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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호남 껴안아 위대한 업적 남겨라”

법보신문 사장 장주 스님 특별기고

Written by. 장주 스님   입력 : 2009-11-24 오후 3: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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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태민안의 길은 국민대통합 뿐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어 왔다. 그 첫 번째 맺은 관계는 어머니이며 두 번째는 가정이다. 가정이 모여 씨족을 이루고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루며 크게는 민족을 이룬다.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것은 필요성 때문이다. 종속보존을 이루는 가족 관계부터 다른 씨족이나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씨족을 보호하려고 맺은 부족관계로,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한 민족관계로, 그리고 국가라는 관계로 발전하며 관계를 맺어 왔다.

이렇게 관계를 맺은 가장 큰 이유는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보호에서 국가의 보호까지, 즉 관계를 맺은 인간끼리 잘 살기위한 방편인 것이다. 관계는 결합을 의미하며 결합하려면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잘살기 위해 관계를 맺어 결합했고, 결합하는데 절대적이고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소통이다. 만약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왔다면 부족도, 민족도,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통한 결합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소통이란 도구는 꼭 필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결합이라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합의 반대는 분열이다. 분열은 갈등에서 일어나고 갈등은 갈등을 일으키는 상대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만약 소통이 안 되고 갈등이 일어나 분열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관계를 맺고 결합하는 이유가 같이 잘 살기 위해서인데 결합의 반대인 분열은 같이 못 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같이 망하자는 말과 다름없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이런 간단하고 단순한 이치조차 통하지 않는 그런 사회로 변했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잘 결합된 민족이다. 단일민족인 우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룬 통일신라 때부터 단일 민족국가로 결합해 이루어진 국가이다. 통일신라 말기의 후삼국시대는 그 기간이나 후삼국을 만들어 싸운 통치자의 의식으로 봤을 때 정권을 차지하려는 통치자들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민족이 강하게 결합하여 이어진 역사는 세계적 강대국인 중국 옆에 있으면서도 나라의 주권을 한 번도 잃지 않고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주변부에 있는 민족들은 오늘날 모두 중국에 속하거나 지배를 받고 있다. 중국에 속하지 않으면 살던 땅에서 떠나야만했다. 심지어 중국을 지배했던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100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던 원나라의 몽고족은 오늘날 250만 명 정도가 남아 있는 몽골인민공화국이 되었고,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워 300동안 중국을 지배했지만 만주로 쫓겨 난 이후 국가로 남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륙 동쪽의 조그만 한반도에 살면서 단일민족으로 5000년을 살아 왔다. 무려 2000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모두 우리 것으로 변화시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가며 뿌리를 이어왔다.

이렇게 긴 역사 동안 단일민족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지키고 살아온 원동력은 민족결합이다. 민족의 구성원이 통합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반면 분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민족구성원으로 보아 분열된 역사는 없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한반도에 한(韓)민족이 국가를 세운 것은 고조선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이다. 고조선이 고구려의 후손이었고 고구려후손이 백제를 세우고 신라를 세웠다. 고조선은 한(韓)민족을 주축으로 하는 국가였고 후에 등장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역시 한민족의 국가였다.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여 3국으로 이루어졌지만 같은 민족이라 서로 왕래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전쟁을 하면서도 교류했다. 통일 신라 이후의 1500년의 역사는 한민족의 통합의 역사이다.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통합의 역사가 분열의 역사로 된 것은 광복 후에 남과 북으로 분열된 것이다.

1948년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출발하며 북한은 사회주의(공산주의)체제로 출발한다. 서로 다른 체제로 출발했지만 단일 국가로서의 통일에 대한 의지는 남북의 정치인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목표였다. 정부가 수립되자 남한 사회는 그 전에 극심하게 분열되었던 국민을 하나로 결속한다. 신탁과 반탁으로 갈라졌던 국론 문제, 좌우익으로 갈라졌던 이념문제 등을 딛고 우선 나라를 재건하고 피폐된 국민을 잘살게 해야 하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그때까지 남한 사회에 내재하고 있던 공산주의자들도 곳곳에서 드러나며 연합한다. 한순간 위기였던 전쟁의 결과는 유엔군의 참전으로 남북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하고 현재의 분단 상황으로 고착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국민의 참혹함과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쟁의 비참함을 딛고 대한민국은 국민통합을 빠르게 진행시켜 나간다. 이승만 대통령이 거제도에 수용되어있던 포로를 석방한 일은 그 좋은 예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잘살게 한다는 믿음에서 시행된 것이다.

그 후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가 있었지만 국민은 늘 단결하고 있었다. 국민은 ‘같이 잘살아보자’라는 열망으로 열심히 일했다. 정치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 것은 박정희 정권에서 출발한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15만 표 차이로 이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건설5개년계획’과 ‘새마을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산업국가로 일으키고 잘 살게 하려는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실행한 경제건설과 산업국가로의 발전은 지역적 차별을 가져왔다.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출신인 김대중 후보보다 35만 표나 더 득표하여 당선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호남보다는 자신의 출신지인 영남에 각종 산업 시설 등을 건설하였다. 호남을 차별하는 것에는 정치적 및 지역적 등의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호남을 차별한 것이다. 그 결과 영남에 각종 산업시설이 들어서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 부흥이 일어났다.

인재의 등용에서도 차별이 이루어졌다. 이런 상태는 전두환 정부나 노태우정부에서도 두드러졌는데 특히 노태우 정부는 인재등용이나 지방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심한 차별을 두었다. 노태우정부의 호남차별은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더욱 심해졌다. 3당 합당의 정치적 이면은 차치하고 경북의 노태우, 경남의 김영삼, 충청도의 김종필이 하나의 당으로 뭉쳐 대한민국의 정당구조는 호남당 대 비호남당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3당 합당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는 기반이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러한 정치 분열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3당 합당의 효과가 나타나자 김대중 전 대통령도 호남의 지지만으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 김종필과 연합해 대통령에 당선된다. 정치권에서의 합당과 연합은 정치적으로 국민을 분열시켰는데 선거기간 내내 국민 분열과 국론 분열이 극심했다. 산업국가로 만들 때의 경제적 분열을 조성한 박정희 대통령이나 그 후에 정치적 분열까지 극심하게 만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임 대통령 모두의 책임이다. 정치적 분열은 국민 마음속까지 갈라지게 만들었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분열을 정치적으로 더욱 이용했다. 대통령 선거 때면 자신의 지지기반인 곳에서 대규모 정치집회를 열고, 절대지지가 약한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출신지역의 국민과 절대지지 지역의 국민을 대규모로 집합시켜 세를 과시했다. 대선 후보의 정치적 지지가 없는 지역에서의 유세는 감히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말로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국민의 통합을 주장했지만 선거 때는 노골적으로 합당하고 지역감정을 이끌어 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대통령으로 전락해 버린다.

정치적 통합의 실제적 노력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시작된다.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경상도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당 후보 경선은 물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망국적이라고까지 일컫는 지역당, 지역차별, 국민분열을 통합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고 대통령 재임 때에도 지역갈등의 문제를 많이 상쇄시킨 공이 있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갈등 해소 노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영남지역은 물론 충청지역이나 강원도에서도 승리했다. 전 지역의 국민이 고르게 분포되어있는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승리한 것입니다. 투표유권자의 과반수가 훨씬 넘는 지지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국민은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지역당의 후보에게 투표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지역갈등의 책임이 정치와 정치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도 책임이 있다. 헐벗고 먹을 것이 부족했던 60년대와 70년대에 잘살아보자는 구호아래 열심히 일한 우리 국민은 경제를 일으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민주주의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지역갈등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에 동조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서구에서 300년이 걸린 민주주의 정부를 30년 만에 탄생시킨 역량도 있는 우리나라 국민이다.

지금 우리 국민의 정치적 역량은 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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