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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명 "동북아 안보 12년 전보다 더 악화"

한국국방안보포럼 기조연설서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9-05-15 오후 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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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로명(전 외무부장관)세종재단 이사장은 최근 북한의 우리 정부에 대한 긴장 조성 등 악의적인 발언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관망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대해 국내 일각에서도 정부자세를 비판하고 있는데 대해 "우리가 애걸한다고 북한이 대화의 마당으로 나오지는 않는다"며 "때가 되어야만 연시는 떨어지듯이 시간이 무르익어야 한다"고 말해 정중동의 자세로 의연하게 북한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konas.net

 공로명 이사장은 15일 오전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대표 김재창. 예비역 대장)과 고려대학교 임민국제관계연구원이 주최한 '북한 문제와 한·미 동맹'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공 이사장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일본이 핵 무장론과 미사일에 대응하는 공격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면서 "동북아에서 핵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만큼 중국이나 러시아의 보다 강력한 영향력 행사가 요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지난 2006년 군 원로와 예비역 장성, 전직 외교관과 경찰 총수, 지식인 이를 반대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주한미군 정책에 반대의사를 밝혀 군복을 벗은 싱글러브 장군 같은 장성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느냐며 우리 국민은 그를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15일 오전에 열린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공로명 이사장의 기조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konas.net

다음은 이 날 공로명 이사장의 기조연설문 전문임.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기 조 연 설


 김재창 장군, 김성한 박사, 랄프·코사 박사, 오공단 박사, 소에야 교수, 참석하신 발표자 및 토론자 여러분!

 오늘 북한 문제와 한미 동맹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포럼에 회의에 첫 발언자로 초청해 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발표자의 한분인 랄프·코사 박사와는 12년 전인 1997년 CSIS 퍼시픽 포럼과 이상우 박사가 주재하는 신아세아연구소((NARI), 그리고 일본의 오카자키 연구소의 3자가 공동으로 기획했던 '한반도 통일 후의 동북아 안보구조'에 관한 연구에 참가했던 일이 있습니다. 오공단 박사님도 그러한 연구과정에서 뵙고 이야기 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12년 전 그 때의 동북아시아의 안보환경과 지금의 환경을 생각해 볼 때 사태는 개선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었고, 심각해 졌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북한 붕괴론과 레짐·체인지론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던 1990년 대 후반에 한국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고 이어 햇볕정책이 채택됨에 따라 그 덕분에 1994년 김일성의 급서 이래 '고난의 행군'을 거듭해 왔던 북한은 숨 돌릴 여유와 시간을 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1999년 6월에는 제1차 연평해전을 벌렸고, 이 해전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하여 3년 후인 2002년 6월에는 남측함선을 기습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또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 노력을 외면한 채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2002년 핵동결 해제 선언,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선언, 2006년 7월 대포동 2호 발사, 같은해 10월 핵실험의 실시, 그리고 금년 4월의 대포동 3호의 발사실험을 강행하였습니다.

 이 미사일 발사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이사회가 의장성명으로 경고하자 유엔 안보리의 사과를 요구하고 6자회담을 보이콧하겠다고 할 뿐만 아니라 "서울은 군사경계선으로부터 50킬로밖에 안 된다"고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 공갈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미치광이의 작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33년 전인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느티나무 가지를 자르던 미군의 작업반을 북한군이 덮쳐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이렇게 벌박하게 몰고 갈까요.

 작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을 앓은 후 정권 승계 문제가 타산지석이 아닌 긴박한 문제로 그들에게 다가섰기 때문일까요. 오극렬과 김영춘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임명과 장성택의 국방위원회 위원 임명 등의 라인 앞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 같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긴박한 심정이 이런 강공의 드라이브로 모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10년, 20년이고 긴 앞을 내다보고 협상하는 것이 아니고 '2012년 강성대국을 완성하는 해'에 맞추어 판을 짜는 사람에게는 유장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 같이 협상에 의한 북한의 핵무기 폐기는 시작부터 아예 넘을 수 없는 목표인 것입니다. 북한이 최후의 보루로 삼는 핵무기를 내던지게 만들만한 포괄적 해결방법을 우리가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해결안에 쌍방이 합의해 나가기에는 신뢰라고 하는 커모디티(Commodity)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핵무기를 보유하였다고 선언하고, 우리에게 위협적인 스커드와 노동미사일 800발 이상을 실전 배치하고 유사시 남쪽후방에 침투시킬 특수전 18만 이상 보유하는 북한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지금의 상황이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2012년 3월에는 연합사의 전시작전 통제권이 한국군에 전환됨에 따라 한·미 연합사령부는 해체되고 작전계획 5027호는 사문화(사문화)되는 것 아닙니까? 작계 5027호에 의한 유사시의 미 본토 증원군 69만명, 5개 항모전단, 160여척의 함정, 2000여 대의 전투기 등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연합작전전력이 백지화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2006년 국방장관, 합참의장, 3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한 장성들이 반대 가두시위를 했고, 전직 외교관 160여 명이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전 경찰총수 26명, 중도보수 지식인 722명이 전작권 전환반대 성명을 밝힌 것이 아닙니까. 지난 4월23일 저희 세종연구소가 성우회와 공동으로 마련한 제20차 세종국가전략포럼에 8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백선엽 대장께서 아침 9시30분에 시작된 회의에 저녁 6시회의 종료시까지 자리를 지키시는 모습에 숙연해 짐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왜 우리나라의 국방장관이나 현역 장성중에서는 한 사람의 '싱글러브 장군'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1977년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미 지상군 전부를 빼겠다고 하니까 유엔군 참모장이던 존 싱글러브 소장은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혀 결국 군복을 벗었습니다. 우리 한국 국민은 두고두고 그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핵을 보유하는 북한에 대응하는 방법은 한미방위조약에 의거한 미국의 핵우산의 '확대된 억제력'에 의지하는 방법밖에 당장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 집중적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일은 한·미·일 3국의 긴밀한 협의화 협력을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를 얻어 북한의 핵무장 폐기를 흔들림 없이 추구하는 일입니다.

 한·미·일·중·러 이 5자간의 협력이 흔들리고 통일된 보조를 통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이 5자 가운데 비핵국가인 일본과 한국에서는 북한과 대칭되는 방어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필경 일어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가 중국이나 러시아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 궁금합니다.

 비핵평화국가로 일관해 왔던 일본에 있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현저해진  지난 5년 사이에 그렇게 타부시 되던 핵 무장론과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공격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메스미디어 등 언론에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북아에서 핵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 날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만큼 중국이나 러시아의 보다 강력한 영향력 행사가 요망됩니다.

 이명박 정부가 그 출범에 앞서 대북정책의 기조를 '비핵 개방 3000'에 둔다고 했을 때 북한은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고, 금강산관광을 온 중년 여성관광객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사죄하라고 하니까 이를 거부하고 개성공단 흔들기와 현대 아산 직원의 강제 구금 등으로 몽니를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되는 대화 촉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거부하는 자세를 취하자 우리 정부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의 하나'라고 하고 관망할 자세를 취하자, 우리 국내의 일각에서는 정부의 자세를 비판하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애걸한다고 북한이 대화의 마당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때가 되어야만 연시는 떨어지듯이 시간이 무르익어야 합니다.

 긍지가 있는 국격을 갖춘 나라라면 이제는 돈 5억불이다, 6억불이다 북한에 가져다 주며 대화하자고 하는 짓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통지문을 보내옵니다.

 16세기에 전란에 휩싸였던 일본을 통일하고 260년의 태평성대를 가져왔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은 두견새를 두고 "만약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고, 그의 경쟁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두견이 울지 않는다면 울도록 만들어라"고 함으로써 책략가의 기질을 보였으며, 이들 두 장수를 거느렸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두견이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의 포럼이 북한의 핵무장이 가져오는 충격파를 어떻게 막고 한미 양국간의 새로운 전략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투사되는 것도 중요하나 그보다 더 중차대한 것은 북한의 핵에 대응하는 문제를 숙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점을 제기하면서 저의 발언을 맺고자 합니다.

공로명(전 외무부장관, 세종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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