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90년 전 오늘(1919. 9.2) 남대문 역(현 서울역)에서 일본 제국주의 치하 새로운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 부부에게 폭탄을 던져 일제는 물론, 3·1독립만세 운동 후 일제의 강압 등으로 다소 침체에 빠져 있던 국내 독립운동에 기름을 끼얹으며 한민족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치게 한 왈우(曰愚) 강우규 의사의 의거 90주년 기념식이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안중근·윤봉길 의사와 더불어 독립운동 3의사로 일컬어지고 있는 강우규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것은 정확히 90년 전인 9월2일 오후 5시 지금의 서울역 회현 고가 도로 아래에서다.
▲ 2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강우규 의사 의거 90주년 기념식. 이 날 기념식에서는 강 의사의 애국정신을 후대에 까지 길이 이어나가자고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편 강 의사 기념사업회는 내년 강 의사 동상을 서울역에 건립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konas.net | |
그 날 오후 5시 당시 해군대장이었던 사이토 총독은 인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 그를 환영 나온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손을 들어 화답하고 마차로 향하던 중 군중 속에서 그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당시 65세의 강우규 의사가 튀어나오며 사이토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사이토 총독은 운 좋게도 그가 차고 있던 칼과 혁대에만 파편을 맞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환영 나온 일본 관료 등 37명이 부상을 입고 이후 2명은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 기념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konas.net | |
2일 오전 10시 그가 의거를 일으켰던 서울역 광장에서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강인섭)와 동아일보사 공동으로 기념식이 열렸다. 이 날 기념식에는 김학준 동아일보사 회장을 비롯, 강 의사 동상건립에 힘써운 김중위 전 환경부장관과 이병구 서울보훈지청장, 남만수 광복회 부회장, 그리고 평안북도 도지사를 위시한 강 의사 출신지역인 평남 덕천군민회 대표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돼 강 의사의 구국의 애국혼을 기렸다.
그런데 강우규 의사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것은 지난 달 25일 그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학술세미나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의사의 출생지가 평안북도(덕천군)인데다 유일한 후손인 손녀마저 지난 1985년 세상을 떠난 이유도 있었다. 그러다 그의 의거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점은 의거 당시 강 의사의 나이가 65세로 당시로서는 대단히 고령에 해당하는 나이였다는 점이다.
이 날 기념식에서 강인섭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후손으로서 동상하나 제대로 건립하지 못해오다 이번 90주년을 맞아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동상건립을 위한 모든 사업계획이 완료되고 예산까지 확보해 의거 당시의 자리에 폭탄을 투척하는 모습의 역동적인 표현으로 동상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konas.net | |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은 기념사에서 강 의사의 구국을 향한 나라사랑정신과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불굴의 민족정신, 그리고 애국혼을 우리들이 이어 받고 후손에게도 길이 물려주자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강 의사님의 아호인 '왈우'에서 느껴지듯이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생각했기에 일제에게 보내는 경고장을 보내는 역사적 의의를 깨닫게 된다"며 "자기 스스로를 현명하고 뛰어나며, 잘났다고 하는 오만함을 가진 인물은 역사에서 큰일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아호를 들어 겸손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김 회장은, 그 스스로도 어리석고 무지함을 깨닫게 된다며 "서울역 광장에서 기세 등등하게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는 의사님의 독립의 혼이 일제는 물론 전 세계에 알리는 장소였음에도 평소 이를 잊고 지내왔다"고 말하고 "우리는 의사님과 같은 선열들의 애국정신으로 말미암아 지금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룸으로써 (세계의)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예측하지 못해 방침하고 자만하면 새로운 국난은 오게 마련"이라며 "국난을 회피하고 대한민국에 의한 민족의 평화통일 성업을 위해서도 위대한 애국정신은 결코 잊어서는 안되고 후대에도 의사님의 유지를 보내 물질적 풍요와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미래 세대에 대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병구 서울보훈지청장도 "의사님의 강인한 민족정신을 기리고 그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자랑스런 국가를 후손에게 물려주자"며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듯이 위대한 창조의 역사를 위해 힘을 쏟아 나가자"고 말했다.
김영일 광복회장은 광복회 남 부회장이 대신 낭독한 기념사에서 "의사님은 위대한 우리시대의 선각자였다"며 "세월이 흘러도 의사님의 애국정신을 가슴에 새겨 젊은이들에게는 애국혼을, 지도층에게는 사회통합의 기회가 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우규 의사는 1859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 한학과 한방의술을 익혔고 근대화의 요구에 부응해 개화사상을 수용, 기독교에 입교한 근대 지성이다.
한방의술을 바탕으로 인술을 베풀고 재산을 모아 사립학교와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1910년 경술국치가 있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1915년부터 길림성 요하현에 한인동포들을 모아 신흥동이라는 신한촌을 건설하고 동광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시기에는 신흥동에서 만세시위를 펼쳤고 연해주로 건너가 대한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대한노인동맹단에 가입 요하현 지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19년 9월2일 서울역에서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결행했으나 총독 암살은 무위에 그쳤다.
이후 한인 순사에게 붙잡혀(스스로 자수했다는 내용도 있음)1920년 11월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1962년 의사의 위업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 이 날 기념식에 앞서 열린 강 의거를 재연한 퍼포먼스. 사이토 총독과 그 부인이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서울역 귀빈실에서 나오고 있다. ⓒkonas.net | |
▲ 강우규 의사가 사이토 총독 부부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있다. ⓒkonas.net | |
▲ 폭탄이 던져지자 놀란 사이토 부부와 일 관헌들. ⓒkonas.net | |
▲ 취조하는 일본인 순사에게 당당하게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강 의사. ⓒkonas.net | |
▲ "단두대에 홀로 서니 춘풍이 감도는 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조선 청년에게 나라위해 일심전력 힘을 키우라고 연설하는 강우규 의사. | |
▲ 평상시 흰색 두루마기 그 차림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의열투쟁으로 일생을 살다 돌아가신 강우규 의사. ⓒkonas.net | |
▲ 이 날 기념식에서 색동예술단 어린이 회원들이 '반달'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konas.net | |
▲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만세삼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