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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賢姬 5大 의혹(?)을 밝힌다

지엽적인 실수나 사실을 물고 늘어져 사건의 본질을 뒤집으려는 것

Written by. 김성욱   입력 : 2009-03-17 오후 1: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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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金賢姬 의혹」의 핵심은 수사발표문의 지엽적인 실수나 사실을 물고 늘어져 사건의 본질을 뒤집으려는 것이다. 2003년 11월18일 방영된 MBC PD 수첩 역시 마찬가지이다.

1. PD수첩이 제기한 첫째 의혹은 金賢姬의 아버지 김원석이 架空(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이었다.

1988년 1월15일 안기부 李相淵(이상연) 차장은 『金賢姬의 아버지 김원석은 1962년에서 1967년까지 쿠바 주재 북괴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그 후 소련주재 북괴대사관에서도 근무한 바 있고, 현재는 앙골라 주재 북괴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확인 중에 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MBC PD 수첩은 문제의 방송에서 심모 변호사의 말을 소개했다. 그는 일본 신문의 취재로 김원석이 앙골라에 근무한 적이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단정했다.

 ▲ 그러나 콩고주재 북한 대사관 일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 3월에 귀순한 고영환씨는 『(사건 당시) 김원석씨는 앙골라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 중이었다. 나는 외교부 본부 6국에 근무했는데, 폭파사건이 나자 우리 국에서 앙골라 대사관으로 전문을 보내 김원석씨를 소환했다』고 공개증언한 바 있다.

 ▲ 金賢姬씨는 최근 요로에 보낸 탄원서에 따르면, 『아버지가 쿠바 외교관으로 재직하였다는 사실 증거자료가 있는데도 국정원은 방송사에 그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2002년 1월호 月刊朝鮮 기사에 따르면 金成東 기자와 인터뷰한 匿名(익명)의 국정원 직원은 『1962년 및 1965년 발행 쿠바 외교관 명단에는 김원석뿐 아니라 金賢姬의 어머니 림명식의 이름이 함께 등재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이 명단을 방송사에 제출했더라면 논쟁이 끝날 터인데, 고의로 그렇게 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고 金씨는 국정원을 의심한다.

 2. PD수첩은 金賢姬가 갖고 있던 수첩의 전화번호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문제의 수첩엔 북한 대외정보조사부 崔과장이 비상연락 시 사용하라고 준 네 개의 전화번호가 물품대금 구입액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적혀 있었다. PD 수첩은 두 개의 전화번호가 틀린 것만 소개하면서 金賢姬의 진술이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편집했다.

 ▲ 안기부가 해독한 결과, 두 개의 번호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주재 북한대사관 및 베오그라드 소재 공작아지트 전화번호와 일치했다. 논리상 네 개의 전화번호 중 하나만 맞아도 金賢姬가 북한공작원이란 증거가 된다. 그러나 맞은 번호는 무시한 채 틀린 번호만 들어 의혹을 제기했다.

 3. PD수첩은 대한항공기 폭파임무를 부여받고 김승일-金賢姬씨가 낭독한 『적후로 떠나면서 다진 맹세문』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PD 수첩은 안기부가 1988년 1월15일에 공개한 맹세문에 나오는 「규율」은 북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철자법이라면서 발표 다음날 모 조간신문에 「규률」로 수정되어 나왔으니 金賢姬는 북한공작원이 아니라는 의혹제기를 긍정적으로 소개했다.

 ▲ 金賢姬씨는 1987년 11월10일 저녁 무렵 동북리 초대소 응접실에 대외정보조사부 李 모 부장이 나타나 폭파팀 네 명(金賢姬, 김승일과 안내를 맡은 두 최씨)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진술했었다.

 『이번 임무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친필비준이 난 것으로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하는 것이다. 이번 일은 88 서울올림픽을 개최하여 두 개의 조선을 책동하는 적에게 큰 타격을 주는 중대한 임무이다.』

 11월12일 아침 동북리 초대소 2층2호 응접실에서는 네 명의 폭파팀이 선서모임을 갖고 「적후로 떠나면서 다진 맹세문」을 낭독했다. 기억력이 비상한 金賢姬는 안기부에서 그 내용을 진술했다.

 <우리는 적후(敵後)에서 생활하는 동안 3대 혁명 규율을 잘 지키고....생명의 마지막까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높은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지켜 싸우겠습니다>

 金賢姬씨는 『그들(PD수첩)은 내가 공작원 교육시 「이남화」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그 충성 맹세문은 남한의 조사실에서 남한 철자법에 따라 진술하여 「규율」이 된 것이다. 의혹 제기자들은 「규율」 철자 때문에 「충성 맹세문」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분명 동북리 초대소에서 맹세문을 낭독하였다』고 반박한다.

 4. PD수첩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문제는 소위 花童(화동) 사진이다. MBC PD 수첩은 안기부가 공개한 사진은 金賢姬가 아니라 『나 정희선이다』라고 주장하는 북한 측 동영상을 소개했다.

 ▲ 金賢姬씨는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자신이 1972년 11월2일 남북조절위 회담에 참석하러 온 남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주기 위해 평양근교의 헬기 착륙장에 花童(화동)으로 참석했다고 진술했다. 『나의 화동 참석 진술이 먼저였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2차적으로 수사관들이 사진을 구해왔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1988년 3월에 언론사에 金賢姬 花童의 사진이란 것을 공개했다. 여기서 金賢姬로 지목된 소녀가 金賢姬가 아니라 정희선이란 주장이 북한에서 제기되었다.

 사진 眞僞 공방은 일본에서 결론이 났다. 당시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赤旗)의 평양특파원이었던 하기와라 료 기자는 헬기 착륙장에서 찍었던 사진 한 장을 1988년 3월6일자 일본공산당 畵報 「그래프 안녕하십니까」에 「金賢姬인 듯한 소녀」란 제목으로 실었다. 북한은 그 소녀는 金賢姬가 아니고 정희선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박용 사진을 내어놓았다. 하기와라 료 기자가 처음에 지목한 소녀는 金賢姬가 아니었는데, 북한이 반박용으로 내어 놓은 화동들 사진 속에 金賢姬 소녀가 있었다.

 이 논쟁과정에서 요미우리 신문 사진부 기자(三石英昭)가 다른 방향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에서 金賢姬 소녀가 잡힌 것이다. 2004년 1월4일자 위클리 요미우리는 이 사진을 컬러로 공개했다. 한국에서 느닷없이 의혹설이 제기되어 공개한 것이다. 사진을 감정한 동경 치과대학 하시모토(橋本正次) 조교수는 『소녀의 귀와 金賢姬의 귀가 일치하고 입술의 오른 쪽 종기의 흔적이 일치하므로 同一人이 틀림없다』고 했다.

 이처럼 사진문제는 이미 판단이 끝난 것인데, MBC PD는 새로 발견한 의문점인 것처럼 의혹 제기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편파적 편성을 했다.

 5.  PD수첩은 바레인에서 金씨가 체포되기 직전 독약앰플을 깨문 것이 정말 죽으려 그렇게 한 것이냐고 의문을 던진다.

 주범 김승일은 독약앰플이 든 담배필터를 깨물고 삼켰는데, 金賢姬씨가 깨문 앰플은 끝이 조금만 잘라졌다. 해설자는 이를 두고 『金씨가 과연 자살을 기도했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면서 일본 아사히 텔레비전이 『(병원에서) 처음부터 의식이 있으면서도 의식불명을 위장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는 것을 소개했다. 『金賢姬는 사실상은 의식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의식이 없는 척 가장을 한 거죠』라는 한국 외교관의 논평도 내보냈다.

 ▲ 당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이러하다.

 1987년 12월1일 오전 7시경 金勝一과 金賢姬 두 사람은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30분 뒤 바레인공항에 도착했다. 로마행 항공권으로 출국수속을 마치고 출국신고 카드를 작성하여 출국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그곳에서 대기중이던 일본대사관 직원(40세 가량)이 여권과 출국신고 카드의 제시를 요구했다.

 두 사람은 이에 응하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일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레인주재 일본대사관 직원이다. 하치야 마유미의 여권이 위조로 판명되었으며 두 사람은 이대로 계속 여행할 수 없다. 일본대사관에 가서 일본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레인 경찰관 5명이 나타나 두 사람을 에워쌌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9시쯤 金勝一은 金賢姬씨에게 귀속 말로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일본에 보내어지면 우리는 이래저래 고생 하다가 죽게 된다. 차라리 여기서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고 말했다.

 金賢姬씨는 『그러면 신호해 주세요』라고 한 뒤 자살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金賢姬씨는 나중에 이때의 심정을 회고하기를 『김일성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혁명가로 값지게 죽는다고 생각하려 했으나 자꾸만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바레인 경찰관이 휴대품 검사와 몸수색을 받으라고 하면서 공안사무실로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다. 검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대합실 의자로 돌아와 경찰관의 감시를 받으면서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기하였다. 金勝一은 세븐스타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었다.

 金賢姬씨는 자신이 흡연자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독약 앰플을 깨물기가 쉽겠다고 판단하여 가방에서 가스라이터를 꺼내 이 담배 개비에 불을 붙여 물었다. 金勝一은 『나는 살만큼 살았기 때문에 괜찮지만 젊은 마유미상한테는 정말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金賢姬씨는 이것이 자살지시인 줄 알고 행동에 옮기려는 순간 경찰관이 가방을 달라고 했다. 金賢姬씨는 재빨리 가방 속에서 독약 앰플이 든 말보로 담배 갑을 꺼낸 뒤 가방만을 건네주었다.

 그 옆에 서서 이를 지켜보던 아람 하산이란 경찰관은 『그 담배도 달라』고 했다. 金賢姬씨는 독약 앰플이 든 담배 한 개비만을 꺼낸 다음 말보로 담배 갑만 건네주었다. 하산은 다시 『그 담배개비도 달라』고 했다. 金賢姬씨는 金勝一의 눈치를 보며 함께 앰플을 깨무는 타이밍을 맞추려고 주저하고 있는데 하산은 金賢姬씨가 쥐고 있던 담배개비마저 빼앗았다. 金賢姬씨는 반사적으로 경찰관의 손에서 담배개비를 낚아챘다. 담배개비가 반쯤 부러졌다.

 金賢姬씨가 그 담배개비를 깨무는 순간 하산이 덮쳤다. 완전히 깨물지는 못해 유리 앰플의 끝 부분만 깨어졌다. 청산액체는 기화되면서 金賢姬씨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金은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이때 무릎을 다쳤다. 경찰관은 담배개비를 빼앗았다. 그 사이 金勝一 은 앰플을 와작와작 깨물어 담배개비째 삼켜버렸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한 수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테러리스트에게, 잡히면 자살하라고 시키는 나라는 세계에서 북한뿐이다. 다른 조직에서는 잡히면 떳떳이 테러의 이유를 밝히도록 하여 선전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金日成 부자에게 누가 될까 싶어 자살을 지령하고 있는 것이다.』

 金賢姬씨가 生(생)의 미련을 갖고 있어 金勝一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앰플을 깨무는 척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안기부 수사관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었다. 먼저 앰플을 깨문 것은 金賢姬씨였고. 분명히 죽으려고 깨문 것인데 경찰관이 덮쳐서 생명을 구했다는 얘기였다. 金勝一은 아주 냉정한 프로였다. 앰플을 깨물고도 확실히 죽기 위해 헉하고 들여 마셔 파편이 食道가 아닌 氣道로 들어갔던 것이다.

 ※ 결론

 金賢姬씨는 『방송사들은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려하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나 말의 꼬투리를 잡아 의혹을 제기하여 사건의 내용 전체를 부정하려 했다』고 반박했다.

 金賢姬씨는 『내가 공작원으로서 해외실습을 했던 마카오의 거주지와 거주생활, 중국․광주의 거주지에 대해서 방송3사가 똑같이 간과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아시아의 가까운 곳을 두고 멀리 유럽과 중동지역에까지 가서 나의 행적을 취재하는데 많은 시간과 경비를 지불해야만 했다』고 비꼬았다. 金씨는 『방송사들은 어떤 사항에 대해, 사실과 일치하는 부분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하고 나서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의혹제기를 해야 하는데 일치하지 않는 부분만 부각시켜 나의 진술 전체를 거짓말로 몰았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金賢姬씨가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방송사들이 金씨의 증언을 뒷받침한 결정적 증거에 대해서 「한 결 같이 함구하고 외면했다」는 점이다. 金씨는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을 때 일본인으로 위장하기 위하여 일본어를 배웠다. 그 선생이 납치되어온 일본여자였다. 「리은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金賢姬가 「리은혜」에 대한 기억을 진술했고, 순전히 이 증언을 기초로 하여 일본 경찰이 독자적으로 조사를 벌인 끝에 「리은혜」는 실종된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임을 확정했다. 2002년 9월 김정일은 訪北한 고이즈미 일본 수상에게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명단을 공개했는데, 그 속에 다구치 야에코가 들어 있었다. 한국, 일본, 북한이 공조하여 金賢姬 진술의 진실성을 확인해준 셈이었다. 이것 하나로써 金賢姬가 북한공작원이 아니라는 주장은 무효가 된다. 그럼에도 방송에선 이 결정적 증거를 고의로 묵살했다는 것이 金賢姬씨를 분노케 한다.

 金賢姬가 북한공작원이란 또 다른 결정적 증거는 남한에서 『金賢姬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 『金賢姬가 옆집에 다녔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金賢姬가 완전 밀폐 공간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오지 않았다면(이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북한공작원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점들을 다 무시하고 金賢姬는 북한공작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력의 목적은 범인 김정일을 보호하고, 한국을 욕보이려는 데 있음은 自明하다.

 김현희씨는 『그들은 「김현희는 누구인가」라고 열심히 해외를 전전하며 저의 행적을 추적하여 취재했으면서도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은 나를 외계인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다. 북한에선 『김현희가 없다』라고 주장하고, 남한에선 김현희를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MBC의 주장대로라면 김현희는 정말 「외계인」이 되어버린다.(http://libertyherald.co.kr/)

김성욱(프리랜스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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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에는 그랬겠지요! 어쨌든 김정일의 천인공노할 행적을 옹호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진실은 밝혀집니다.진실을 왜곡한 MBC에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3-17 오후 4: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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