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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사랑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지요"

Written by. 권오식   입력 : 2009-10-17 오전 8: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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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는 소중한 우리의 영토입니다. 지하자원의 보고이며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독도를 지켜야 합니다.”

 국내 최초의 여군이었던 문인순 씨(76).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군인 정신을 바탕으로 독도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독도 수호대에 가입하여 독도 지킴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뿐만 아니라 독도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할 정도다. 그는 휴대폰 컬러링에도 독도 사랑을 담고 있으며 시간이 될 때마다 자식들과 손자에게도 독도의 현실을 얘기한다.

 “독도를 한번쯤 가보기를 추천합니다. 독도는 살아있는 역사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독도의용수비대와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의 활동상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지요. 말로만 외치는 독도 수호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는 특히 독도 수호대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울릉도·독도 탐방 행사에 가장 애착을 갖는다. 비록 자주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진행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화로 일일이 체크한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국민들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은 실천과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6·25전쟁 때 입대해

 그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6·25전쟁이 나자 1950년 8월 30일 해병대에 입대했다. 당시 제주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의 나이는 열일곱. 징집 연령은 아니었지만 ‘학도호국단 간부는 모두 해병대에 가라’는 체육교사의 말에 해병대 4기로 입대했다.

 입대 후 해군에 인계되어 진해신병훈련소에서 해군 군번 91073을 받고 훈련에 임했다. 해군본부라고 하지만 판잣집에 불과했다. 여군들의 내무실은 부두에 정박된 배 앞의 삼각방 3단 침대였다. 그는 총검술과 사격 등 성인 남자와 똑같이 훈련을 받았다. 징집된 여성 126명과 함께였다. 훈련 후 문 씨는 해군본부 인사국에 발령되었다.

 “인사국에서는 장병들 복무기록카드 작성에 바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장이 호전되어 묵호(동해시)경비부가 상륙했던 적이 있었지요. 저는 묵호 근무를 희망했지만 여군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1951년 5월에 퇴역한 그는 고향인 제주에 돌아왔다. 당시 제우여중에는 국방부 조병창이 주둔해 있어 학생들은 소나무 밑에서 천막을 치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복학하여 그 해 7월에 졸업을 하였다. 졸업 후 잠깐 회사도 다니다가 양재를 배워 양장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양장점을 운영할 때 청소년 학교에서 양재지도를 겸하기도 했다. 그때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으며 1996년부터는 제주방어사령부 장병들을 위해 군복을 수리하는 일도 했다.

 “당시 군복수리를 많이 하였습니다. 군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렇게 보람될 수 없었습니다. 봉사하러 가면 꼭 장병들과 같이 사병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것은 큰 즐거움이었어요.”

 그는 2001년에는 독도 수호대에 가입했다. 그러면서 독도 탐방 행사나 독도경비대 위문 방문 등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또한 2002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인 시위에 83번째 시위자로 나섰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과서 수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더운 날씨에 군복을 입고 시위를 하였습니다. 땀이 머리부터 등을 타고 내려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독도지킴이 활동에 대한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독도 수호대원이 되어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고령에다 제주에 살기 때문에 다른 회원들처럼 여러 차례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아쉬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독도수호대의 제주지점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독도수호대 제주 행사가 있을 때에는 항상 자신이 주도적으로 준비를 도운다. 2005년에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해 자전거 대장정과 100만인서명운동을 제주에서 한 적이 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서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도 해

 특히 2008년에는 제주도내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김점구 대표의 독도 특강과 제주국제공항에서 열린 ‘우리 땅, 독도 수호 특별전’의 행사 준비에 도움을 줬다. 아직도 김점구 대표가 독도수호대 활동에 조언을 구할 정도로 그의 독도 사랑은 각별하다.

 “제가 어떻게 보면 고문 아닌 고문 격이에요. 김점구씨가 제주도로 강연을 하러 오면 제가 식사도 대접하고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기도 해요.”

 현재 독도 수호대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은 2천 5백명이지만 후원금을 내고 있는 회원은 불과 150명에 불과하다. 독도수호대가 활발하게 활동하려면 보다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문 씨. 백발이 성성한 나이지만 독도 사랑의 마음과 열정은 여느 젊은이 못지 않다.

 오래 전부터 그의 꿈은 글쓰기였다. 오랫동안의 노력 끝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 2002년 서울 문학에 시로 등단하여 시집 <짧고도 긴 세월>을 출간한 것이다.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시간이 나면 뭔가를 쓰는 버릇이 있었어요. 다행히 등단해 시를 제대로 쓸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글솜씨이지만 책도 냈습니다.”

 2007년에는 수필로도 등단하여 작년 8월에 수필집도 출간했다. 지금도 시상이 떠오르면 한밤중이라도 일어나 시를 쓴다. 그동안 쓴 시만 대학노트 6권 분량에 달한다. 이것을 엮어 계속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군대를 다녀오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건전해지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굳건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슬하에 다섯 명의 딸을 두었다.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남편과는 80세에 사별했지만 그동안 여러 질환과 수술 과정을 거쳐 현재 건강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글을 쓰고 여러 활동을 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군 생활의 덕분이라고.

 “제가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인정신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복무 경험 덕에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지요. 그래서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 입대를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는 앞으로 글쓰기와 독도지킴이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정부에 서운한 마음을 들어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만은 늘 변함없다고 강조한다.

 “앞으로는 오로지 독도지킴이와 글 쓰는 일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독도수호대의 경제적 사정이 어렵습니다. 정부에서는 조금이라고 지원하여 준다면 좋겠어요.”

 국민들이 말로만 ‘독도는 우리땅’을 외칠 것이 아니라 독도의 역사를 바르게 알기를 바란다는 문인순씨. 국민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독도수호대에 적극 지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그녀의 마음이다.(월간자유 10월호)

 권오식(M&W 기자, 월간 자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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