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후퇴론이 노리는 것은?
지난 6월 3일부터 시작된 시국선언 릴레이 캠페인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에서 출발한 이 릴레이는 대학생, 종교인, 문예인, 전교조 교사, 전공노 공무원 등 각 분야로 돌림되었다. 이 릴레이는 처음에는 6월 10부터 시작된 운동권의 6월 공세의 워밍업 작업의 성격을 가졌으나, 그 6월 공세가 큰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서 운동권의 투쟁불씨를 유지하기 위한 지구전적 언어투쟁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각 분야의 운동권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시국선언의 핵심 내용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위기에 처했다’, ‘질식했다’는 보다 과격한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민주주의 후퇴론’은 6월 공세 기간 중 각종 집회에서 발표된 선언문과 결의문 등에서도 핵심적 내용의 하나로 거론되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정치지도자도 ‘민주주의 후퇴론’을 피력했다.
‘한국 민주주의 후퇴론’ 주장자들이 말하는 것을 종합해보면, 그들이 ‘민주주의 후퇴’라고 말하는 것은 △불법적 집회·시위에 대한 강력한 단속, △불법적 언론활동에 대한 수사, △불법적 노동자 파업에 대한 경찰의 해산노력,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에 대한 법집행 등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취해온 법률위반 행위에 대한 법집행을 ‘민주주의의 후퇴(또는 위기, 질식)’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이론에 입각해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자유민주주의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 따라 통치하고, 그러한 법률이 엄격하게 집행될 것을 요구하는 통치제도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 집행하고 있는 법률들은 모두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제정·개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유지되었던 법률들이다.
그런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이명박 정부가 각종 위법행위들에 대해 법률을 집행한 것을 두고 ‘민주주의 후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이론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위법행위들에 대한 법집행조치들은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이라 해야 옳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이론에 부합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후퇴’, 심지어는 ‘민주주의의 질식’이라고 거꾸로 말하는 사람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후퇴·질식했다고 말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전진·소생시키려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지지 않고 모든 집회와 시위, 모든 언론활동, 모든 파업, 모든 사상활동 등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된다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될까?
자기 방어력을 상실하여 머지않아 와해될 것이다. 짐꾼의 지게에 너무 많은 짐을 올려놓으면 짐꾼이 쓰러지고, 풍선에 바람을 너무 많이 불어넣으면 풍선이 터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든 정치·사회적 자유를 무제한 허용한 탓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와해되면 그 자리에는 다른 정치체제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시국선언 참여자들이 노리는 것이 이런 결과일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도 모든 정치적 자유를 무제한으로 완전하게 허용하고서는 존속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채택한 모든 국가들은 그 체제를 안정되게 존속시키기 위해 각국의 사정에 따라 법률에 의해 제반 정치·사회적 자유를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다른 정치체제로 변혁시키고자 하는 세력은 우선 자유민주주의가 원리상 보장하도록 되어 있는 정치적 자유의 허용 범위를 극대화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그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전개하는 그런 투쟁을 민주화투쟁(운동)이라고 부른다. 그 대표적 사례로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지도자 레닌의 혁명전술론을 들 수 있다.
레닌은 “우리는 현재로서는 완전한 정치적 자유, 민주공화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외에는 사회주의를 앞당길 다른 수단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 변혁이 완전하면 할수록 이 새로운 투쟁(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결정적인 투쟁) 더 빠르고 더 광범위하며 더욱 순수하고 더 단호하게 전개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보다 안정되게 정착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의 법집행을 ‘민주주의 후퇴(또는 위기, 질식)’라고 주장하는 시국선언 릴레이 기획자나 참여자들은 위에서 소개한 이치나, 레닌의 말 등을 알기나 하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알고도 모른 척하며 그런 시국선언 릴레이를 기획하거나 그에 참여한 것일까? 아니면, 아예 레닌의 교시를 이행하려는 생각에서 그런 행위를 한 것일까?(정론공방/http://blog.daum.net/pre-agora)
양동안(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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