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주었나?
미국.벨기에.콜롬비아 한국전 참전용사 특별좌담
6·25전쟁이 일어난 지 59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피흘렸던 해외 참전용사들의 상흔과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
한 번도 들어보지도 알지도 못한 나라 대한민국,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역만리 타국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해외 용사들.
21개 참전과 의료지원국 중 미국·벨기에·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이 지난 22일부터 국가보훈처·재향군인회 초청으로 그들이 싸웠던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들에게 6·25전쟁은 과연 어떤 의미이고, 지금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각국 방한단 대표들로부터 자세히 들어봤다. 6·25전쟁 기간 해외 참전용사들은 모두 194만 명이며, 이 중 4만896명이 이 땅의 자유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미국 월리엄 맥 스웨인 씨와 콜롬비아 라울 마르티네스 씨, 벨기에 레이몽 베어(왼쪽부터) 씨가 23일 용산전쟁기념관 유엔참전국 전사자 명비 앞에서 전우들의 이름을 찾고 있다.>
사회=6·25전쟁에 어떻게 참전했나?
레이몽 베어=11살 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너무나도 어린 나에게 전쟁의 고통과 끔찍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전쟁이 뭔지, 그리고 그 전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 것인지 알았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지원했다. 그 당시 20살 군사학교 2학년을 마친 시기였다. 1952년 11월 2일부터 53년 12월까지 부사관으로 싸웠다.
라울 마르티네스=1951년 5월 21일 콜롬비아에서 아이 캔 빅토리호를 타고 출발해 하와이를 거쳐 6월 16일 부산으로 들어왔다. 그 배에는 1068명 육군 보병대대 병력이 타고 있었다. 22살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구나 나는 직업군인인 소위였다.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한국의 친구로 왔다.
윌리엄 맥 스웨인=그 당시 상사로서 소대 선임 부사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5살 고등학교를 다닐 때 돈을 벌기 위해 국가방위군에 지원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나자 병력이 모자라 40사단·45사단이 소집 동원됐다. 대학 2학년을 시작 못하고 19살 나이로 한국전쟁에 왔다.
한국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자유를 침범당한 한국을 돕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을 돕는 것은 나의 조국 미국을 돕는 것이기도 했다.
사회=그 당시 6·25전쟁의 상황은?
베어=가장 치열했던 철의 삼각지와 김화지구, 임진강 전투에서 싸웠다. 52년은 상대적으로 전쟁이 소강상태였다. 하지만 53년 판문점에서 38선을 긋기 위한 협상이 시작되면서 중공군의 대공세가 무시무시했다. 그중에서도 4월 8일 하룻밤 동안 중공군이 3500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영국 글로스터부대와 함께 임진강 설마리 전투에서 싸웠는데 참 많은 전사자가 나왔다. 또 강원 철원 학당리 전투에서는 같은 부대에 배속돼 벨기에 군복을 입고 함께 싸웠던 한국군 9명과 룩셈부르크군 2명, 그리고 벨기에군 106명이 눈앞에서 전사했다. 그때 350명이나 부상당했다.
특히 55일 동안 밤낮으로 싸웠던 김화 잣골지역은 지금도 생생하다. 너무 많은 전우가 숨졌다. 한국전쟁에 벨기에군은 3172명이 참전했다. 28개월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그 당시 한국군은 투혼이 대단했고 정말로 굉장했다.
마르티네스=김화 40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웠다. 왼쪽에는 한국군, 가운데는 콜롬비아군, 오른쪽에는 미군이 있었다. 중공군에 수류탄을 던져 죽이고 생포했다. 전쟁터는 아비규환 그 자체다. 잔혹하게 피를 흘리고 시체가 썩고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콜롬비아군은 한국전쟁에 5100명이 참전했다. 나도 전투 후유증으로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린다.
스웨인=철원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화력 장비와 무기를 지원하고 있었다. 24시간 6주 동안 못 먹고, 못 입고, 쥐·모기와 함께 자기도 했다. 50년 9월부터 52년 6월까지 수없이 많은 전우가 죽어 가는 것을 봤다.
사회=전쟁은 과연 무엇인가?
스웨인=전쟁은 지옥이다(The War is Hell). 전쟁은 그 어떤 판타지나 영화, 재미가 아니다. 방금 함께했던 동료가 죽는 것은 정말로 참혹하다.
베어=전쟁은 정말로 미친 짓이다(The War is Craze). 모든 인간에게 너무나도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 슬픔을 준다. 방금 함께 얘기를 나누던 절친한 동료며 친구가 5분 후 눈앞에서 죽는다고 생각해 봐라.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고통받는다. 가족은 갈기갈기 찢기고 해체된다. 또한 전쟁은 사람이다. 전쟁은 비열하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쁘다.
마르티네스=인간이 전쟁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왔느냐?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나쁜 짓이냐? 이게 과연 정당하냐? 그런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전쟁이란 이름 아래 남북한 사람들이 그 얼마나 죽었느냐. 남과 북이 모두 파괴됐다. 전쟁이 나면 모두가 공멸하는 것이다. 그만큼 튼튼한 안보와 함께하는 평화가 소중한 것이다.
사회=6·25전쟁 당시와 지금의 한국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베어=한국에 10차례 가까이 왔다. 53년 한국을 떠났을 때는 잿더미의 폐허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경제대국을 이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면서 눈부신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쟁 당시 서울의 다리는 하나였지만 지금은 20개가 넘는다.
마르티네스=그 당시 서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다 파괴되고 사람도 없고, 오직 쥐와 벌레들만 들끓었다. 휴전 후 1984년 처음으로 한국에 왔었다. 엄청나게 발전한 모습에 너무나도 놀랐다. 우리의 희생이 지금도 값지게 다가온다. 우리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고 눈부신 발전에 기여했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다.
스웨인=2007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왔다. 짧은 2년 동안에도 많이 변했다. 처음 한국을 봤을 때 한국은 아무것도 없었다(The Korea was nothing). 지금은 그 당시 한국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짧은 기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이룩했다. 이젠 한국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이 이룩한 업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참전용사 또한 한국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 준 것에 대해 한없는 자부심을 느낀다.
사회=전쟁은 군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영향을 끼친다.
베어=전쟁 당시 정말로 헐벗고 가난했다. 추운 한겨울 어느 날 부산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눈밭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C-레이션(비상전투식량)을 구걸하고 있었다. 부모를 잃고 씻지도 못하고 굶주림에 먹을 것을 구걸하는 전쟁 고아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사회=참전용사들이 피흘려 싸웠던 전쟁이 끝나고 거의 60년이 됐지만 아직도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된 채 대립과 긴장이 감돌고 있다.
마르티네스=이젠 남북이 통일이 돼야 한다. 아직도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이 이산가족으로 서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가톨릭 국가인 콜롬비아는 대가족과 친인척들이 함께 모여 가족중심으로 살아간다. 가족에 대한 의미가 그 무엇보다 각별하다. 그래서 이산가족으로 아직도 떨어져 산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이것은 안 된다. 정치적으로 갈등이 있어도 일단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대화가 안 되고 단절되는 것이 문제다. 남북이 설사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서로 대화하고 합의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스웨인=우리는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왔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한국은 많은 것을 이뤘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도 굶주림에 죽고 모든 것을 군비에 쏟아 붓고 있다. 북한은 독재국가이며, 독재국가는 독재가 끝나지 않을 때까지 항상 전쟁 중이라고 본다. 그래서 긴장감이 돈다. 진짜 긴장 상태다. 더더욱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사회=한국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베어=한국인들은 대단하다. 해외 참전용사들을 거리에서 보면 경례하고 손을 흔들며 환영한다. 오직 한국인만 그렇다. 미국이나 유럽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유럽을 위해 싸웠지만 결코 유럽인들은 미국을 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감사할 줄 안다. 한국군과 함께 싸우면서 우리는 스스럼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정을 나눴다. 다른 나라 군인들과는 느끼지 못한 진한 전우애를 느꼈다.
마르티네스=한국전쟁을 통해 전우애를 배웠다. 모래알 같은 개인들이 모여 오직 한국을 위해 모두 하나가 됐다. 전쟁 와중에 끈끈한 전우애를 절감했다. 참전용사들에게 한국은 제2의 조국이다. 한국전쟁을 통해 콜롬비아 육군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전보다 현대적으로 변했고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한국전쟁에 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분명히 얻어간 것이 있었다.
사회=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모른다. 6·25전쟁도 잊힌 전쟁이 돼 가고 있다.
스웨인=젊은 세대들은 항상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 어떠한 독재국가도 자기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국가를 오랫동안 통치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결국 독재국가들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하고 그에 따라 자유가 점점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미국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한 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싸웠다. 그러지 않으면 자유도 잃고 우리들의 삶도 잃게 된다.
베어=유럽에서 전쟁의 고통을 알았기 때문에 참전했다. 공산주의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왔다. ‘더럽고 독약 같은’ 공산주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왔다. 단순히 한국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왔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어디든지 갔을 것이다. 그리고 가야 하고 가서 싸워야 했다. 우리는 오직 사람을 위해 싸웠다. 그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정치를 모른다. 우리는 폭력과 무력, 전쟁과 싸워야 한다. 사람이 나쁘기 때문에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이란 단어를 지울 수도 없다. 하지만 전쟁으로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전쟁은 만개한 꽃의 뿌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 전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사랑하라, 그리고 전쟁을 하지 말라’(Make love, No War).
사회=참전했던 수많은 용사가 외롭게 세상을 뜨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젠 그들에게 한국인들이 보은(報恩)과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스웨인=지금도 한국 정부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100만 명쯤 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미 매우 고마워했고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있다. 한국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재방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에 정말로 감사드린다.
미국 현지에서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해마다 보은행사를 열어 주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너무 과분한 감사에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21개국 참전국가 용사들을 다시 한국으로 초청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자유를 지키고 한국인들은 그 기회를 잘 잡았다.
우리가 지켜 준 자유를 잘 지키고 발전시켰다. 한국인들은 자유를 누릴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아직도 소중한 전우들이 남북한 산하 어디엔가 외로이 묻혀 있거나 실종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르티네스=우호적인 말로 감사를 표하는 것도 좋다. 경제적인 지원이 아닌 한국과 콜롬비아 간에 실질적인 경제협력이 유지되고 증진됐으면 한다. 콜롬비아에는 참전용사 병원이 있고, 특히 ‘파운데이션 콜롬보 삼성’이라는 삼성재단 장학금이 있다. 이런 것이 좋은 본보기 같다.
정확한 수효는 모르지만 현재 5100명 한국전 참전용사 중 대략 2000여 명 정도가 생존해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재방한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매우 감동적이고 더욱 좋아지는 것 같다. 또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올 때마다 한국인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가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더욱 자부심을 많이 느낀다.
베어=정확한 수효는 모르겠지만 대략 한국전쟁 참전 용사 중 대략 1200~1300명 정도가 살아 있는 것 같다. 모든 벨기에인들은 한국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벨기에 참전용사들에게는 한국이 제2의 조국이자 고향이다.
사회=해외 참전용사로서 한국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르티네스=누가 공산주의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줬는지 기억해 줬으면 한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부강해졌다. 하지만 콜롬비아·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들이 한국을 구해줬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자유를 누리고 있다. 다시는 전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 자유를 잘 지켜 나가야 한다. 한국인들은 애국심도 강하다.
베어=이젠 남한이 북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북한 군인들은 배고픔에 굶주려 남쪽으로 많이 항복해 내려 왔다. 한국군은 그렇지 않았다. 동서독이 통일이 된 후 그 주도권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서독이 쥐고 있다. 빵과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 주민과 그 정권의 의지는 서로 다를 것이다.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사기와 정신력, 투혼을 바랄 수는 없다. 정신력과 사기, 모든 면에서 한국이 그 우위를 갖고 있다. 잘사는 남한이 좀 더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
스웨인=한국전쟁에서 3만3000여 미군이 희생됐다. 우리는 한국군과 함께 전투를 수행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만약 한국군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매우 건강하고 좋다. 이젠 수많은 미국인이 한국제품을 사고, 한국인들도 미국제품을 산다. 이것은 서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모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뭔가 그들을 위해 해 줄 말이 있을 것이다. 한미가 지금처럼 서로 돕고 존중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갔으면 한다.
아래는 재향군인회 초청 6.25 59주년 기념 재방한 사업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특별좌담에 참석한 참석용사 3명의 프로필이다.
월리엄 맥 스웨인(79·미국 대표), 1950년 9월~52년 6월 참전, 육군 상사로 미 육군 45사단 179연대·미1기병사단 배속, 강원 철원전투 참전, 대통령 표창 등 유공, 현재 미국 한국전쟁 참전 협회장.
라울 마르티네스(83·콜롬비아 대표), 1951년 6월~52년 11월, 육군 소위로 미 육군24사단·7사단 배속, 금성·김화전투 참전, 콜롬비아 군사공병학교 출신, 콜롬비아 6여단장, 정보참모부장, 예비역 장군 출신.
레이몽 베어(76·벨기에 대표), 1952년 11월~53년 12월, 육군 부사관으로 미 육군 24사단 배속, 철원·김화전투 참전, 레이든대 상업경제·경영학 전공, 현재 벨기에 한국참전협회 림버그 지역회장.
자료편집 코나스 정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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