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자 보상법의 추억
1조 ‘민주주의 발전’을 ‘자유민주주의 발전’으로 수정하고, 2조 ‘민주화운동’을 ‘자유민주화운동’으로 수정하는 개정 필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약: 민보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전여옥 의원에 대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약: 민가협) 회원들이 테러를 가했다는 뉴스는 필자로 하여금 민보법 제정 당시 필자가 겪었던 일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1999년 12월 중순, 필자는 민보법 제정 문제를 다루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공청회에 공술인으로 참석했다. 필자는 한나라당 측 공술인이었고, 민주당 측 공술인은 박원순 변호사였으며, 자민련 측 공술인은 자민련의 전문위원이었다.
그 공청회에서 필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그들이 당했던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동하지만, 민보법의 ‘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자유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한 건의를 하는 논거로 ‘민주화운동’을 ‘자유민주화운동’으로 분명하게 정의해 놓지 않을 경우 민보법으로 인해 남한의 사회주의화를 목표로 활동했던 反대한민국 인사들까지 대한민국이 보상해주는 이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와 아울러, 필자는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사회에서 크게 확산되었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운동세력이 작성한 문건의 내용을 토대로 그들이 표방한 민중민주주의는 북한정권이 말하는 인민민주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며, 민중민주주의혁명은 사회주의혁명으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의 혁명이라는 사실을 국회의원들에게 확인해주면서 그들 민중민주주의세력은 민보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의 이러한 공술이 진행되자 방청석에서 참관하고 있던 민가협 회원들이 필자에게 ‘X새끼’, ‘OO놈’ 등의 욕설과 고함을 지르면서 필자에게 폭행을 가하려고 달려들었다. 그런 민가협회원들의 행동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민가협 회원들이 필자를 폭행하려는 순간 박원순 변호사가 민가협 회원들에게 자제하라고 호통을 치자 민가협 회원들은 조용해졌다.
민가협 회원들의 소란이 잠잠해진 후 속개된 공청회에서 민주당 소속의 추미애 의원이 자유민주화운동세력과 민중민주화운동세력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자유민주화운동’으로 하지 말고 초안대로 ‘민주화운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그 두 세력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답변했다.
공청회가 끝난 후, 한나라당 소속 의원 두 명이 자기 당의 공술인으로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필자를 위로하기 위해 필자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이 나라 반체제세력의 위협을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민보법의 ‘민주화운동’을 ‘자유민주화운동’으로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는 점을 재삼 당부했다. 아울러 민보법 심의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민보법의 적용 내용에 큰 차이가 초래될 것이므로 위원회 구성 관련 조항에 대해서도 많은 신경을 써줄 것을 부탁했다.
1999년 말에 6개월간 체류일정으로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던 필자는 출국에 앞서 우익진영의 원로들을 만나, 민보법이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 부정법이 될 수도 있는 법이므로 한나라당 지도부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법 조문 속의 ‘민주화운동’을 ‘자유민주화운동’으로 분명하게 정의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필자가 미국에서 6개월간의 연구를 마치고 2000년 5월 말에 귀국해보니, 민보법은 ‘민주화운동’이 ‘자유민주화운동’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당초의 원안대로 통과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면서 필자는 당시의 민주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당인지를 의심했다. 그리고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말하는 한나라당이 그 말을 진심으로 하는 것인지를 의심했다. 또한 명색이 당명에 ‘자유민주’를 표방하는 자민련이 자유민주주의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농후한 법조문을 찬성한데 대해 욕해주고 싶었다.
민보법은 제정이후 3차례 개정되었다. 2004년 3월의 1차 개정 때는 국회의 의석분포에 있어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의석이 재적의 과반수를 크게 초과하고 있었고, 민주당-자민련의 연합이 와해되었기 때문에 두 당이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에 대한 애착심만 강했더라면 민보법의 ‘민주화운동’을 ‘자유민주화운동’으로 명확히 정의하거나 아예 ‘자유민주화운동’으로 바꾸는 수정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당은 그러한 기회를 외면했다.
민보법의 시행초기에는 反자유민주주의 인사 및 反대한민국 인사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반자유민주주의 및 반대한민국의 목적으로 반정부투쟁을 전개했던 인사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로 표명하면서 활동해온 인사들, 남한에서 사회주의혁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그것을 위한 조직을 만든 인사들,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받들어 남한에서 혁명투쟁을 전개해온 사람들, 북한의 간첩으로 활동해온 사람들이 민보법에 의해 명예회복되고 보상되었다.
현재 민가협으로부터 테러를 당한 전여옥 의원이 추진하는 민보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이미 심의 완료된 사건들에 대한 재심의를 가능하게 하고, 재심의 시효를 10년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개정안은 현재의 민보법에 비하면 개선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민보법에 의해 반자유민주주의자와 반대한민국활동자들을 보상해온 일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개정안이 못된다. 민보법의 ‘민주화운동’을 ‘자유민주화운동’로 확정해놓지 않으면, 재심을 한다 하드라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왕 결정된 것들을 추인하게 될 것이다.
전여옥 의원과 한나라당이 민보법의 개정을 추진하려면, 그 법률의 목적을 밝힌 1조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자유민주주의 발전’으로 수정하고, 용어의 정의를 설명하는 2조에서 ‘민주화운동’을 ‘자유민주화운동’으로 수정하는 개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가지고 있고, 모든 주요 정당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그런 수정이 불가능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민보법의 그러한 개정에 반대하는 정당과 국회의원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지 않은 정당이요 국회의원으로 낙인찍힐 테니까.(http://blog.daum.net/pre-agora/15)
양동안(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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