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공산주의
1991년 이탈리아의 한 항구에 1만여 명의 탈출자를 태운 알바니아 화물선이 도착했다. 공산정권의 붕괴 직전 조국 알바니아를 떠난 난민들이었다.
적십자 요원들이 굶주린 이들을 위해 구호활동을 시작했을 때, 배고픈 난민들이 빵과 우유를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아수라장을 벌이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 비참한 광경을 목도한 88살의 쥬디베아라는 한 힘없는 노인은 “내 손자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고 절규했다. 6년이 지난 1997년 4월 김일성대학 총장과 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황장엽 씨가 북경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후 서울로 들어온다.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공부하고 이른바 주체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확립한 북한 최고 지식인 중 한 사람이자 유력 정치인이었던 그의 망명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그는 1995년을 전후해 북한주민 300여만 명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시절 고급기술자 2000여 명도 굶주림으로 죽은 것을 확인한 후 비통한 심경으로 탈북을 결행했으며, 그의 여생 마지막 소명은 목숨을 걸고 수령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09년 4월 29일 미국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50대 탈북여성 방미선 씨가 다시는 북한 여성들이 자기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세계를 향해 간절히 호소한다. 그녀의 고난 역시 굶주림으로부터 시작됐다.
2002년 남편이 굶어 죽은 뒤 자식들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기 위해 탈북했으며, 그 이후 인신매매단에 걸려 짐승처럼 팔려 다녔다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어려운 과거를 슬프게 증언했다. 그녀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굶겨 죽이지 않기 위해 국경을 넘었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도 지킬 수 없었다.
오늘도 중국으로 러시아로 동남아로 유랑하는 수십만 탈북자들의 기약 없는 고통은 배고픈 공산주의의 마지막 잔영이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그들이 겪는 고난이 간간이 들려올 때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깊은 자괴감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다. 도대체 주의가 무엇이며 사상이 무엇인가. 사람에게 있어 밥은 하늘이고 생명이다.
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애당초 공산주의는 소수의 직업 혁명가들이 1당 독재체제를 영구화해 모든 재화를 탈취, 독점, 지배하기 위한 속임수의 과학이었다. 이것이 북한에 들어와서는 1당이 1인으로, 다시 부자세습으로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인 주체사상으로 변질돼 가는 동안 결국 수백만의 아사자를 낳았다.
지금 우리는 굶어 죽는 이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핵이요, 미사일 행진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북녘 땅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늘 우울하고 참담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에서 벌어지는 개성공단의 초코파이 같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 눈시울 뜨거운 동질감을 느낀다.
간식으로 주는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가난한 가족과 이웃을 위해 집으로 가져간다는, 저 아름답고 따뜻한 심성은 반세기 전 우리들의 어머니와 누이들의 모습이었다.배고픈 공산주의의 행로를 보며 개인의 운명과 나라의 운명이 결국 그가 살고 있는 체제와 직결됨을 다시 절감한다.(konas)
출처 : http://kookbang.dema.mil.kr/
이운세 (전쟁기념관 교육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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