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치 떨리는 국가인권委 僞善(위선)의 8年史

통일 뒤 북한동포에게, 우리는 이라크, 버마 인권을 외쳤지만, 당신들의 자유는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변명할 생각인가?

Written by. 金成昱   입력 : 2009-07-23 오전 8:48:19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2001년 11월25일 출범한 국가인권委원회(인권委)는 지난 해 233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인권委 상근직원은 201명으로 인건비는 111억 원을 썼다. 1인 평균 연봉 5500만 원 꼴이다.
 
  권력이 저지른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은 북한정권에 의한 폭압일 것이다. 북한은 성경을 읽거나 예배를 드리는 경우, 굶주림에 몰려 식량을 훔치고, 전선을 끊어 파는 경우까지 「公開處刑(공개처형)」 대상이다. 남한의 영화·드라마 비디오를 팔다가 걸렸다는 이유로, 남한방송을 듣고 남한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간다.
 
  북한정권의 인권유린에 대한 觀心(관심)은 단순한 「인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상 국민인 북한 동포에 대한 反국가단체 북한 정권의 폭압으로서, 참혹한 현상의 개선은 「헌법상 의무」이다.
 
  인권委는 설립 이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려왔다. 인권委가 노력해 온 것은 한국 사회 좌파적 담론의 실천이었다. 2003년 주요인권 과제 중 첫 번째로 국가보안법 개폐를 들고 나섰고 2004년 8월23일 국보법폐지 권고안을 발표했다. 2005년 12월26일에는 소위 「집총거부(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라고 정부 각 부처에 권고안을 전달했다. 같은 해 11월28일에는 「공무원노조 합법화」권고안을 발표했다.
 
  2003년 3월1일 주한美대사관 정문 앞에서 벌어진 1인 反美(반미)시위를 저지한 서울 종로경찰서장에게 인권교육을 시키도록 권고했다. 2003년 7월14일에는 6·25 당시 사망한 좌익·빨치산 출신들을 추모하는 소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관련 통합특별법」 제정에 관해 의견을 표명했다. 2005년 3월25일에는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평가가 아동인권을 침해한다고 권고했다.
 
  인권委가 심혈을 기울여 온 또 다른 영역은 「同性愛者(동성애자) 보호」였다.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동성애자를 公採(공채)한 데 이어 2003년 4월2일 『同性愛(동성애) 사이트는 유해하지 않다』며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유해매체 심의기준에서 同性愛(동성애)항목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인권委는 2006년 1월9일 이상의 내용을 정리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National Action Plan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권고안」을 발표했다.
 
  <北「아리랑」관람 자제 권고안, 채택 안 돼>
 
  좌파정권 아래서 인권委는 북한인권을 철저히 외면했다. 2006년 NAP권고안에서도 탈북민을 「새터민」으로 부르며 정착을 위한 지원 등을 권고했지만, 북한주민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05년 10월11일 상임위원 중 한명인 김호준 前문화일보 편집국장은 북한 노동당 창건 60주년 기념 「아리랑」공연의 관람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자고 제안했으나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당시 金위원은 『화려한 공연의 이면에는 참가 학생들의 피눈물 나는 고통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공연에 참여했던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동원된 학생들은 휴식 시간도 없이 몇 시간씩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어야 하고 심지어 소변도 마음대로 볼 수 없다고 한다』고 했다.
 
  金위원은 「아리랑」 공연 관람을 위한 수많은 남측 인사들의 방북은 결국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傍助(방조)·助長(조장)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자제하자는 성명을 채택하자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개총살형 선고받은 손정남氏 외면>
 
  2006년 4월 탈북자 손정훈氏는 자신의 형 정남氏를 구해달라고 인권委에 陳情書(진정서)를 냈다. 정남氏는 탈북 해 중국에서 기독교를 접한 뒤 북한으로 자진해 돌아갔으나, 「민족반역자」로 지목돼 공개총살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동생 정훈氏는 『형은 단지 인생의 좌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성경책을 읽은 죄 밖에 없다』며 눈물겨운 救命(구명)활동을 벌였다.
 
  정훈氏의 노력으로 톰 랜토스 美하원 외교위원장은 정남氏의 석방을 호소하는 서한을 金正日에게 보냈고, 미국 상원의원들도 반기문 UN사무총장과 콘돌리자 라이스 美국무장관에게 구명 촉구 서한을 발송했다. 2006년 6월에는 유럽의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정남氏의 생사확인 및 사형집행 중지를 촉구했다.
 
  인권委는 그러나 정훈氏의 진정서 제출에 대해 『인권委의 조사영역에서 벗어난다』고 이를 각하했다.
 
  2007년 10월 평양 盧武鉉·金正日 회담을 앞두고, 인권委 안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의제로 채택할 수 있도록 정부에 권고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전원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참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못해 결국 기각됐다.
 
 
  <북한인권 외면하며, 이라크 인권은 주장>
 
  인권委의 북한인권 외면의 이유는 『북한 주민은 내국인이 아니다』는 것이다. 2006년 12월 11일 안경환 인권委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지만 국제법상으로 볼 때 북한은 엄연히 국적을 지닌 타국』이라며, 인권委의 조사 대상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인권委는 그 근거로 국가인권委원회法 제4조에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적용한다』는 규정을 들었다.
 
  인권委의 이 같은 주장은 欺瞞(기만)과 억지였다. 북한은 대한민국 실효 지배권이 아니라고 외면했으면서도, 이라크, 버마에 대해서는 마치 실효 지배권이 있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委는 2003년 3월26일 『국가인권委원회는 이라크 민간인의 무차별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전쟁이 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이라크전 파병반대 성명을 냈었다. 당시 수도권 공병부대의 참전거부를 선동하는 『反인권적 범죄를 저지를 경우 軍명령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戰犯(전범)으로 처벌 받은 사례가 있다』는 참여연대의 促求文(촉구문)에는 『민변과 인권委에 연락하면 된다』는 문구가 적혔다.
 
  안경환 국가인권委원장은 2007년 9월 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태지역 국가인권委원회 연석회의에서 「버마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경찰이 일부러 고립시켜 폭력시위 유발...증거는 없지만』>
 
  인권委의 인권활동은 좌익세력의 불법, 폭력, 깽판을 보호하는데 집중돼왔다. 지난 해 촛불난동은 그 決定版(결정판)이었다. 2008년 5월 MBC의 광우병 왜곡방송과 친북좌익의 주도로 촛불난동이 벌어지자, 같은 해 10월 조사관 6명을 동원해 80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시위 참가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경찰에 대한 警告(경고)조치와 懲戒(징계)조치를 권고했다. 不法폭동이 100일 넘게 계속됐던 사실에 대해선 눈 감은 편향적 비판이었다.
 
  지난 해 6월29일 새벽 서울기동대 50중대, 306중대 150명은 수천 명의 시위대에 의해 고립됐다. 시위대는 웅크리고 앉은 전경들 주위로 밧줄을 둘러놓고 3~4명씩 끌어내 두들겨 팼다. 이곳에서만 전경 7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군중의 魔性(마성)과 소수의 恐怖(공포)를 더 이상 생생히 보여줄 수 없는 인권유린의 장면이었다.
 
  인권委는 그러나 같은 보고서에서 「경찰이 일부러 두들겨 맞은 것 아니냐」고 덮어씌웠다. 『지난 6월29일 새벽 광화문 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의도적으로 소수 전경 부대원을 격앙된 시위대 한가운데로 투입, 폭력시위를 유발하는 작전을 펼쳤을 개연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켜) 정국 反轉(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경찰이...폭력시위를 유발하는 작전을 펼쳤을 蓋然性(개연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증거도 없이 자기들 멋대로 상상한 내용을 報告書(보고서)라고 작성한 것이다.
 
  <시위대의 인권폭력엔 『조사할 수 없다』 결론>
 
  인권委가 보호하려 한 것은 오직 깽판세력의 인권이었다. 촛불亂動(난동)이 100일 넘게 계속되면서 暴徒化(폭도화)된 시위대는 전·의경들에게 쇠파이프, 아시바, 망치, 삽 등 온갖 흉기를 휘둘렀고, 시너를 뿌리고 鹽酸(염산)통을 집어던졌다. 이로 인해 7월 초까지 500명이 넘는 전·의경이 부상당했고, 300명 이상이 입원했다. 경찰병원 6, 7층은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을 앓는 전·의경들로 여름 내내 빈 매트리스가 없었다. 그러나 인권委는 촛불집단이 저지른 인권폭력은 「공권력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아니므로」 조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직 국가경찰을 범죄집단으로 만드는 데만 집중됐던 것이다. 중앙대 김영봉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권委는 그들이 보호해야 할 인권과 짓밟아도 될 인권을 뚜렷이 구분해왔다. 폭력시위대, 전교조, 반미친북자, 기타 공권력·법질서·국가안보·국가정체성을 공격하는 집단은 보호할 인권이고, 경찰, 상인, 일반시민, 북한동포, 보안법, 국정원 등은 유린되어도 좋을 인권대상이다. 인권委는 동의대에서 경찰을 불태워 죽인 자들은 포상권고 했고 그리해서 불타 죽은 영혼과 가족들의 인권을 짓밟았다.』
 
  <금강산 피격 살해 사건에도 침묵>
 
  인권委는 북한정권의 남한국민 인권침해에도 침묵했다. 지난 해 11월10일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살해 사건과 관련, 『북한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을 할 것을 북한에 권고해 달라』며 제기한 진정을 각하했다. 이번에는 『이번 진정은 국가인권委원회법 제32조(진정의 각하) 1항 7호와 3호에 의해 인권委가 처리할 수 없는 사건에 해당한다』고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인권委法 관련 규정은 「진정이 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나 「피해자가 아닌 자가 한 진정에 있어서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 진정을 각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인권委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의 경우 피해자 가족이 조사를 원하지 않아 조사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역시 기만적이었다. 이라크, 버마는 피해자 가족이 조사를 원했던가? 촛불난동의 깽판세력도 마찬가지였나?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금강산 사건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인권委가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국가기관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므로 앞으로 대북 전단을 계속 보내 직접 북한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인권委의 문제제기는 일관된 理念的(이념적) 코드가 흐른다. 2008년 8월21일 『경찰은 국보법 위반 피의자들의 접견권을 보장해야 하며, 통일부의 訪北(방북) 확약서 요구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결정이나, 같은 해 ()월28일 육·해·공군사관학교의 전통인 「3금(三禁·금연, 금주, 금혼) 제도」는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방부 장관에게 관행 개선을 권고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동성애 보호에 대한 열정의 약간만이라도...>
 
  인권委가 同性愛(동성애) 보호에 대한 熱情(열정)의 약간만이라도 북한 인권에 돌렸다면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실제 인권委는 지난 5년 간 同性愛(동성애) 관련 단체에 1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국회 및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동성애자인권연대」는 4차례에 걸쳐 3343만원을 지급받았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각각 1700만원과 1600만원을 2차례에 걸쳐 지원받았다.
 
  진보네트워크가 『인권의식 개선을 위한 대중적 교재 개발』 등의 명목으로 지원받은 1600만원까지 합친다면, 인권委의 동성애 관련 단체 지원은 5년간 1억1천230만원에 이른다. 진보네트워크는 한국동성애자연합, 동성애자인권연대, 버디후원회 등 각종 동성애 단체를 포함해 한국 내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700여개의 좌파 단체들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업체이다.
 
  <인권委, 국민 血稅로 동성애 옹호 영화 제작>
 
  정권교체 이후인 지난 해 3월에는 同性愛를 옹호하는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했다. 인권委가 기획·제작한 「별별이야기2」라는 애니메이션은 6개의 각기 다른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가장 긴 러닝 타임의 6번째 꼭지인 「거짓말」은 남성, 여성 동성애 커플이 부모를 속이고 위장결혼을 해야 하는 부조리(?)를 다뤘다. 이 애니메이션은 순정만화를 연상케 하는 美男(미남) 美女(미녀)를 등장시켜 청소년들로 하여금 同性愛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시민단체인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 지난 해 작성해 발표한 「동성애 조장 및 옹호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별별이야기의 작품별 평균 제작비는 4~5억 정도』라고 지적했다. 「별별이야기2」는 지난 해 3월 인권委가 기획·제작해 개봉됐고, 같은 해 7월, 9월에는 각각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제11회 강릉인권영화제」등에서 상영됐다.
 
  <假飾的(가식적)인 북한인권 개선노력>
 
  盧武鉉 정권이 끝나자, 인권委는 북한인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관심은 미온적이고 인색한 수준이었다.
 
  정권교체 직후인 2008년 2월19일 인권委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활동 강화」를 6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인권委는 전날 발표한 「2008년 주요 업무 계획」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방향에서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국내외 동향을 분석하고 정책과제로 도출하고자 한다』며 『탈북자 관련 인권 정책뿐 아니라 국군포로 및 납북자 등의 인권 문제로 외연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보편적 국제인권 규범에 근거하여 북한 인권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인권자료실에 북한 인권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委는 같은 해 3월25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탈북자가 생활하고 있는 해외 現地調査(현지조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1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북한의 拷問實態(고문실태)를 조사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이듬 해 3월 인권委는 1년 전 약속을 이행(?)했다. 탈북자 152명을 대상으로 「북한 주민 인권 실태조사」를 시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공개처형을 직접 봤다」는 응답이 93명(76%)으로 집계됐다고 등의 초보적인 설문조사 결과였다.
 
  인권委는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舊聞(구문)도 新聞(신문)인양 발표했다.
 
  식량 배급을 묻는 질문에 46%가 「배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응답했고, 「기일도 배급량도 지켜지지 않았다」(39%), 「기일은 지켜졌지만 배급량이 줄었다」(10%)는 등 내용이 골자였다.
 
  「굶어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이나, 「북한에 있을 당시 의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했노라 내세웠다.
 
  인권委는 2008년 5월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 「북한인권 포럼」을 개최했다. 그러나 人的(인적)구성은 가관이었다. 북한정권을 비호하며 對北(대북)지원에 앞장서 온 인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당시 인권委가 발표한 명단은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김동균 법무법인 다산 대표 변호사,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등이었다.
 
  인권委의 활동 중 약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지난 해 8월 나온 「중국 내 탈북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對정부 권고였다. 인권委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의 무조건적인 강제송환을 중단하고 UN난민협약 등 국제법규에 따라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하라」고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권고했었다. 인권委가 특정 정부 부처에 탈북자 인권 개선을 위한 조처를 권고한 것은 처음이었다.
 
  인권委의 북한인권 관련 활동에 대해 북한인권 전문가들은 코웃음 친다. 보수정권 아래서 조직을 살리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인권委는 「慘狀(참상)」이라는 어휘로도 담기 어려운 북한의 현실에 본질적 지적을 피해왔다.
 
  <소시지 받아먹는 북한주민들>
 
  金日成·金正日이 60년 간 통치한 북한의 오늘은 끔찍한 지옥의 모습이다. 조선일보의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에선 중국 사람들이 압록강 복판에 있는 북한 섬에 배를 타고 다가가 소시지를 던져주고 북한 주민들은 그걸 받아먹는 것을 구경하는 게 1인당 200위안(약 2만8500원)짜리 관광코스가 돼 버린 기막힌 일을 전해주고 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註 : 이들을 탈북자라 부른다)은 국경을 넘는다. 脫北(탈북)은 북한에서 가장 큰 반역죄에 해당한다. 짐승처럼 유랑하는 탈북자들은 중국 내 15만~30만 명에 달하며 여성의 비율은 60~70%에 이른다. 충격적인 것은 탈북여성의 80% 이상은 인신매매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북한 당국은 20~30대 행방불명 여성이 1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는데, 대부분 중국에 팔려온 것이란 분석도 있다.
 
  탈북여성들은 산간벽지, 유흥가 등으로 팔려 다니며 강제결혼, 性폭행, 원치 않는 임신, 각종 부인과 질병에 시달린다. 결혼을 해도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구타, 북한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움, 不法체류신고 협박 및 체포 그리고 「强制送還(강제송환)」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어느 날 들이닥친 중국 공안은 탈북자들을 잡아가고, 북한 당국은 변방의 구류장으로 끌고 간다. 변방의 구류장에서 수많은 탈북자들은 지금도 「뽐쁘질」·「통닭고문」·「비둘기고문」 등 저주스런 고문으로 죽어간다. 만일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강제송환되면 「강제낙태」·「영아살해」라는 유린을 당해야 한다.
 
  단순탈북자는 대체로 6개월 이하 노역에 처해지지만, 기독교를 접했거나 한국행이 명백한 사람은 악명 높은 「政治犯收容所(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 최근 탈북자 처벌이 강화되면서 단순탈북자도 웬만하면 정치범으로 처리되고 있다.
 
  「公開處刑(공개처형)」은 정치범수용소의 일상사다. 영하20도에서 얼려 죽이는 형벌, 총으로 뇌수를 때려죽이는 형벌, 오줌으로 전신을 목욕시키는 형벌,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쇠줄로 코를 꿰고 발뒤축에 대못을 박는 형벌, 목 동맥을 잘라 생매장하는 형벌까지 저질러진다.
 
  옥수수 한 그릇·소금 한 숟갈로 15시간 중노동과 채찍을 견뎌야 하는 곳, 십자가에 달린 채 화형을 당하거나, 증기롤러 밑에 깔려 숨을 거두는 곳. 도주하던 친구의 공개처형 된 주검 위로 돌을 던져야 목숨을 부지하는 곳.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苦痛(고통)이고 恥辱(치욕)인 곳. 그곳이 요덕이고, 회령이고, 개천이다. 아니 북한 전역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나치의 유태인수용소보다 몇 곱절 더 악질적이라고 말한다. 국제인권단체들은 1960년 대 이래 100만 명이상이 정치범수용소에서 학살됐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국가인권委의 국가보안법폐지론자 List>
 
  인권委의 편향적 활동의 배경엔 좌파성향 위원들이 있다. 인권委는 현재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의 상임 또는 非상임위원 중 6명이 공개적으로 국보법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나머지 위원들의 국보법 廢止(폐지) 또는 存置(존치) 주장 여부는 확인돼있지 않다.
 
  ▲ 안경환 위원장
 
  안경환 위원장은 2008년 10월2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인권委위원회 창립 15주년 기념식 격려사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늘진 곳이 많다. 사형제도가 여전히 법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국가보안법 폐지나 대체복무제도 도입 등 유엔의 권고사항도 이행되고 있지 않다』며 사실상 국보법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1월22일 조선일보 대담에서도 『유엔 인권委원회도 보안법의 폐지 또는 독소조항 개정을 권고하고 있다』며 『우리가 국제 수준으로 가기 위해 언젠가 받아들여야 부분』이라고 말했다.
 
  安위원장은 2000년 7월21일 1472명의 전국교수들이 참여한 「反민주적 위헌악법 국가보안법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는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성명은 『6.15 정상선언을 통해, 이미 북한은 反국가단체가 아닌 것으로. 그 만큼 국가보안법은 존립할 가치도 없으며, 존립해서도 안 되는 악법』이라며 『국보법은 부분적으로 개정되거나 대체 입법되기보다는 완벽하게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재근 위원
 
  인권委 위원인 정재근(법명 법안)씨는 現職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천승가회) 의장이며, 실천승가회는 99년 9월 「국보법반대국민연대」등에 참여해 국보법폐지를 주장해왔다.
 
  정재근 위원은 2006년 2월28일 소위 종교단체 대표자 발표문을 통해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정비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특히 『남측의 국가보안법을 들어 남측이 헌법과 법률에 남아있는 냉전적 요소들을 정비하는 일에 먼저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천승가회는 또 98년 6월 「비전향장기수후원회」, 2001년 3월 친북(親北)단체인 「통일연대」, 2005년 2월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汎국민대책위원회(평택범대위)」등에 참여했었다.
 
  실천승가회는 2005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라는 이름의 간첩·빨치산 묘역(墓域)을 조성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묘역의 비석엔 남파간첩을 『의사(義士)』, 빨치산출신을 『애국통일열사』로 표현하며 『애국통일열사 정순덕 선생. 마지막 빨치산 영원한 여성전사...』등의 비문(碑文)을 새겨 넣었었다.
 
  ▲ 최경숙 위원
 
  인권委 최경숙 위원은 부산여성장애인연대 대표 출신으로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라크파병 반대 등을 주장해왔다.
 
  그는 2004년 10월6일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부산女性선언자대회」를 주도했다.
 
  崔위원이 낭독한 선언문은 『국가보안법은 지난 56년간 냉전과 분단의 상징으로, 역대 독재자들은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을 이용하여 국민의 사상·양심·학문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했다』며 『우리 부산지역 여성들은 부분개정론, 대체입법론, 폐지 후 형법개정론 모두 반대』한 뒤 『국가보안법의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崔위원은 2003년 10월9일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여성 1000인 평화선언」에 참가했고, 같은 해 11월13일에는 「부산지역 이라크 파병결정 철회 300인 선언」에 참가했다.
 
  後者는 『미국의 추가파병요구가 침략전쟁에의 동참을 강요하는 파렴치한 전쟁공모행위이자, 불평등한 韓美관계를 활용하여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려는 추악한 내정간섭행위임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황덕남 위원
 
  ▲ 유남영·윤기원 위원
 
  인권委 유남영 위원과 윤기원 위원은 모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民辯)」 간부출신이다.
 
  民辯은 「국보법폐지국민연대」,「평택범대위」 등에 참여해 국보법폐지 등을 주장해왔다.
 
  民辯은 송두율 구속 당시 『제2, 제3의 송두율 교수와 같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과 검찰 공안부를 폐지하여야 한다.(2004.7.21. 성명 中)』는 등 비호했었다.
 
  ▲ 조국 위원
 
  인권委 조국 위원은 「국보법폐지촉구全國교수1000人선언(2004.10.27)」을 비롯해 한총련 구속자 석방 등을 주장했던 「양심수석방300人선언(2002.8.10),「송두율석방시민사회1000人선언(2003.10.23)」등에 참여해왔다.
 
  趙위원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2000~2002),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2002~2005), 민보상委 자문위원(2000~2001),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여연대 역시 「국보법폐지국민연대」, 「평택범대위」 등에 참여해 국보법폐지 등을 주장해왔다.
 
  ▲ 김칠준 사무총장
 
  인권委 사무총장인 김칠준氏는 경기복지시민연대 공동대표,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참여연대 역시 「국보법폐지국민연대」, 「평택범대위」 등에 참여해 국보법폐지 등을 주장해왔다.
 
  金사무총장은 2004년 12월12일 서울 경희대에서 「부시·블레어·노무현 등의 이라크전쟁범죄와 파병에 대한 민중법정」의 소위 기소대리인으로 나섰다.
 
  당시 그는 『부시, 블레어에게는 전쟁범죄의 책임,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공범의 책임이 있다』며 『소멸시효배제를 선언하는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반드시 피고인들의 생이 다하기 전에는 집행할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 황덕남 위원
 
  인권委 위원인 황덕남씨는 2003년 2월부터 2003월 8월까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으로 재직하며, 노무현氏의 법률자문을 담당했었다. 그는 유남영, 조국 위원과 함께 2007년 대선 직후인 12월23일 임명됐다. 황덕남 위원의 국보법폐지 찬성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날이 오면 무어라 답할 것인가?>
 
  서독은 1961년부터 통일까지 30년간 「동독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를 운영해 동독의 인권침해 사례 4만1390건을 조사했다. 동독은 서독 정부에 기록보존소 폐쇄를 요구하면서 기록보존소 종사자들을 형사 처벌하겠다는 법까지 만들어 기록보존소 사람들은 동독의 위협 때문에 해외여행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독은 압력에 굴하지 않았고 기록보존소 활동은 동독 정치인들에 대한 무언의 경고와 압력이 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권委의 지난 8년간 활동을 요약하면, 공권력에 대한 嘲弄(조롱)과 공권력을 파괴하는 깽판세력에 대한 擁護(옹호)였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지만, 정작 인권이라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未수복지역 북한의 동포는 외면했다.
 
  從北(종북)주의자들의 退行的(퇴행적)이고 守舊的(수구적)인 북한정권 지키기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북한정권은 멸망할 것이다. 아우슈비츠보다 끔찍한 정치범수용소도 무너질 것이고, 강제송환과 공개처형과 같은 지옥의 群舞(군무)도 멈춰질 것이다. 3만8천 개의 金日成 동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그날이 오면, 배부르고 기름지게 살아 온 남한의 국민들은 2200만 북한의 동포들에게 무어라 말해줄 것인가? 이라크, 버마 인권을 외쳤지만, 당신들의 자유는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변명할 생각인가?(http://www.chogabje.com/)

金成昱(무한전진 대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