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이승만 박사' 조명
정진석(한국외대) 명예교수, ‘말과 글’로 싸운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은 전세계에 엄청난 홍보효과
사단법인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강영훈)와 우남이승만연구회(회장 이주영)가 정동교회(서울 중구) 아펜젤러 홀에서 매월 셋째주 월요일에 주최하는 우남 이승만 박사 콜로퀴엄이, 16일 제 50회를 맞아 정진석(한국외대) 명예교수를 강사로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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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이승만과 언론’이란 주제로 언론인∙독립운동가∙대통령으로서의 이승만 박사의 활동을 살펴보면서 ‘독립운동가-정치가로서 언론활동을 한 이승만 박사’의 활동상을 강조했다.
정진석 교수는 “이승만은 한말에는 언론인으로, 일제 치하 망명 시기에는 언론을 항일 독립 투쟁의 방편으로 활용했다. 이승만의 무기는 말과 글”이었다고 밝히면서, 물론 독립운동사에서 무력투쟁을 높이 평가하지만 ‘말과 글’로 싸운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은 전세계에 엄청난 홍보효과를 지닌 것으로 이에 못지 않았음을 설명했다.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공부하는 동안 신문을 발행하면서 본격적인 언론활동을 시작했다. 안으로는 시정의 개혁을 요구하고, 밖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주장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시기에 그는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를 통해서 정치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후의 독립운동과 정치활동도 언제나 언론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된 후에 일어났던 1955년의 대구매일 테러사건과 1959년의 경향신문 폐간사건을 두고, “언론탄압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세종대왕도 당시에는 문화적인 왕이었지만 오늘의 잣대로 평가한다면 세종대왕도 언론의 자유를 주지는 않았으므로 언론을 탄압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으면서 “시대상황에 따라서, 그 시점에서 어떻게 했느냐로 평가해야 된다”고 말했다.
즉, 그는 이 두 사건으로 “역설적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의 언론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정권과 대결할 수 있었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다”며 “특히, 북한과의 대결 상황이라는 외적 환경을 염두에 둔다면 이승만 정권하의 언론은 탄압 속에서 투쟁할 수 있는 여건은 보장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 교수는 “이승만은 집권기간에 언론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서구식 언론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언론관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의 무력침공에 대비해야했던 상황을 감안할 때에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언론정책을 집행할 수는 없었다”며 “북한이 언론을 공산당과 권력의 하부기관으로 철저히 통제하고 이용했던 상황과 비교할 때에 이승만의 언론정책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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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펜젤러 홀에는 시민 및 우남이승만연구회 회원들 약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으며, 이홍구 전 총리와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도 참석해 관심을 표명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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