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17일 이후...성조기가 찢기고 불에 탄다면
연합사 해체 이후 도발과 깽판을 극대화할 것이다.
1.
2012년 4월17일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연합사는 미군을 묶어두는 안전장치였다」는 것이다. 韓國을 지키는 법적인 책임이 사라진 마당에, 들어가고 나가기는 美國 마음대로라는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11월19일 오산공군기지에서 했던 주한미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동배치 가능성 발언이나, 마이클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10월22일 용산 한미연합사령부에서 했던 주한미군 중동배치 가능성 발언도 흘러듣기 어렵다. 연합사 해체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이 모자라면 주한미군을 빼 갈 수도 있다는 복선(伏線)처럼 들린다. 클린턴 美국무장관이 11월19일 북핵(北核)과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시에 테이블 위로 올려 얘기할 수 있다는 발언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위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북핵과 주한미군을 거래하려는 의도는 아닌가?
2.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 주한미군 철수의 주(主)동력은 사실 미국이 아니다. 친북좌익을 10년 가까이 취재해 온 경험에 따르면, 2012년 이후 미국이 한국에 미군을 남겨놓고 싶어도 어렵지 않을까 판단된다.
북한정권과 친북좌익이 2012년을 조국통일의 분기점(分岐點)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들은 연합사 해체 이후 도발과 깽판을 극대화할 것이다. 북한정권은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인근과 DMZ를 따라 끊임없이 사고를 칠 것이고, 친북좌익은 전국적 총파업과 폭동을 벌여갈 것이다. 이들의 1단계 전략은 연방제(聯邦制)다. 남한정부에게 6.15와 10.4선언 이행을 촉구할 것이다. 6.15와 10.4선언만 받아먹으면 평화롭게 해주겠다며 온 나라를 들쑤실 것이다. 남북한 좌익의 도발과 깽판이 6.15와 10.4라는 타겟을 향해 미친 듯이 몰아칠 때, 이명박 정부 또는 그 이후 신(新)정부는 버텨 낼 수 있을까?
주한미군 철수 선동 역시 거세질 것이다. 친북좌익은 해외파병을 반대하며 미군 훈련장에 육탄으로 뛰어들 것이고, 열사(烈士)가 만들어지며, 집회에선 『양키고 홈, 주한미군 철수』가 울려 퍼질 것이다. 미군기지 앞에서 성조기(星條旗)가 불타고, 찢기고 오바마 인형이 능지처참당하면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 때 보여준 「초인적 인내」를 발휘해 보수세력 재집권을 기다려 줄 것인가? 만일 이런 일이 보수정권 아래서 벌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3.
주한미군 철수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물어본다면 우문(愚問)이다. 대한민국에서 1949년 6월30일 미군이 나가자, 1년 후인 1950년 6월25일 북한이 남침했다. 1973년 3월29일 월남에서 미군이 나가자, 2년 후인 1975년 3월10일 월맹이 남침했다. 50일 후인 4월30일엔 사이공이 함락됐고 400만 명이 죽어나갔다. 대한민국에서 미군이 나가면 핵폭탄을 가진 김정일은 어떻게 나올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미래이다.
이명박 5년은 한미동맹 복원과 친북좌익 척결 그리고 북한정권 붕괴와 자유통일을 준비할 유일무이한 기회였다. 그러나 권력자와 정치인은 대한민국의 명운이나 북한동포 해방에는 깊은 관심이 없었다. 좌경화된 공무원 집단은 애국운동 발목 잡는 데 아직도 혈안이 돼 뛰고 있다. 지금 남은 대책은 2012년 이전 김정일이 고꾸라져 북한에 급변이 생기는 「기적」이 연출되거나, 2012년 이후 지금보다 힘들고 어렵고 적대적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며 승리하는 것뿐이다.
아래는 2002년 반미세력이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신부의 행적을 중심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2002년의 과거는 2012년 더 강력한 형태로 재연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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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소위 ‘시민운동가(?)’이다. 시민의 신문은 2002년 최고의 시민운동가로 文신부를 선정했다. 1940년 전북 익산 출생인 文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부와 미국 메리노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70년대 소위 민주화 투쟁을 거쳐 90년대부터는 반미(反美)운동에 몰입해왔다.
文신부의 반미선동은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으로 본격화됐다. 그는 훈련 중 주한미군의 교통사고를 가리켜 살인만행(殺人蠻行)이라 비난하며 국내 반미세력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에 열을 올렸었다. 당시 반미선동은 실로 집요했다.
<『성조기 찢고 불태우고 미군철수 노래하고』>
예컨대 文신부는 2002년 7월4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 반미집회에서 『전동록, 신효순, 심미선의 죽음은 옛날 같으면 「개죽음」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죽고도 말 한마디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는다. 당장 떠나라』고 주장했다. 당시 지방 농민들까지 대거 상경, 『주한미군은 이 땅에서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고, 참가자들은 「주한미군 철거가」를 함께 배우며 월드컵 응원박수에 맞춰 「미~국 반대, 반~전 반미」 구호를 연호했다.
2002년 7월27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이른바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주한미군 규탄 5차 범국민대회」 연단에 오른 文신부는 『미군 고압선에 사망한 전동록씨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며 『전동록씨와, 효순이, 미선이를 죽인 미 2사단 캠프하우즈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文신부는 2002년 7월31일 시청 앞 효순이·미선이 추모제에서 『미국당국은 독선 거짓 오만으로 가득 차 하는 짓마다 기고만장하고 우리 정부는 맹종 아니면 굴종하고 있을 따름이다』며 미국과 한국정부를 성토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노래와 구호를 거듭했고, 춤패 「출」은 성조기를 불태우며 소위 두 여학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공연을 했다.
<『미군부대만 지나가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
文신부는 2002년 9월14일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심미선, 신효순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문화제」에서 『오늘 이 순간부터 한미관계는 정말 대등한 관계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추모문화제는 효순이·미선이로 분장한 두 여성이 차전놀이를 타고 만나 한반도기에 「주한미군철수」라고 쓰인 깃발을 내리고 대형 성조기를 찢는 퍼포먼스로 끝이 났다.
文신부는 2002년 9월30일 朴모라는 시민이 미군 트레일러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장례식장에 참석, 『이제 미군부대만 지나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며 『사람을 죽여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저들이 사람이냐』고 말했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점령군이 주둔하는 한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이며 우리의 주권은 한낱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적(?) 선동에 격앙된 유족들은 오열했고, 고인의 동생 朴모씨는 『미군 놈들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출처 : 통일뉴스).
文신부는 2002년 11월21일 동두천 캠프케이시 정문 앞에서 열린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에 참가, 한상렬 목사와 함께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삭발의식」을 가졌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국민은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한국 재판대에 세우고 한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구 모라는 여성(36)은 『양심 없는 악마들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피켓을 만들어와 나 홀로 시위를 벌였고, 최 모라는 고교생은 반미(反美)혈서를 써 와 『너무 많이 베어가지고 병원에 다녀왔다...혈서를 쓴 심정으로 목숨 걸고 싸워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집회에선 성조기를 불태우는 의식으로 마무리됐다.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심판할 것』>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통한 반미선동은 당시 월드컵 열풍을 타고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국내 반미세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상렬 여중생범대위 공동대표는 『반미운동으로 제2의 3.1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진정한 민족자주를 수립하고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런데 미선이·효순이 사건을 통해 기도가 이루어진 감동이 있다(2002년 12월1일 통일뉴스 인터뷰)』고 말하는가 하면, 변연식 국제민주연대 공동대표는 당시 촛불집회를 가리켜 『감개무량하다. 월드컵 때부터 싸워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지나는 사람들도 호응이 좋은데 순결한 두 여중생의 죽음이 외국군대를 몰아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2002년 11월30일 통일뉴스 인터뷰)』고 했었다.
文신부가 이끄는 소위 「불평등한 SOFA개정 국민행동」이라는 단체는 효순이·미선이 사건에서 열심히(?) 선동한 덕에 2002년 12월9일 「제6회 지학순 정의평화상」을 수상했다. 文신부는 『통일의 대장정을 위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면 갈 길이 멀고도 멀다. 오늘의 기쁨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모두 다시 신발끈을 메야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文신부는 2002년 12월14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회복의 날」 행사에도 참가해 반미선동에 열을 올렸다. 이날 행사 역시 대형 성조기를 찢는 퍼포먼스가 행해졌고, 신해철과 같은 연예인들까지 연단에 올라 미국을 향해 『그 따위로 하려면 나가라...양키고홈!』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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