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차 핵실험, 왜 자꾸 이런 선택을 하는가?
북한의 이런 극단적 행태를 보면서 나쁘다고 하기 이전에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깊게 생각해 보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과거 북한의 행동들을 짚어보고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1953년 6.25전쟁이 끝나던 해 그때부터 북한은 소련과 원자력 기술을 교류하기 시작하며 핵개발에 들어간다 동시에 3세계 국가(특히 이라크)로부터 미사일 기술도 교류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의 목적이 노동당의 유지 보다는 남침을 염두에 두고 남한보다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련은 스탈린식 독재주의에서 서서히 벗어났고 심지어 붕괴되었으며, 남한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그를 통한 군사력 보강을 시작했고 반대로 북한 경제는 휴전 직후와는 달리 급격히 피폐해져 갔기 때문이다. 재래식 전력의 우세는 갈수록 동등해져 갔고 미래에는 역전될수도 있다는게 분명해 졌다.
그때부터 북한은 군사적으로 남한을 점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들도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갖춘뒤, 남한과 전쟁을 벌여 공산화 시키기 직전까지 가게 되었을때 미국이 최후의 수단으로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억지력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그런 억지력을 가지더라도 재래식 병력을 지원해줄 소련도 없고, 국제적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중국에게 선제도발을 일으킨 자신들의 전쟁에 대대적 군사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진 상황에서 미국과 유엔이 남한을 돕게 되면 이기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의 걸프전을 보면서 미국이 있는 한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을때 재래식 병력의 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을 것이다. 심지어 남한의 군사력도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했다.
|
그러던 와중 미국은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핵시설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압박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북한은 1993년 NPT를 탈퇴한다. 긴장이 고조되었지만 결국 미국과의 협상이 타결되고 북한은 식량지원, 경제제재 완화, KEDO를 통한 경수로 건설 등을 얻어낸다.
이같은 북한의 외교전술을 '벼랑끝 전술'이라 칭하는데 핵실험을 하고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한 북한은 마지막 벼랑끝 외교 카드를 제시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런 국제환경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외교적인 안보상황을 직시하고 국력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