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우파, 치열한 전선·전사 필요하다"
"동의대 사건, 경찰이 잔혹하게 불에 타 죽게된 사실 국민에게 알리게 된 것 기뻐"
지난 2월27일 국회 본청에서 1989년 부산 동의대 사태와 관련한 재심의 법안 발의로 민가협 회원에게 눈을 찔리는 등 폭력사태로 인해 약 3주간 입원치료를 받은 바 있는 전여옥(한나라당 의원, 영등포 갑)의원이 MBC를 비롯한 좌파 선동 방송과 좌파 시민단체를 향해 쓴 소리를 쏟았다.
전여옥 의원은 23일 오전 서울 뚝섬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박세직)에서 가진 특강에서 좌파세력들이 주장했던 이른바 "역사의 심판"과 관련해 "광우병 파동과 대통령 탄핵시 이들 좌파 방송은(균형적인 보도보다) 국민들의 울부짖는 모습만 비춰주는 반민주적이고 파시즘적인 행태를 보였다"며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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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의원은 이 날 재향군인회 본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한국 사회 속에서 정치인의 역할이 동의대에서 어떻게 짚어지고 우파가 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서, 본인은 "이번 동의대 사건으로 정치인으로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민가협 폭력사건 이후 그가 겪었던 우리 사회 좌파세력들의 끈질긴 투쟁심과 전략전술을 몸소 체득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었다.
전 의원은 강연 서두에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린 쓰레기나 한 겨울 길거리에 덮인 눈은 누군가가 치워야하고, 연탄재 등을 뿌려 제설작업 등이 이뤄지게 해야한다. (나는)그 일을 하는 사람이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국민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음에도 쓰레기는 그대로 방치되고, 눈은 치워지지 않아 자동차가 눈길에서 360도 회전해 미끄러지는 그런 과정을 지난 10년 동안 겪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지난 정권 기간 동안 파생되었던 사회적 문제점을 꼬집었다.
또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던 자신이 정치권에 나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국가로부터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남침을 북침으로 운운하면서 북한은 성공한 시스템으로 북을 섞어서 통일하자고 하고 있어 자동차 뒷자리에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사회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정치에 나오게 됐다"고 17대 국회 정치입문의 계기를 소개했다.
전 의원은 동의대 사태와 관련해,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서 이들 관련자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해 갈등요소가 나오면서 주목하게 되고, 당시 기자들의 취재 내용과 말을 인용해, "동의대 사건은 단순한 학내 부정사건으로 폭력적 사건인데, 이들이 민주화유공자 인가 생각하게 되었다"며 "이것은 무시무시한 폭력이고 너무 잔혹하게 나이 어린 경찰관들이 개죽음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유지를 위하다 죽음을 당했는데 개죽음이 말이 되느냐"며 "17대 국회에서는 살벌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또 용산철거민 사태와 관련해서는 "근본적으로 국가 질서유지를 경멸하고 공권력을 모멸하며 대한민국의 뿌리를 흔드는 것으로 결코 (경찰의)진압이 빠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 신속하게 집행된 경찰 진압에 대해 '잘못이다'고 소리를 높인 세력들을 겨냥했다.
이어 용산 철거민 진압작전 과정에서 이들 전철련 소속 시위대가 화염병을 제작해 던진데 대해서도 "화염병은 살상무기다. 다만 접근 방식이나 진압작전에서 부족한 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진압을 빨리 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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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사태 관련 법안 발의와 관련해서는 "민주화유공자는 민주화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는 칭호"라며 대법원에서 이미 6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실형을 선고한 사실을 상기하고는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초법적이고 탈법적인 민주화보상심의위를 만들어 이들에게 최하 2천5백 만원에서 1억원까지 보상하고 민주화유공자 칭호를 부여했다"며 (이로 인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가 온 동네에 메아리 쳤다"고 안타까운 마음도 전달했다.
전 의원은 당시 민가협 공동대표 이 모(여, 68세)씨로부터 테러를 당한 상황에 대해서도 발생순간부터 국회 응급실, 그리고 병원 입원치료와 이후 퇴원 후 꽃배달을 가장한 MBC의 무원칙한 인터뷰 등 언론 보도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국회에서 나오는데 누가 '야 이년아'하며 달려들면서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고 머리채를 낚아채며 '네 눈을 뽑아버리겠다' 는 등 지금까지 자신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욕설을 다 들어야 했다"며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전 의원은 민가협 회원으로부터 겪은 사건과 결부해 "치료를 받은 이후 이 사건을 통해 아는 것은 저들은 모든 전선이 구축되어 있고, 방송 또한 저의 침착한 모습만 찍으면서 아무렇지 않다면서 날조했다. 형사사건에 10명의 변호인을 내세우고 규탄대회까지 열기까지 했다. 저들은 이런 수법으로 누군가를 타켓으로 잡고 그 사람을 왜곡 선동으로 낙인찍어 무력화시킨다. 그런 수법으로 5년 내내 했다"며 이들 방송들이 앞서서 가해자에 대한 '선처'를 유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건의 파장과 관련해 "동의대 사건으로 경찰들이 잔혹하게 불에 타 죽게된 사실을 국민이 알고 그것을 알리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하고 "좌파들은 자신들이 불리할 때는 파렴치할 정도로 납작 엎드리는 급변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예를 들면서 "우리에게도 전선이 필요하다. 치열한 전사가 필요하고 아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여걸 투사 의원다운 강한 투쟁의지를 전했다.
전 의원은 또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문병 온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말을 빌려 "가공할 만한 폭력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같이 가장 가까운 형제의 목에 칼을 겨눈 거대한 폭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나머지 한쪽 눈을 잃더라도 끝까지 작은 주먹 꼭 쥐고 용감하고 과감하게 폭력에 대응하라고 했다"면서 "저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반드시 세울 것"이라고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심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음도 피력했다. 한동안은 수면제 없이는 잠도 이룰 수 없었고, 손을 들고 달려드는 꿈도 꾸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을 토로하고 "그러나 이겨냈다. 우리사회에 쓰레기와 길거리에 쌓인 폭설이 없어질 때까지 연탄재를 뿌리고 대단한 우리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 한몸 바치고자 한다"며 "이제는 혼자서 어디를 가도 두렵지 않다. 죽어도 좋다는 신념으로 정치를 한다"고 말해 그가 왜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소신에 찬 신념이 강한 정치인인가를 새삼 느끼게 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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