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대화’ 기대 반 우려 반
6자 복귀시키는 회담 되어야..당사자인 한국, 명확한 전략을
미국과 북한 간에 조만간 양자대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미 국무부는 양국 간 대화 방식과 시간, 장소 등이 2주 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고,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미국 측 대화 창구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미국 정부 구상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의 기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로서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차관보는 미북 양자 대화가 6자회담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것이 미국의 정책 변화는 아니라고 못박았다. 만일 미북 양자대화를 통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게 된다면 우리 입장에서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크다. 그간 우리가 경험한 북한의 행태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이고, 오바마 행정부가 갈수록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 외교적 업적 때문에 설익은 타협책을 모색할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점이 또 다른 이유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처음에는 미북 양자대화 불가론에서 잠시 후 6자회담 틀 안에서의 양자대화를 언급하더니, 이제는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양자회담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입장을 완화시켜 왔다. 만일 내년 중간선거까지도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외교적 성과를 위해 좀 더 큰 양보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미북 양자대화를 보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미북 양자대화를 통해 북한이 반드시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다는 합의가 북한을 제외한 5자 가운데 확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미북 대화를 하고서도 북한이 6자회담에 이런저런 이유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의도가 결국은 미북 직접대화의 외교적 효과만을 노린 속임수라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그럴 경우 5자는 북한을 압박하는 공동의 목소리를 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둘째, 미북 양자대화에 이은 6자회담 재개가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라 논의의 시작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북한과의 협상이 부진한 탓에 상황이 악화된 후 유화적으로 나오면 그것을 문제 해결의 진전이라고 생각하는 착시현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그것은 사태 진전이 아니라 중단됐던 비핵화 프로세스의 재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6자회담 재개에 대비해 우리 정부가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명확한 전략을 가져야 한다. 제네바합의의 뼈아픈 교훈 중 하나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서도 북핵 문제에서 조연급 위치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돈만 내고 할 말을 못하는’ 협상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외교적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미북 양자대화 이후 사태 전개는 북한의 선택에 달렸다. 만일 북한이 미국의 양자대화 수용을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주저없이 이를 받아들여 6자회담으로 나와야 한다. 북한이 현재의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의 대외정책 때문에 그동안 유지했던 강경한 입장을 갑자기 바꾸기 어려웠다면 조만간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으로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멍석이 깔리게 될 것이다. 북한은 그것을 밟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면 된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미국과만 대화하고 6자회담에 안 나오는 경우에는 나머지 5자의 대북 압박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 초기에 성급한 강수를 연거푸 둠으로써 미북 관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미북 양자대화로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주는 것처럼 6자회담에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명한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이상현(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 9.15일자 세계일보 시론으로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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