의는 사회적 집단들 사이의 문화적 변별을 강조하는 것이다. “청소년 문화”나 “중산층 문화”는 이렇게 정의한 경우다. 개인들에 구현된 상태를 문화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문화는 ‘교양’과 거의 동의어다. 취향과 범절이 세련되고,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소양이 깊은 상태에 이른 사람들은 ‘문화적’ 이라고 평가된다. 일상적으로 문화는 이 뜻으로 쓰인다. “문화 생활”이나 “문화 산업”은 문화를 이렇게 정의한 경우들이다.

 문화는 이처럼 여러 가지 뜻을 지녔지만, 어느 경우든 이념은 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다. 이념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인식적, 도덕적 믿음들의 복합체다. 당연히, 한 사회의 성격과 모습을 다듬어내는데서 이념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의 이념은 자유민주주의

 우리 사회가 헌법을 통해서 구체화한 이념은 자유민주주의다. 이울러,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둔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고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가장 나은 이념과 체제다. 현대에서 갖가지 전체주의 이념과 사회주의 체제들이 실험되었지만, 모든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고 무너졌다. 우리 경험도 그점을 증명했으니, 좌파 정권들의 사회주의적 실험들에 대한 평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가 훌륭하다는 점을 기회가 나올때마다 강조하고 그것들을 지키고 다듬어나가야 한다. 이것은 침체한 우리 사회가 건강을 회복하고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도록하는 궁극적 처방이다.

 이점에서 현 정권의 첫해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래 이념에 대한 인식이 깊은 정치가는 아니다. 그는 이념이란 말을 자주 쓰지 않고 쓸 경우에는 대체로 그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다. 그는 이념이 합리적 판단에 장애가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는 우리 헌법에서 구체화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특별한 호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나 자본주의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고, 경제적 자유의 핵심인 재산권이란 말은 아예 쓰지 않는다.

 대신 실용이란 말을 무척 좋아한다. 취임사에서도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이념들을 버리고 실용을 원리로 삼으면, 계층들 사이의 갈등이 풀리고 투쟁적 행위들이 사라지리라고 여긴다.

 실용은 모호한 개념

 아쉽게도, 실용은 그렇게 큰 일을 맡을 만큼 튼실한 개념이 못된다. 허황되거나 형식적이지 않다는 뜻을 지녀서 좋게 받아들여지지만, 실용은 들여다볼수록 모호해지는 개념이다.
 누구도 실용을 정의나 평등과 같은 궁극적 가치라고 여기지 않는다. 효용과 비슷하지만, 실용은 호용보다 훨씬 모호하고 사회적 논의에서 쓸모가 적다. 게다가 실용이라는 개념은 변별력이 작다. 모든 사람들이 늘 실용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실속없고 허황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실용을 추구한다고 믿는다. 자연히, 어떤 사물이 과연 실용적이냐 아니냐 판단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궁극적 가치로 여겨지지 않으므로 실용은 다른 가치들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실용이란 개념엔 개인들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려가 들어있지 않다.

 실용이란 개념을 깊이 살피고 엄격하게 정의하려면, 우리는 철학 이론의 하나인 실용주의(pragmatism)를 참고하게 된다. 실용이란 개념과 실용주의란 개념 사이의 관계가 긴밀하거나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둘이 섞여 쓰이고, 실용주의의 후광이 없었다면, 이 대통령도 실용이란 말에 그렇게 큰 뜻을 담지 않았을 것이다.

 실용주의는 원래 인식과 의미에 관한 철학이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진실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서, 실용주의는 사회의 조직과 운영을 다루는 사회 철학과는 관련이 거의 없다. 그래서 통념과는 달리,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논의에선 쓸모가 적다.

 이념에 대한 이해와 관심부족

 이 대통령이 보인 이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은 당연히 그의 임무 수행에 근본적 영향을 미쳤다. 불행하게도, 그런 영향은 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먼저,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지난번 선거에서 그가 시민들로부터 받은 근본적 위임사항(mandate)은 지난 10년 동안 좌파 정권들 아래서 많이 훼손된 자유주의 원리를 회복하라는 것이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에 담긴 진정한 위임사항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못했고, 작은 저항에도 자신의 정책을 이내 포기하는 형태를 보였다.

 다음, 이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부족은 좌파 이념의 성격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낳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자신이 좌파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얼마나 위험한가 깨닫지 못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좌파라 불리는 이념은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다. 민족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해서 나온 전체주의 이념으로 단체주의(corporatism)를 프로그램으로 내세운다. 단체주의는 사회전체를 산업 및 직업 단체들로 조직해서 그 단체들이 산하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그들의 행동을 상당히 엄격하게 통제하는 체계나 원칙을 가리킨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모든 전체주의 이념들을 차츰 민족사회주의로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민족주의가 워낙 근본적이고 강한 힘이므로, 사회주의 이념들은 민족주의와 결합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민족사회주의라는 흑공(blackhole)으로 빨려 들어간다. 러시아의 공산주의가 차츰 국제주의나 계급 이론을 버리고 러시아의 이익을 앞세우게 된것도 이런 경향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민족사회주의 흑공으로 빨려 들어가면, 스스로 빠져 나오기는 무척 어렵다.

 물론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추종한 민족사회주의는 고전적 형태인 파시즘이나 나치즘처럼 극단적이거나 사악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을 따르고 우리 사회를 북한에 종속시키려 애써온 세력을 빼놓으면 두 정권의 추종자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이념이 민족사회주의라는 사실도 또렷이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러나 두 정권들이, 특히 노무현 정권이 민족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질들을 두루 갖추었음이 드러난다.

 깊어지는 사회적 분열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어긋나는 이념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두 좌파 정권들의 치적은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부문들에서 우리 사회는 활기를 잃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정책들이 부정적 유산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현 정권이 물려받은 해로운 유산들은 많고 크다. 정부의 몸집이 커지고 세금이 늘어나서, 시민들의 경제적 자유가 줄어들었다. ‘햇볕정책’이라 불린 유화정책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할 나위없이 비정상적이고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해로운 유산은 근년에 갑자기 깊어진 사회적 분열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하게 위해 시민들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골랐다. 부유한 계층에 ‘강남, 명문대, 재벌’이라는 구체적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는 ‘가지지 못한 자들’이 ‘가진자들’에게 품는 막연한 부러움을 구체적 증오로 다듬어냈다. 그리고 가진 자들의 어려움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사회주의 정책들을 정당화했다.

 이런 전략은 자신이 많은 것을 ‘누릴자격(entitlement)’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크게 늘렸다. 자신이 넉넉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고, 스스로 누릴 능력이 없으면, 사회가 ‘가진 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자신이 넉넉한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자원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점점 높였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들에서 이익을 볼 집단들이 나오도록 만들어서, 자신이 물러난 뒤에도 그들이 정책들을 지키도록 했다. 지금 잘못된 정책을 걷어내려는 시도는 가진 자들을 위한 조치라는 비난을 받는다.

 셋째, 이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부족은 좌파가 장악한 대중매체가 제기하는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했다. 좌파는  지도자가 제시한 사회적 목표들에 사회의 온 역량을 집중하려는 이념이다. 자연히, 선동선전(agitprop)을 통한 대중의 동원을 기본 전략으로 삼는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그런 전략을 노골적으로 추구했고, 큰 정치적 이익을 보았다. 합법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섰지만, 좌파는 선거에서의 패배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장악한 대중매체를 통해서 선동선전을 계속했다. 이런 상황은 아주 위험했지만, 현 정권은 그런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자유주의에 대한 믿음과 부족, 좌파 이념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부족, 그리고 좌파가 장악한 대중매체가 제기하는 위험에 대한 인식의 부족은 결국 현 정권의 위기를 불렀다. 한 방송사에 의해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광우병의 위험이 좌파 매체들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두려움에 질린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나왔고 끝내 정권 퇴진운동으로 변질되었다. 이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했던 이 대통령에게 그런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고 그의 대응은 원칙을 버린 굴복의 연속이었다. 법의 권위는 거의 다 사라졌고 선거에서의 참패로 풀이 죽었던 좌파는 되살아났다. 결국 이 대통령은 자신이 선거에서 얻은 위임사항들을 추진할 정치적 역량을 거의 다 잃었다.

 되살아나는 좌파세력

 이 대통령의 이력은 그가 이념에 대해 이해도 관심도 보이지 않는 사정을 설명해 준다. 그는 평생 기업가로 일했다. 기업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어 이익을 남기는 조직이다. 기업은 자유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 덕분에 존재할 수 있지만, 기업의 운영은 이념에 대한 지지와는 별 관련이 없다. 실은 이념에 대해 마음을 많이 쓰는 기업가들은 경쟁에서 불리할 터이다.

 정치가로 변신한 뒤에도 이대통령은 이념에 마음을 크게 쓸 일이 없었다. 서울특별시의 운영은 기업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 정책들은 모두 중앙 정부에서 다루어지고, 지방 자치단체의 수장인 서울시장은 그런 정책들을 바탕으로 자체 사업들을 수행한다. 그가 ‘청계천 복원사업’이나 ‘서울시 교통 체계정비사업’과 같은 “사업”들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것은 그런 사정에 크게 힘을 입었다. 그런 사업들을 수행하는데 그의 이념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대통령이 이념을 무시하면 안돼

 이처럼 그는 자유주의 덕분에 성공했지만, 지금까지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뚜렷이 노력한 적은 드물다. 즉 그는 ‘이념적 무임승차자’로 살아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은 이념을 무시할 수 없는 자리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주어진 자원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주느냐 결정하는 일이다. 당연히 이념이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대통령이 내리는 어떤 정책이나 결정도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뿐더러 이념적 바탕이 없으면 논리적 일관성을 지닐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지도자는 자유주의를 굳게 믿고 실천하려는 사람이다. 사회주의를 실험한 정권들이 남긴 문제들에 임상적으로 대응하려는 지도자가 아니다. 올바른 이념을 가진 지도자만이 문제들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옳은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이념적 지향이 없으면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쳤을 때 인도할 나침반이 없다. 그럴 경우, 정치 지도자를 이끄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뿐이다. 특히, 자유주의에 따른 경제 개혁으로부터 잃을 것이 있는 사람들이 개혁에 거세게 저항할 때, 이념이 주는 이론적, 심리적 도움이 없으면, 과감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펼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이런 사정을 통찰하고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시민들의 호감과 충성심을 북돋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길은 헌법을 높이는 길뿐임을 천명하고, 헌법이 제시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헌법을 높이는 길임을 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도전하고 그 역사를 폄하하는 활동들을 정부가 지원하는 일들을 끊어야 한다. ‘인권 보호’나 ‘과거사 바로잡기’라는 명분 아래 반체제 활동들을 미화하고 심지어 금전적 보상을 하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건강을 크게 해쳤다. 정부의 문화 예산이 반체계적 예술작품들에 대한 보조금으로 쓰이는 일도 막아야 한다. 이런 조치는 예술활동의 검열과는 물론 다르다.

 반체제 지원금 끊어야

 다음엔, 왜곡된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좌파이념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를 통해서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는 한, 우리 사회는 이념적 혼란과 위협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셋째, 대중매체의 편파적 정보 전달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방송의 편파적 편성을 폐해가 크다. 이 점은 정부가 소유한 방송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면서 거짓된 선전을 한 까닭에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뀐데서 이미 드러났고 이번에 다른 방송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을 과장하여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불러온 데서 다시 드러났다.

 넷째, 북한으로부터 나오는 선동선전에 맞서는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여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을 늘리려는 시도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무지와 동경이 우리 사회에 대한 반감을 낳는 경향에 대처해야 한다.<한국논단2월호>

 복거일(소설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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