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찾아 반평생 울산 이춘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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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찾아 반평생 울산 이춘걸씨
울산지역의 한 보훈단체 회장이 반평생을 지역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어 화제다. 울산 병영3.1독립만세운동유족회의 이춘걸(77. 사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회장은 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울산의 3.1운동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앞으로 여생도 독립유공자를 찾는데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기자가 좀 웃는 모습으로 찍으면 사진이 더 좋을 것이라고 권했지만 끝까지 무표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독립유공자의 명예와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울산지역의 한 보훈단체 회장이 반평생을 지역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어 화제다. 울산 병영3.1독립만세운동유족회의 이춘걸(77)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병영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서울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한 달 뒤인 4월4일과 5일 울산시 중구 병영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다. 언양3.1독립만세운동(4월2일), 남창3.1독립만세운동(4월8일)과 함께 울산의 3대 독립만세운동으로 꼽힌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이 회장의 부친과 삼촌이 병영3.1독립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나선 고 이종근, 이종룡 선생이다. 울산지역에서 유일하게 형제가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이 회장 역시 형 이춘해씨와 함께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이기도 해 2대에 이르는 국가유공자 집안이다.
이 회장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으로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른 아버지 고 이종근 선생의 독립유공자 공적 입증자료를 찾지 못하다가 1977년 우연한 기회에 관련 기록을 힘겹게 찾아내 아버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안겨 드렸다.
그는 일제 시대 옥고를 치른 아버지의 공적 입증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독립유공자임을 입증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법원에 근무하던 친구의 조언으로 행정기관에 보관돼 있던 일제 치하 당시의 수형자 또는 범죄인 명부를 확인, 국가보훈처에 입증자료로 낼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수형자 명부로 아버지의 공적 입증자료를 찾아냈던 방법으로 이후 울산의 3대 3.1독립만세운동인 병영, 언양, 남창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다른 독립유공자를 확인하는데도 팔을 걷었다.
그는 "똑같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유족이나 후손이 없어 독립유공자로서의 명예나 영광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나름대로 노하우로 조그마한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노력 끝에 지역의 3대 3.1독립만세운동 과정에서 일경에 체포된 61명 가운데 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17명의 독립유공자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들 모두 정부 포상을 받았다.
이 회장은 "공적 입증자료뿐 아니라 제적등본, 공적서, 독립유공자 평생이력서 등 정부에 제출해야 할 자료가 적지 않고 이를 확인한 뒤 정부로 최종적으로 인정받는데 많은 난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병영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26명의 경우 2007년 모두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게 됐는데 여기에는 그의 공이 컸다.
이 회장이 공적 입증자료를 찾아내 정부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로는 울산 출신의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동생인 고 최현구(1898∼1941) 선생이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은 올해 또다시 5명의 독립유공자와 관련된 공적 입증자료를 추가로 찾아내 정부에 포상을 신청한 상태다.
그는 '병영3.1운동', '내고향 울산', '울산3.1운동 90년사', '병영청년회와 3.1운동' 등 다수의 도서와 논설, 칼럼을 발표하는 등 울산의 3.1독립만세운동 정신을 알리는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이 회장은 12일 "살아있는 동안은 울산의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해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분들을 계속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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