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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체 구축 3대 장애물 있다"

동아시아세계의 아이덴티티와 다양성 국제학술회의..지리적 장벽, 역사적 장벽, 정체성장벽이란 3대 장애물 해결해야 공동체의식 키울 수 있어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09-11-06 오후 10: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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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사연구포럼과 동북아역사재단은 6일부터 7일까지 이틀간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역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세계’의 아이덴티티와 다양성’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학계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들이 참가한 이번 학술회의는 ‘동아시아’를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려는 논의를 정면으로 다루고자 하는 취지에서 열렸다.

 패널별 주제발표에 앞서 실시된 전체 강의에서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의 부핑교수는 ‘동아시아의 아이덴티티와 역사인식의 국경넘기’란 주제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에는 지리적 장벽, 역사적 장벽, 정체성장벽이란 3대 장애물이 있다”며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문제로 인한 장애물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문제는 정치·감정·학술연구의 대화가 필요하며, 정치 층위의 대화는 “일본이 진행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성격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며, 이는 정부와 정치가들 사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중 층위의 대화는 “‘전쟁의 피해’에 대한 민중의 인식차이에 대해 각국의 민간인들의 깊이 있는 왕래를 통해 상호 이해에 도달”해야 함을 강조하고, 학술 층위의 대화는 “역사연구 속에서 자료의 활용, 연구 방법론의 차이, 역사체험의 차이 등으로 나타나는 인식차이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 다양성’이란 주제로 진행된 패널에서는 먼저 중국 베이징대학의 량윈샹 국제관계학원 교수가 ‘중국의 상이한 근대역사 경험이 동아시아 지역의 아이덴티티에 끼친 영향’ 제하의 주제발표에서 ‘지역정체성’의 개념을 “일정한 지리적 범위를 기본요소로, 일부지역 범위 안에 있는 국가를 ‘자아’로, 범위 밖에 있는 국가를 ‘타자’로 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량 교수는 지역정체성을 형성하려면 “지역 내의 국가들이 비슷한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경험과 감정, 역사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의 지리적 범위를 중국, 일본, 한국, 북한 , 몽골, 아시안 10개국으로 정했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이 자각한 공동의식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들이 “중국에서 발생한 한자·유학·불교와 같은 문화적 배경과 풍습, 문학, 예술, 정치제도 등이 주변 지역의 발전을 이끌었다”며 ‘화이정치’를 공동의식으로 주장하지만, “화이질서 내에 있던 국가들 사이에는 지역 바깥에 있는 자신과 구별되는 세계에 대해 어떤 자각의식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일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지역정체성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 량윈샹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는 의미있는 지역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았으며, 냉전 종식을 전후해 지역 정체성을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konas.net

 이후 “식민주의 확장의 열풍 속에서 동아시아 지역은 ‘타자’에 의해 잔인하게 지역 정체성을 박탈”당했고, 20세기 초 일본이 표면적으로는 동아시아 지역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의도로 ‘대동아회의’를 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무력 점령이나 외교압력을 이용해 동아시아 국가를 노예로 삼으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냉전이 종식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에 ‘자아’의식이 커짐과 동시에, EU 탄생과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과 같은 ‘타자’의 자극으로 동아시아 지역 정체성 형성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며, “지역 의식의 상승이 동아시아 협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키무라 나오야 일본 상업능률대 교수는 ‘일본 근세사 연구에서의 쇄국의 재검토와 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일본 교과서에 서술된 ‘쇄국’의 내용 변화를 분석해 설명했다.

 에도시대에 처음 등장한 쇄국의 용어는 60년대에 “중앙집권적인 봉건지배체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천주교를 금지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으로, 해외교통무역을 극단적으로 제한함에 따라 일본이 국제적 고립상태에 처했다”고 정의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쇄국은 국제적 고립이 아니다’란 인식이 확산되었다”고 설명했다.

 키무라 교수는 그 이유를 기존의 쇄국 개념이 “동아시아에 대한 관점이 거의 결여되어 있고, 서양에 한정됐다”고 말했다. 즉 일본이 쇄국의 개념을 재인식하게 된 배경은 “70년대부터 아시아 NIEs(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가 경제발전을 하면서 서양 중심의 세계관, 아시아에 대한 멸시관에서 해방되어 동아시아지역에 관심이 집중”됐고, 80년대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국내 역사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싫증을 느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키무라 교수는 일본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쇄국 개념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동아시아 국가와 민족들의 서양 근대화 수용시기의 빠르고 늦음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근대화의 성격의 차이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키무라 교수는 "일본의 정권교체로 출범한 히토야마 내각이 제창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일본의 현재인식과 역사인식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konas.net

 중국 부단대 장이화 교수는 ‘60년래 상이한 역사관점 하의 중국과 동아시아 세계’ 주제의 발표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60년간 중국의 사학계는 4단계의 과정을 거쳤다”며, 모든 면에서 소련을 뒤따르고 배워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고 다지는 단계, 중소 대립과 계급투쟁 확대 및 절대화 단계, 경제건설로 공산당 업무의 무게중심을 전환한 단계, 인간의 총체적 발전을 총목표로 하는 단계”로 설명했다.

 장 교수는 1단계에서 중국의 역사는 “유심론적 사관을 일소하여 통일된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시기”로, 역사발전 5단계설에 입각한 사회발전 모델이 교육의 핵심이었으며, 2단계는 중국의 역사를 “끊임없는 계급투쟁과, 농민전쟁과 농민혁명이 역사발전을 추동했다”고 해석하고,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로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단계인 문화대혁명 이후에는 “계급투쟁 노선이 경제건설 중심으로 대체”되었고, “농민문제도 공업화, 시장화, 산업화, 및 농업생산력의 진보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등 아시아의 발전 경험과 세계 각국의 근대화 과정을 알고 싶어 하고, 동아시아와 세계의 여러 문명의 진실된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사람의 총체적인 성장을 궁극 목표로 하는 새로운 문명관이 생겼고, 지식사와 관념사, 인간의 정서생활과 감성세계에 관한 연구, 인간의 독특한 특성, 민족성과 민족정신 등의 문제가 주목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가진 역사학은 중국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전체를 발전하도록 이끌 것이며, 동아시아 공동시장의 형성과 동아시아의 통합 추진에 긍적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한편 동아시아연구포럼 이태진 운영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동아시아 정체성의 문제를 역사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문화적 다양성을 살펴봄으로써 동아시아의 공동 번영과 평화를 위해 고민하고, 진정한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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