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특집>“아버지, 이젠 외롭지 않죠”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아버지 묘소를 지키기 위해 2년 전 캐나다 생활 접고 한국에 정착한 '드메이' 씨
“한국 전쟁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결코 값싸지 않다(The Freedom is not Cheap)’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눈부신 6월의 햇살이 대지 위에 가득 내려 앉은 4일 오후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묘비. 파란 눈을 가진 은발의 신사가 공원 한가운데에 위치한 묘비 하나를 찾아 애틋하게 어루만진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아버지의이름을 부른다.
레오 드메이(Leo Demay·56). 캐나다 사람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아버지 묘소를 지키기 위해 2년 전 캐나다 생활을 접고 한국에 정착한, 우리네의 눈으로 봐도 참으로 대단한, 또 그래서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앙드레 아델라드 레짐발드 씨다. 군번 SG17653, 캐나다 로열 22연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2년 9월 5일 전사했다. 그 와중에 태어난 아들 드메이 씨는 생후 보름여 만에 다른 집으로 입양돼야 했다. 파병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와 약혼한 상태였다.
드메이 씨는 양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캐나다 서부 빅토리아 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러던 중 2006년 어느 날이었다. 그를 찾은 생모 엘렌으로부터 아버지 이름과, 그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캐나다 국회의사당과 문서보관소를 뒤지며 아버지 찾기에 나섰다. 마침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 4월에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아버지가 외로이 잠들어 있는 유엔기념공원에서 아버지 영전에 장미꽃 두 송이를 바쳤습니다. 판문점을 찾아 아버지가 전사한 ‘355고지’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저도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버지 묘소를 바로 곁에서 지키기 위해 2007년 11월에는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아예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그것도 아버지가 모셔진 유엔기념공원 인근의 한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도 서서히 한국인의 일원이 돼 갔다. 유엔기념공원 측은 그의 남다른 애국심과 가족애를 높이 사 지난해 8월 국제협력실장으로 채용했다.
“수많은 한국군과 유엔군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한국이 세계 글로벌 리더가 됐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2년간 군 복무를 하는 것은 분명히 인생에 있어 큰 희생입니다. 하지만 그 2년간의 희생이 있기에 지금의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면 그 희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께 문안을 드리는 그는 가족들과 헤어져 이역만리 한국 땅에 외로이 잠들어 있는 2300명의 또 다른 아버지께도 “굿모닝 젠틀맨(Good Morning Gentleman)” 인사를 꼬박꼬박 올린다.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 그들의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6월의 햇살이 더욱 눈부시게 다가온다. 드메이 씨의 사연을 다룬 6·25특집 다큐멘터리가 오는 25일 오후 1시 KBS-1을 통해 방송된다.
국방일보 김종원기자 kjw8619@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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