指導者의 死生觀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하여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뜻있는 사람은 죽음의 시간과 장소와 방법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지닌다. 이를 사생관(死生觀)이라 한다.
생사관(生死觀)이라 말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사람의 출생은 본인과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삶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인생을 가장 보람 있게 마무리 짓기 위한 죽음을 중요시 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요,
다른 하나는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뜻이 확대재생산성(擴大再生産性)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관한 것은 춘추경(春秋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춘추경은 공자(孔子:BC551-497:73歲 卒)께서 71세 때 저술한 것으로서 노(魯)나라 은공(隱公) 元年으로부터 애공(哀公)14년까지 12代 王 242년에 亘한 편년사(編年史)를 말하다,
춘추경의 대지(大旨)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해명하였다는데 있다.
춘추경은 공양고(公羊高)에 의해 주석된 것을 春秋公羊傳이라 하고,
곡양적(穀梁赤)에 의해 주석된 것을 春秋穀梁傳이라 하며,
좌구명(左丘明)에 의하여 주석된 것을 春秋左傳이라 한다.
이 3가지 주석전(註釋傳)을 일컬어 춘추삼전(春秋三傳)이라 한다.
孔子는 말하기를 殺我者도 春秋요, 生我者도 春秋라 했다.
즉 나를 죽게 하는 것도 춘추요, 나를 살게 하는 것도 춘추라는 뜻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나를 죽게 하는 것도 大義名分이요,
나를 살게 하는 것도 大義名分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春秋左傳에 이런 말이 나온다.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나라의 안위(安危)문제를 잊지 말고(臨患不忘國), 어려운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맡은바 직책에 성실하여 월권하려 들지 말고(思難不越官), 나라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느냐 죽느냐하는 것을 잊어라(圖國忘死). 그 길이 충(忠)과 신(信)과 정(貞)을 다하는 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가치기준을 바탕으로 하여 관찰하면 도적놈들의 모습이 훤하게 보인다고 여곤(呂坤)의 신음어(呻吟語)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나무 잎 하나만 봐도 그 나무가 살 수 있는 나무인지 죽을 나무인지 알 수 있듯이(觀日葉 知樹之生死),
일 처리하는 것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마음이 바로 서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觀一事 知心之邪正).
뿐만 아니라 말을 옳게 하는 것 같은데 행동으로 사람을 속인다면 이는 말의 도적놈이라 했다(言如是而行欺之 言之盜也).
마음 쓰임새는 옳은 것 같은데 입으로 사람을 속인다면 이는 마음의 도적놈이라 했다(心如是而口欺之 心之盜也).
그리고 마음속에 털끝만치라도 사람을 속이거나, 한 가지 일이라도 사람을 속이거나, 말 한마디라도 사람을 속이고 있다면 이는 발각되지 안했을 뿐인 도적놈이라 했다(心有一毫欺人, 一事欺人, 一語欺人, 人雖不知, 卽未發覺之盜也).
지난 5월 23일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제16대 대통령을 역임한 노무현씨의 投身自殺 事件이었다.
春秋經의 論法에 따르면 그의 投身自殺이 지니는 大義名分이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 꼬리를 이어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殺我者도 春秋라고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의 죽음이 지니는 大義名分이 무엇인지 定義를 내려주는 이가 아직은 없다.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죽음에 대하여 이명박 대통령은 責任을 지고 謝過하라고 외쳐대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이지 의문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國民葬은 대통령을 위시한 온 국민의 명의로 거행한 葬禮이었는데, 사과를 받을 사람이 누구이며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가리려하는 것은 도리어 국민장의 의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규모의 순위는 세계적으로 12위라고 하지만 국가 브랜드 指數는 33위라고 한다,
그 이유는 호감도(好感度)와 신뢰도(信賴度)와 직결되는 바, 自肅할 필요가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일부 대학의 소수 교수들은 謝過문제 뿐만 아니라 民主主義가 후퇴된 것을 복원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것이 과연 교수다운 집단의사의 표현으로서 적절하다고 봐야 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후퇴되고 있다면 어느 수준을 기점으로 해서 하는 말인가?
만약 기준 없이 떠들어대는 말이라면 이는 선동에 불과하다.
이 또한 구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는 33위 이하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국가 브랜드 하강요인이 교수진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정말 自肅해야할 일이 아닐 수 없다.(konas)
恒山 金 裕 赫 /전 금강대학교 총장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