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제하 강연회 열려
유영익 교수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한국 현대사의 올바른 이해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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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협회(회장 홍순영)는 24일 한국외교협회(서울 방배동) 2층 대회의실에서 유영익 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를 초청해 ‘우남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을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유영익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인물됨과 업적을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중심으로 조명함으로써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한국 현대사의 올바른 이해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이날 강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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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는 ▶이승만은 어떠한 인물이었나?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건국했나?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의와 이승만의 공헌으로 구분하고, 역사적 사실관계를 인용하면서 그의 견해를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기 교육과정은 “서울 남산에 위치한 도동서당에서 전통교육을 받고 배재학당에서 영어와 신학문을 이수했고, 특히 옥중생활에서도 영어실력을 배양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는 등 바쁘게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박사는 미국 유학 5년 동안 조지 워싱턴大와 하버드, 프린스턴에서 3개 학위를 취득하고 남들 같으면 직장을 얻고 편하게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한국으로 들어와 기독교 교육에 전념하면서 서울YMCA학감을 맡아 2년여 성경, 국제법, 서양사를 가르쳤다”며 그가 받은 교육의 혜택을 사회로 헌신하고자 한, 우남의 기독교 교육자 및 교역자로서의 업적을 평가했다.
미국 하와이에서 우남은 ▶잡지를 발간하며 애국심을 고취하고 기독교 정신을 전파 ▶한인기독학원 학교 교장 ▶한인교회 선교부장으로 3가지에 중점을 두고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으며, 정치가로 전환하게 된 중요계기는 ‘3.1운동’이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3.1운동 발발 후 임시정부에서 우남을 최고지도자로 추대해 우남의 정치가로 전환하는 중요계기가 됐다”며 ‘정치가 우남’은 이 때부터 “문서외교를 통한 홍보활동을 주로 많이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이후 “이승만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벌이며 우익세력을 규합했으나, 1946년 2월에 김일성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 단독정부를 수립해 토지개혁, 대기업 국유화, 인민군 창군 등 강력한 국가적 권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을 실행해, 1946년 6월 3일에 이승만은 정읍(井邑)연설을 하며 남한 과도정부 수립 운동을 개시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유 교수는 “정부수립시 우남은 한국인들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총선대책위원회’를 발족했으며, 제헌국회의 모든 일정을 도맡아 추진할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 헌법에 상당히 신경을 썼고 굉장히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헌법학자 유진오라는 개인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형식(유진오)+내용(이승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한민국 헌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유 교수는 “이승만은 ▶미.소가 합의한 4대국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계획을 무산시키고 해방 후 3년 만에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UN의 권위를 빌어 평화적.합법적으로 그리고 명예스럽게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것은 이승만의 현실주의적 외교독립노선의 승리를 의미한다 ▶1946년 여름부터 추구한 남한 과도정부 수립노선은 1946년 초에 이미 북한에는 ‘사실상의’단독정권이 수립되고 미.소간 냉전이 격화되고 있던 상황에 비추어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승만이 주도해 자율적으로 건국한 대한민국은 남한 주민의 대다수가 참여하고, UNTCOK(유엔임시한국위원단)의 감시하에 실시된 총선거에 기초한 나라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대한민국을 건국함으로써 남한이 인류역사상 최단 시일내에 경제대국 내지 민주주의 국가로 부상, 국민 대다수가 ‘단군 이래 초유’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기초를 확립했다”며 학자적 입장에서 분석한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의와 이승만의 공헌’을 강조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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