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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노인, 부임 日총독에 폭탄 투척

왈우 강우규의사 순국 89주기 추도식 이북5도청 대강당에서 열려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09-11-28 오후 4: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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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9월 2일, 남대문 정거장(구 서울역 광장)에서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재등실(齋藤實, 사이토 마코토) 총독 일행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일제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한국민의 자주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왈우(曰遇) 강우규(姜宇奎, 1855∼1920) 의사의 순국 89주기 추도식이 29일 오전 11시 30분 이북5도청 대강당에서 평안남도중앙도민회(회장 이춘화) 주관으로 열린다.
 
 당시 백발 노인이었던 강 의사는 비록 사이토 마코토 폭살에는 실패했지만 일경 말홍우삼랑(末弘又三郞)이 절명하는 등 37명이 부상하였으며,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투쟁으로서 조선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병구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용옥 평안남도지사, 광복회원, 평안남도민회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류명철 도민회 부회장의 약력소개, 서울지방보훈청장 및 평안남도중앙도민회장, 평안남도지사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시 낭독 및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된다.

 강 의사는 평남 덕천군에서 태어나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되자 북간도 두도구로 건너간 뒤 길림, 시베리아, 연해주 등지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으며, 서립학교와 교회를 세워 후학양성에 전념하였다.

 1919년 국내의 3․1독립운동에 호응하여 만주, 노령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그 해 5월 노인동맹단(老人同盟團)에 참가하여 노인단을 대표해 조선총독을 폭살시킬 계획을 품고 8월 5일 서울에 도착했다.

 안 의사는 의거 보름 후인 9월 17일 체포되어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66세를 일기로 순국할 때까지 당당함을 굽히지 않았다. 강 의사의 1심 최후 법정진술에서는 “사이토는 동양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며 인도주의를 무시하는 사람이므로 죽이려 한 것이요. 나는 정의와 동양평화와 조국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친 자요.”라고 주장했다.

 형무소로 면회 온 아들 중건에게도 “만일 네가 내가 사형 밧는 것을 슬허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면 나의 자식이 아니다. 내가 평생에 세상에 대하야 한 일이 너무 업슴이 도로혀 붓그럽다. 내가 이때까지 우리 민족을 위하야 자나 깨나 잇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 청년들의 교육이다. 죽는 것이 조선청년의 가슴에 적으나마 무슨 늣김을 줄 것 갓흐면 그 늣김이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형 집행시 일제 검사가 “감상이 어떠냐?”고 묻자 “단두대상 유재춘풍 유신무국 기무감상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 위에 홀로 서니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으리오)” 이라 말하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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