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共 명예회복, 재평가 돼야"
현대사 재조명 토론회에서 이주천 교수 역사학자로서 입장 밝혀
7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서울 용산구) 크리스탈룸에서 열린 ‘현대사 재조명’ 토론회에서 이주천(원광대 사학과) 교수는 이같이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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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천 교수는 한국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민주화 만개(滿開)에 따른 공권력의 붕괴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경찰이나 군대라는 공권력은 사회질서의 안전판인데 5.18이후 군대와 경찰이 민중의 적으로 인식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리하여 80년 국가의 혼란을 수습했던 전두환 장군을 위시한 신군부 인물들이 충신에서 내란을 일으킨 반란모의자가 되어서 평생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과정에서 얻었던 모든 훈장까지 박탈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얻었던 무공훈장까지 박탈했다. 그와 반대로 97년의 대법원은 5.18관련 무장시위대의 손을 들어줬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좌중은 여기저기서 박수로 호응했다.
이 교수는 “민주화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민주화로 위장한 좌경세력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좌파정부하에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정의가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민주화심의위가 제정한 ‘민주화 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1969년 8월 7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민주헌정 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라고 명시된 바를 제시하고, 이는 “‘반헌법적 사회주의’나 ‘주사파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주화운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장기지속적인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범주내에서 대중에게 참여를 권고하면서 여론을 불러일으켜서 정치권에 영향을 행사하려는 평화적인 운동”이라고 정의내렸다.
이 교수는 ▶공권력의 무너지는 과정과 좌파 운동권의 급성장 ▶남한소요사태와 북한 개입의혹과 테러 ▶정권교체이후 폭력불법시위와 국내외 테러사태에 관해 예를 들어 설명했고, “친북좌파의 발호와 준동은 공권력의 붕괴현상과 밀접하게 상호∙연관돼있다. 공권력이 확고한 시대에는 친북좌파가 설치지 못했다”며 무너진 공권력 회복을 위한 대응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좌중의 호응과 박수를 받았다.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엄정한 대처와 극렬좌익사범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
▶국가중추부에서 좌파인맥의 청산작업
▶MBC PD수첩 담당자들의 신속한 구속수감
▶시위진압 경찰과 전경에 대한 대우
▶대국민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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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대불총 이법철 지도법사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의 물결이 더욱 고조되는 좋은 세상이 오면, 광주사태는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사태 때 억울하게 죽은 시민군의 한도 크지만, 명령을 받고 진압군으로 출동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장병들의 한도 큰 것이다. 또 출동한 장병들이 민주화를 짓밟는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부의 명령을 받은 장병들이 역사의 죄인이 되고 그 주검은 개주검이 된다면 뉘라서 나라에 충성하겠는가!”라고 역설하면서 “5.18특별법은 국군을 짓밟는 모독의 법”이라며 조속히 재심되어야 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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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시스템클럽 대표) 박사는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제하 발제에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무효’이며, ‘5.18특별법’은 “공소시효를 무시하자는 초헌법적 위헌작품”이자 “정치적으로 밀어붙인 반헌법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지 박사는 그 근거로 “1980년에 정승화는 내란방조죄로 형을 받았는데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는 재심 절차로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승화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전두환 등에게 반란죄와 내란목적 살인죄를 선고했다”는 것을 들며, 이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한 것으로 법절차상 있을 수 없는 파행”이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5.18은 김대중이 최규하 과도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일으킨 내란음모였다는 1980년의 판결이 역사바로세우기 당시까지 유효한 상태에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부는 5.18을 전두환 등이 국권을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내란목적 살인 사건이라는 정 반대의 판결을 내놓은 것”은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음모사건이기도 하고 동시에 전두환이 일으킨 내란목적 살인사건”이기도 한, “법 세상이 엉터리 공사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라는 논리적 입증으로 좌중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한편, 탈북자군인회 임천용 회장은 5분 발언에서, 지난 2006년 12월 21일 기자회견 중 “북한군 1개 대대가 광주사태에 투입됐다”고 밝힌 내용을 언급하면서 “너무 뻔한 현실이자 사실이 왜 공론화돼지 못했나? 안타깝다”고 심정을 말했다.
또, 건국이념보급회 김효선 연구원은 “시민군이 언제 무장했는지가 광주사태의 바로미터”라면서, ▶당시 19일에 시민군이 벌인 전남 나주 경찰서 피습, 나주 예비군 대대 피습 사건 ▶독일 기자 힌츠 페터가 촬영한 광주사태 영상은 5월 20일에 찍은 것이라는 사실을 들며 ‘시민군 19일 무장설’을 제시해, “5월 21일에 진압군에 대한 자위의 수단으로 시민군이 무장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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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는 재향경우회(회장 구재태), 자유시민연대(대표 류기남),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회장 박희도, 이하 대불총)의 공동주최와 애국단체총협의회(상임대표 이상훈)의 후원으로 이뤄졌으며, 구재태(재향경우회) 회장의 인사말과 김현욱(국제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의 격려사는 500여 명의 참가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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